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습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어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과 리차드 플라이셔와 후카사쿠 긴지의 1970년 작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와의 직접적인 유사성을 언급하는 일은 웬만한 영화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이들의 안전한 자기 과시일 것이다. 물론 <진주만>이 <도라 도라 도라>를 참고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소재의 유사성말고 마이클 베이가 유아적인 복수심을 내세워 어설픈 애국주의를 설파하려 했던 무모한 연출력 바로 그 지점에서 선배 격을 찾아보는 일은 어떨까? 더 의미 있는 비교행위가 아닐까? 그렇다면 필자는 <태양의 제국 (Empire of the Sun)>을 추천하고 싶다.

J. G. 발라드의 자전소설을 영화로 옮긴 <태양의 제국>은 2차 대전의 혼란함과 참혹함을 12살 소년의 시선에 담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임스 그라함(J. G)인 점으로 보아서는 상하이에서 태어나 중·일 전쟁을 몸소 겪은 작가 발라드의 실제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의 판권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손으로 넘어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설이 갖는 사실성이 설득력을 발휘하는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 같다. 당시의 스필버그는 단순히 오락영화를 잘 만드는 흥행감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먼저 그의 성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최적의 단서가 될 듯하다.

동화적 감수성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스필버그를 넘볼 수 없을 만큼 유별나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다. <E.T.>와 <인디애나 존스>, <쥬라기공원> 등은 그가 아니면 생각 할 수 없는 영화이다. 그와 동시에 이름 있는 흥행감독으로 안주하기보다는 <칼라 퍼플>, <쉰들러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일련의 작품을 발표함으로 해서, 작가로 대접받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두 개의 고리로 나뉘어진다. 철저히 오락성을 추구한 상업영화와 휴머니티를 강조한 예술영화.


그러나 스필버그가 작가 대접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철저히 맘먹고 아카데미를 노린 <칼라 퍼플>은 주제가 내포하는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였다. 너무나 많은 흥행작을 낸 나머지 상상력이 돋보이는 상업영화감독이라는 편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태양의 제국>을 발표함으로써 그런 인상을 지우기 위한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태양의 제국>은 시대적 배경이 갖는 전쟁의 특수성에도 불구 진지한 영화가 되지 못 하였다. 의도와는 달리 감독의 상업적인 장기가 너무나 빛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가 ‘작가’의 위치에서 이 영화에 접근했다는 의혹은 몇 군데에서 목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이 그렇고 제이미(크리스천 베일 분)가 부모와 헤어진 지 5년 만에 재회하는 결말부가 그렇다. 스필버그는 이 부분을 짧게 처리함으로써 극적인 감동을 유도하기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관조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많은 전쟁영화들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사실은 전쟁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후에 그가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것처럼 스필버그는 작가적 기질의 원천을 전쟁의 비극성에서 찾았다. 특히, <태양의 제국>의 카메라가 바라보는 전쟁의 광경은 포화가 들끊는 전장이 아닌 변방에 위치한 피난민과 포로들이다. 그것도 침략자에게 핍박받는 약자로서가 아니라 포로가 포로에게, 피난민이 피난민에게 행하는 약탈과 배신의 모습이다. 생존의 사활이 걸린 전쟁터에서 가해자건 피해자건 인간은 모두 똑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의도가 감독의 유아적인 연출력으로 인해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데 있다. 비행기만 보면 이성을 잃는 제이미의 동심을 표현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판타지적 요소를 끌어들인 것이다. 일부 전쟁의 장면을 오락게임처럼 묘사한 부분이라든지 존 윌리엄스가 맡은 음악은(비록 그 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전쟁영화가 가져야 하는 객관성을 지키지 못했다. 제이미의 시선을 빌어 전쟁의 실체를 바라보던 영화는 판타지를 차용한 감독의 지나친 개성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어정쩡한 영화가 되고 만 것이다.

무릇 전쟁을 소재로 삼는 영화는(특히 고발의 성격이 강하다면) 죽음을 생산하는 인간의 잔혹함으로 인해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방법을 택해야 한다.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를 간단히 예로 들어보자.

<디어 헌터>는 베트남 전에 참전함으로써 겪게되는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외상을 사회 부적응과 죽음으로 연결시킨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1979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러시안 룰렛을 끌어들여 죽음을 극단적으로 처리한 비현실성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현재 베트남전을 대표하는 영화치고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처지이다. 이처럼 인간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전쟁영화는 연출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표현력이 지나치게 개입될 경우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니 스필버그가 <태양의 제국>을 발표한 동시에 ‘유아적 감수성을 지닌 피터팬’이라는 비아냥섞인 꼬리표를 단 것도 무리는 아닐테다. 그리고 그 꼬리표를 떼어내기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확실히 스필버그의 영화는 성격규정이 명확할 때 빛을 발휘하였다. <죠스>와 <E.T.>, <인디애나 존스>가 그랬고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랬다.


(2001. 6. 22.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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