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Moeb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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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발표 때마다 논란과 호평이 끊어지지 않는 선처럼 이어진 ‘뫼비우스’를 형성했다. <뫼비우스>의 경우, 모자(母子) 성관계를 비롯한 몇몇 장면 때문에 개봉 전 제한상영가 논란을 겪으면서 역시나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이번 영화는 가족과 성기를 하나의 띠로 연결해 욕망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남편의 외도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아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 성기를 절단한다. 죄책감을 느낀 아버지는 자신의 성기를 대신 아들에게 이식한다. 그러자 다시 돌아온 아내가 아들에게 욕망을 느낀다는 게 <뫼비우스>의 주된 내용이다. 짧게 간추린 이야기만 봐서는 단순한 자극 이상의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김기덕의 영화는 매번 ‘관계의 끝을 봐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원형(元型)의 이야기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부자의 무분별한 성기주의가 도달하는 최종 지점은 파멸, 즉 되돌릴 수 없는 가족붕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적처럼 구원을 갈구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결말로 김기덕 감독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에 대해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상영을 막으려 했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결정은 영화가 향하는 지점은 바라보지 않은 채 손가락 끝만 가지고 시비를 거는 무뢰한적인 태도였다. 영화는 이렇게 보는 게 아니다.

가족과 성을 연결하는 시각에 대해 불편해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둘을 가지고 욕망의 정체를 풀어내는 김기덕 감독의 의도는 확실히 그의 영화가 왜 특별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 번 증명한다. 다만 그것이 전작들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전달됐는지는 의문이다. 단 한마디 대사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감독의 연출은 성욕이라는 본능만이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을 의도한 시도로 보인다. 여기에는 어떤 강박이 감지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새로움과 도발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나머지 의욕만 앞선 영화과 학생의 졸업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뫼비우스>는 제목의 의미와 다르게 논란과 호평이 하나로 연결되지 못한 끊어진 띠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맥스무비
(20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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