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 인디고>(Mood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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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 인디고>의 원작 소설인 <세월의 거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작은 장밋빛 구름 한 조각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들에게 다가왔다. 구름이 제의했다. “나 갑니다!” 콜랭이 이렇게 받았다. “그래, 이리 와!” 그러자 구름이 두 사람을 감쌌다.’ 1947년에 출간된 <세월의 거품>은 프랑스 문학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꼽히는 보리스 비앙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구름과 같은 사물을 생명을 가진 존재로 묘사한 독특한 화법 때문에 출간 이후 3천만 부 이상이 팔릴 만큼 사랑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영화화되지는 못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영화는 인간(의 표정)마저도 CG로 구현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온전히 상상력으로 묘사한 <세월의 거품>(영화 제목이 <무드 인디고>인 이유는 원작 소설에서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의 노래가 자주 언급된다는 것에 착안, 그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다!)의 영화화는 이제 당연하였다. 그렇다고 마냥 CG에 의존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이유는, <세월의 거품>이 일종의 환상소설이면서 더 중요하게는 로맨스물이라는 점이었다. 로맨틱한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되 러블리한 이미지의 환상적인 분위기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좀 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이런 분야의 대가가 있다. 프랑스 출신에서라면 당연히 미셸 공드리다. <수면의 과학>(2006) <비카인드 리와인드>(2008) 등에서 증명된바, 미셸 공드리는 정교하고 비인간적인 CG 대신 수공예에 바탕을 둔 특유의 이미지로 사랑의 감정을 초(超)현실화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연출자다. 서두에서 언급한 <세월의 거품> 속 특정 대목만 하더라도 구름 모양의 귀여운 탈 것을 디자인, 이를 놀이기구처럼 높이 띄워 그 속의 남녀 주인공이 하늘 높은 곳에서 파리 전역을 감상한다는 기발한 장면으로 완성했다.

그런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주인공은 콜랭(로망 뒤리스)과 클로에(오드리 토투)다. 발명에 소질이 있는 콜랭은 칵테일을 제조하는 피아노를 만들어 큰돈을 번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는 콜랭은 식사 도중 친구로부터 아름다운 여자들이 온다는 파티 얘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참석한다. 그곳에서 클로에와 마주친 후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곧 결혼까지 이어진 클로에와의 운명적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클로에가 폐 속에 수련 꽃이 자라면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치료에 전 재산을 탕진한 콜랭은 난생처음 노동을 시작한다.

클로에의 폐 속에 수련이 자란다는 설정,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의 정체일 텐데 아름다움은 흔히 꽃에 비유되고는 한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짧게 지속하기에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콜랭과 클로에의 사랑이 그렇다. 이들의 사랑은 새의 깃털을 눈송이처럼 활용한다든가, 이미지를 굴절시키는 거울 방식을 활용해 다리를 죽 늘어뜨린 비글무아 춤을 묘사하는 미셸 공드리의 재치 있는 연출로 큰 인상을 남기지만, 클로에의 병이 발견되는 순간부터 급격히 비극으로 변모한다.

그 방식이 재미있다. 미셸 공드리는 영화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컬러풀한 화면에 색을 서서히 제거함으로써 극의 마지막에 이르면 완전히 흑백영화가 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가져간다.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의 환상도 언젠가는 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무드 인디고>는 미셸 공드리 버전의 ‘화양연화’라 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로 사랑을 찬미했던 영화가 분위기를 바꿔 현실적으로 끝맺음하는 결말은 당황스러울 만큼 충격적이다.

오히려 그와 같은 분위기의 변환은 작품에 지극한 현실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미셸 공드리는 영화의 시작 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해 냈으므로 이 이야기는 완전히 사실이다”라는 보리스 비앙의 발언을 삽입했다. 미셸 공드리도 그렇지만 보리스 비앙도 획일화된 현실을 잠시나마 이겨내는 것이 초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미셸 공드리가 원작소설에는 없지만, 일군의 노동자들이 별 개성 없이 구획화된 공간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타자기에 콜랭과 클로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공동으로 집필하는 설정을 추가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핵심은 현실과 초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태도다. 영화에는 소설을 보고 미셸 공드리가 상상해낸 이미지가 과잉일 정도로 가득하다. (그래서 초반의 신선함과 달리 뒤로 갈수록 좀 시큰둥해진다. 이는 최근의 공드리가 영화가 시시해지는 주요한 원인이다. <무드 인디고>도 마찬가지다.) 그중 눈길을 끄는 건 전축이다. 가스레인지를 변용한 이 전축은 그 위에 붙은 초상화 그림에서 모형으로 튀어나온 팔이 바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에셔의 <그리는 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전축이 의미하는 건 현실과 초현실이 결합한 이 세상의 초월적 풍경이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세월의 거품>은 1947년에 발표됐지만, 묘사하는 풍경은 2014년 현재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특정한 시기로 배경을 확정하지 않고 초월한 듯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결국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초월의 대표적인 행위다. 너무나 행복해 끝날 것 같지 않은 사랑도 언젠가는 이별로 막을 내리고 이별로 끝일 것 같지만, 평생에 기억에 남는 것이 또한 사랑이기도 하다. 그런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해 누구나 하고 있고 그것이 소설이나 영화로 또한 기록되기에 현실적이면서 초현실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무드 인디고>는 특별한 사랑이면서 한편으로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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