<로프>(Rope)


선과 악은 평범한 사람에게만 존재한다는 니체의 초인정신을 끌어들여 살인은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두 남자 브랜든(존 달 분)과 필립(팔리 그렌저 분)이 있다. 그들은 그 이론에 따라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살인을 자축하는 파티를 열지만 손님으로 초대된 은사 루퍼트(제임스 스튜어트 분)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패트릭 해밀튼의 연극대본을 각색한 <로프>는 흥미를 끄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사건의 해결과정은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묘기(stunt)’라고 표현한 히치콕의 자평처럼 <로프>는 극중에서 진행되는 시간과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는 실제시간이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어 이야기보다 카메라의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로프>는 이른바 TMT(Ten Minutes Technique)라 하여 한 숏(shot)의 길이가 무려 10분에 이른다. 참고로 카메라에 장전되는 필름 한 릴은 시간으로 10분의 길이에 해당한다. 즉, <로프>의 배우들은 필름 한 릴이 완전히 소모되는 10분 간 어떠한 동작의 멈춤 없이 미리 약속된 대본에 따라 고도로 계산된 연기를 펼친다. 이를 숏 하나라고 보았을 때 <로프>는 10분으로 이루어 진 숏 8개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10분 짜리 연극이 8편 상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로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의 장면 전환 없이 연속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히치콕이 의도적으로 시도한 기술적인 편집 때문이다. <로프>를 관람하다 보면 카메라가 가끔 등장인물의 등을 극단적으로 클로즈 업(close up)하여 화면을 어둡게(black out) 한 후, 다시 뒤로 빼는(track out)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어두워졌던 찰나의 시간동안 화면이 바뀌는 편집이 이루어 진 것이다. 히치콕은 카메라에 장전된 10분간의 필름을 모두 소모하였을 때 즉시 다른 카메라로 교체하여 화면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교체되는 순간을 위해 이 방법이 사용된 것이다. 결국 <로프>는 단 하나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수잔 헤이워드의 영화사전 <이론과 비평>을 보면 시퀀스는 ‘보통 논리적으로 같은 의미 단위를 형성하는 신(scene)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한 시퀀스의 길이는 한 에피소드의 시각적이고 내러티브적인 연속성과 일치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쉽게 말해 시퀀스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에피소드를 뜻한다. 영화 한 편이 보통 25개 정도의 시퀀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시퀀스 하나가 영화 전체인 <로프>는 얼마나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작품이었는지 알 수 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대사로 전달되는 상황의 설명보다 카메라를 통한 장면의 묘사가 더욱 효과적이다. <로프>는 연극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므로 대사가 상당량을 차지한다. 이를 영화로 옮기기 위해 히치콕에게는 몇 가지 고민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위에 언급한 영화를 하나의 시퀀스로 구성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가 항상 주장해 왔던 이미지 표현법, 즉 몽타주였다.


영화중반 살인에 대해 낌새를 알아차린 루퍼트가 데이비드의 행적을 브랜든과 필립에게 캐묻는 장면이 있다. 그 때 카메라의 앵글은 그들의 대화를 중심에 부각시키기보다 오히려 옆에 있는 윌슨 부인(에디스 에반슨)의 행동에 주목한다. 시신이 숨겨져 있는 식탁(장롱)위의 집기들을 하나 하나씩 치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관객에게 대사보다 이미지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영화적 기능을 살릴 뿐 아니라 ‘저런! 장롱문이 열리면 안 될 텐데’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관객은 졸지에 그들의 살인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파티가 끝난 후 의심에 쌓인 루퍼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데이비드의 살해순간을 추궁한다. 그러면 비록 데이비드는 숨지고 없지만 카메라는 루퍼트의 예상에 따라 몇 시간전의 살해상황을 시간 순서에 따라 이미지로 재구성한다(방안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면 입구를 비추어 주고 술을 마셨다고 하면 술이 놓여있는 테이블을 보여주는 식). 이와 같은 이미지 연상 기능을 통해 히치콕은 연극만이 갖는 대사의 묘미를 살리면서 영화의 본질적인 기능까지 확보하는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를 모두 히치콕의 업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계산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한 몫 했을 뿐더러 무엇보다 영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원작의 우수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히치콕은 이를 영화에 맞게 적절히 각색하였고 언제나 시도해왔던 카메라의 실험적인 기능을 다각적으로 발휘하였다. 히치콕은 역시나 관객을 골탕먹였으며 우리는 히치콕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다. 그래도 유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p.s. <로프>는 히치콕이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영화였으며, 히치콕의 첫 컬러 영화입니다.


(2001. 7. 28.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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