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Rear Window)>


심리 스릴러 장르가 성공하기 위한 성패는 정교한 이야기 구조(plot)을 가지고 얼마만큼 관객을 긴장감 있게 몰고 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를 위해 알프레드 히치콕은 여성에 대한 억압된 환상(오이디푸스), 맥거핀, 관음증을 영화 속 이야기에 주요한 소재로 적절히 풀어 넣어 ‘스릴러를 만든다는 자체가 히치콕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일종의 헌사가 될 만큼 그 장르에서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였습니다.

그중 코넬 울리치(Cornell Woolrich)의 단편을 각색한 <이창>은 이웃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증을 통해 인간의 속물근성을 잘 읽어낸 히치콕의 통산 40번째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창>은 영화 자체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힘보다는 한정된 공간 속에 상황을 시각화하는 이미지 전달력이 더욱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1943년 히치콕은 이미 구명선 안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라이프보트>를 통해 제한된 공간이 만들어내는 서술의 한계를 이미지로 극복한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여주인공의 심리를 소품을 이용하여 표현한 연출은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10년 후, 연극을 원작으로 삼은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는 살인사건의 발생과 해결을 단지 거실에서만 촬영하여 연극의 공간(무대)을 영화 속에 재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창> 역시 제프리(제임스 스튜어트 분)의 방이 만들어내는 폐쇄성으로 인해 위에서 소개한 두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우리는 히치콕이 ‘왜’ 제한된 공간에서의 연출을 지속적으로 실험하였는지 의문에 쌓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답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영화란, 영상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무성영화시절부터 영화를 익혔던 히치콕에게 있어 계산된 설정공간이 주는 상징적 표현의 가능성과 세트 내의 소품을 이용한 이미지 서술은 기술적으로 영화에 가장 적합한 설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창>을 통해 ‘방’이라는 최소의 공간이 주는 제한된 카메라의 행동반경을 어떻게 넓혀 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배우와 스텝의 소개에 이어 카메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풍경을 원형으로 훑은 후 제프리의 방으로 들어와 ① 기온이 높이 올라가 있는 온도계 ② 땀을 흘리며 잠들어있는 제프리의 모습 ③ 창문 ④ 면도를 하고 있는 이웃집 작곡가 ⑤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는 나이든 부부를 차례로 비추어 줍니다. 관객은 카메라가 투시하는 장면들을 엿봄으로 해서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아침, 주인공 제프리가 엿보는 이웃 간의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에 놓이게 될 것이란 사실을 짐작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글을 통해 배경을 묘사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전형적인 소설의 그것처럼 시각화된 이미지를 통해 공간적, 시간적 배경을 설명하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스트뤽(Alexandre Astrue)은 이를 두고 “작가가 펜으로 작품을 쓰듯 영화감독은 카메라로 작품을 쓴다”라고 했습니다. 기본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감독들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영화적 진술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창>의 서두 부분은 배경설명 외에 합법적인 관음증의 설명까지 포함한 이중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더운 여름이기에 창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이웃 간의 사생활은 ‘무장해제’ 되므로 제프리의 엿보기는 우발이었다는 주인공의 특권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시공간의 분위기를 설득해놓았으니 카메라는 사건의 중심에 놓이게 될 인물의 자세한 설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인공 제프리를 묘사하기 위해 카메라는 다시 유려한 날개 짓으로 ①제프리의 얼굴 ② 그의 깁스한 왼쪽 다리 ③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산산조각 난 카메라 ④ 부서진 경주용 자동차 사진을 비롯한 벽에 걸린 여러 장의 액자 ⑤ 잡지 표지임을 강조하는 팜플렛을 보여줍니다.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잡지사에 사진을 기고하는 제프리(실은 프리랜서 사진기자이다)는 자동차경주를 위한 사진을 찍는 도중 사고를 당해 카메라를 잃고 왼쪽다리를 깁스한 상태이다’. 이로서 현재 그가 처한 상황설명이 대사 없이 깔끔이 처리됩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제프리는 방안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웃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는 또 하나의 합리적이며(?) 직접적인 관음증의 이유가 이미지만으로 도출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이창>의 카메라 시선은 대부분 제프리의 방안에서만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카메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리니치 빌리지 밖의 공간은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니치 빌리지를 넘어선 공간의 설명은 제프리의 방안에 있는 소품을 이용한 묘사이거나 또는 대사를 통해 설명하는 2가지 방법으로 좁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화가 카메라를 이용한 영상예술이란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몇 마디의 대사가 전달하는 상황의 설명보다, 너무도 당연하게, 이미지가 보여주는 장면의 묘사가 더욱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장면을 지적한 트뤼포의 물음에 히치콕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진술하는 영화적 수단을 쓴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누군가 스튜어트에게 “어떻게 다리를 다쳤습니까?”라고 묻고, 스튜어트는 “자동차 경주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달리는 차의 바퀴 하나가 튀어 나와 부딪쳤습니다”라고 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장면일 겁니다. 내가 보기에 대본작가의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는 그가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대사 한 줄로 커버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사는 다른 여러 소리 중의 하나로 단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어야 합니다. 영상 측면에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눈(eye)입니다”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눈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재현이 아니겠습니까.


(2001. 6. 22.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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