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The Exorcist)


무서운 장면이 없으면서도 제일 무서운 공포영화로 기억되는 <엑소시스트>는 1973년 12월 26일 미국전역에서 개봉되어 사상 유례 없는 흥행실적과 함께 영화외적인 면에서 이례적인 대소동으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영화를 보다 기절하는 일은 경미할 정도이고 임신한 여자는 관람도중 유산까지 경험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랄만한 사건은 영화를 본 한 소년이 여자아이를 살해한 후, 악령이 몸 속으로 들어와 자신을 조종했다고 진술하여 미국사회에 충격을 준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일파만파의 반응을 일으킨 <엑소시스트>는 여타의 공포영화와는 달리 공포를 전달하는 측면에서 색다른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요란한 살인행각으로 피의 향연을 부추기지 않을뿐더러 영화는 1시간이 지나도록 완만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핵심이랄 수 있는 악령의 실체는 거의 후반부나 되서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를 두고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은 <사이코>의 그 유명한 샤워실 살인장면 이전의 시간에 주목한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관객은 공포영화임을 알고 극장에 오기 때문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무서움의 강도는 배가된다는 것이죠. 활시위를 얼마나 뒤로 당길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처럼, 영화는 정말 은근히 진행됩니다.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북부 이라크 장면만 해도 그렇습니다. 스산함 속에 뭔가 꼭 발생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악령의 존재를 살짝 노출시킵니다. 그동안 관객은 뭔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숨을 죽이게 되죠. 그러나 화면은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화로와 보이는 워싱턴의 죠지타운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맥거핀’이라고 하기에는 머린신부(막스 폰 시도우 분)와 악령의 대결구도가 걸리긴 하지만 빼 버려도 영화의 진행에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할 정도 관객을 괴롭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악령이 모습을 들어내기 전까지 레건가족의 주변에는 끊임없이 불길한 전조가 발생합니다. 가령 천정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성당의 마리아 상에 누군가 불경한 짓을 해 놓는다든지 등등 관객을 서서히 구석으로 몰아넣는 감독의 노련한 의도가 번뜩입니다. 결국 이 모든 연출력은 엑소시즘(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행하는 후반부를 위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치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이 한 순간에 ‘뻥!’하고 터지는 식입니다.

게다가 이유 없이 귀신에 씌이는 맥닐 부인(엘렌 버스틴 분)의 외동딸 레건(린다 블레어 분)은, 감독의 의도적인 지체와 더불어 가장 큰 공포를 조성하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인상은 상당히 귀엽습니다. 악령 든 모습이 상상이 안될 정도입니다. 그러니 레건이 악마가 된 모습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더 충격적입니다. 평상시 온순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워 보이는 ‘의외성’에 바탕을 둔 맥락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엄마와 딸이 생일을 두고 나누는 대화장면에서의 카메라는 일방적으로 레건의 얼굴만을 비추어줌으로서 그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결말 자체가 주는 모호함도 공포를 지속시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디미(제이슨 밀러 분)가 떨어져 죽은 계단 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동료신부의 모습을 통해 악령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악령의 공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그럼으로 인해 <엑소시스트>는 무섭지 않으면서도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결정적으로 27년 후의 재개봉에서도 악령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라고 한다면 심한 비약일까요…

한가지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엑소시스트>는 공포영화이기 전에 과학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유는? 레건이 이상증세를 보이자 맥닐부인은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갑니다. 그러나 매번 의사들이 읊어대는 증상이라고는 “일종의 발작증세입니다”, “뇌의 이상이라고 볼 수밖에…” 어떻게 침대를 흔들 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그저 “비정상적인 힘을 보일 수도…” 증세가 악화 될수록 답변에 힘이 없습니다.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악령을 레건에게서 쫓아내는 것은 디미 신부 아닙니까.


(2001. 5. 23.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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