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Rear Window)


8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결혼을 앞둔 한 후배녀석이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며 다소 생뚱맞은 고민을 상담해 온 적이 있다. 그러면서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린 영화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서슴치 않고 사랑을 불안해하는 녀석에게 <이창>을 추천해 주었다.

알다시피 <이창>은 엿보기에 대한 인간의 속물적인 근성을 스릴러의 공식에 담아 만든 히치콕의 영화 중에서도 굉장히 잘 만든 오락영화다. 합당한 표 값을 지불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엿보기를 영화 속에 구현했다는 뜻에서 <이창>을 두고 ‘영화를 위한 영화’라고도 한다.

속옷만을 걸치고 춤을 추는 앞집 처녀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며 전화를 하는 제프리(제임스 스튜어트 분)와 도일(웬델 코리 분)의 통화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관객이 대화를 듣기보다는(자막을 읽기보다는) 제프리처럼 처녀의 몸매를 훔쳐보는데 열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운운하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내뱉냐고 반문할 독자가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닐테다. 하지만 다시 한번 주장하건데 <이창>은 확실히 ‘사랑’에 관한 영화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진기자 제프리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이웃집 훔쳐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속살을 드러내놓고 춤을 추고있는 젊은 여자를 지켜보며 음흉한 미소도 짓고, 갓 이사온 신혼부부의 깨가 쏟아지는 광경도 목격한다. 매일매일 싸움을 하는 중년부부도 있고 외로움에 고통 받는 피아니스트와 노처녀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결혼에 회의적인 제프리에게 한결같게도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창>이 개봉 된 1954년의 미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사상 유례 없는 물질주의에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 잡은 시기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자동차가 필수품이 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물질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다보니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정신적인 측면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배우자를 지정 받았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사랑에 ‘조건’이 전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조건을 들어 리사(그레이스 켈리 분)와의 결혼을 거부하는 제프리에게 보험사 스텔라(델마 리터 분)가 요즘 젊은 것들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사랑에 되도 않는 조건을 따진다고 불평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에 조건을 다는 제프리보다 리사가 어느 면에서 순진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감성이 부모세대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창을 통해 바라보는 어긋난 사랑의 광경(부부싸움도 사랑의 한 형태이니 말이다)을 목격함으로 해서 제임스가 결국에 리사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설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살인자 라스 쏜월드(레이몬드 버 분)의 집에까지 들어가 반지를 찾아낸 리사가 제프리에게 반지 낀 손가락을 보여주는 장면은 증거를 찾은 동시에 그녀의 사랑을 제프리가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가장 극적이다. 또한 ‘조건’을 들어 평행선을 달리던 서로의 이몽(異夢)이 관음증이라는 모순된 사건으로 인해 일견(一見)의 꼭지점을 이룬다는 점에서 ‘사랑’의 변증법적 해석이라고 본다면 무리일까?

그 뿐이 아니다. 혼자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시도하려는 한 여인이 외로움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삶에 대한 열의를 되찾아 그와 사랑을 이루는 장면에서는 눈물이라도 흘려줘야 정상일 테다. 그런 위대한 사랑을 무시하고 부인을 살해한 남편이 제프리와 리사 그리고 스텔라의 집요한 추적에 덜미를 잡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사랑’의 힘이란 관음증의 부도덕을 용서받을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이 얼마나 히치콕적인 발상이자 해결책인가!).

당시 내게 ‘사랑’의 해답을 요구한 후배는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직까지 그 후배가 결혼생활을 비교적 순탄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의 충고가 어지간히 효력을 발휘하긴 한 모양이다(?). 이만큼 ‘사랑’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린 영화가 또 있을까?


(2001. 6. 22.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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