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호텔>은 꽤나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다. 골든글러브나 아카데미 시상식의 애니메이션 부문의 강력한 후보로 평가받는 이 애니메이션에는 1930년대에 부흥하기 시작한 ‘몬스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몬스터 호텔>에는 몬스터 캐릭터가 주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은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드라큘라가 등장하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뽐내기보다는 인간으로부터 딸을 보호하는 데 혈안이 된 까닭이다.
드라큘라 외의 몬스터들, 즉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a. k. a 울프맨), 투명인간, 미라 등도 희화화되어있기는 마찬가지다. 날로 흉악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기에 이들 몬스터들의 공포효과는 시효를 다한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몬스터 호텔>은 몬스터 장르의 팬들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몬스터 장르가 발전해온 역사를 살피는 것은 <몬스터 호텔>을 더욱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니버설, 몬스터 영화의 산실
흔히들 몬스터물을 일러 ‘B급영화’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B급은 A급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B급영화가 탄생한 배경은 1930년대 불황에 따른 관객 감소를 막기 위해 할리우드가 동시상영용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두 편의 영화를 한 편의 가격에 볼 수 있게끔 고안된 B급영화는 빨리, 그리고 싸게 찍는 방식으로 양산됐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 모든 메이저 제작사들은 B부서를 가지고 있었고 유니버설 또한 그러했다.
유니버설은 호러 중에서도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통해 저예산 스튜디오 장르를 개척했다. 회사 사정상 몬스터물이야말로 유니버설이 B급영화로 만들 수 있는 최대치라고 판단했던 까닭이다. 파라마운트, MGM, 20세기 폭스, 워너 브러더스 등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자사 소속의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의 화려했기 때문에 굳이 몬스터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름 있는 감독들은 호러를 싸구려 장르라며 기피했고 배우들은 몬스터 분장으로 자신의 얼굴이 가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소속된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값이 부족했던 유니버설에게 몬스터물은 제작비용 대비 언제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효자 장르였다. 이미 <노트르담의 꼽추>(1923)와 <오페라의 유령>(1925)으로 성공을 거둔 유니버설을 두고 할리우드에서는 ‘공포의 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트르담의 꼽추>의 콰지모도는 <몬스터 호텔>의 주요 인물 중 하나다.) 그에 걸맞은 기록은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이상 1931)을 필두로, <미이라>(1932), <투명인간>(1933),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와 <런던의 늑대인간>(이상 1935)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 이뤄졌다.
이 시기는 영화사(史)에서 몬스터물이 기록한 첫 번째 전성시대였다. 몬스터들은 워낙 캐릭터가 강하니 만큼 유명 배우가 필요하지 않았고 대개 한정된 장소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탓에 제작비 역시 크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 영화들은 대개 10만 달러 미만의 제작비로, 2~3주의 촬영 기간 동안 만들어졌다. 그와 같은 조건만 맞출 수 있다면 감독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에 전에 없던 개성 있는 영화로 비춰 이후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몬스터물의 첫 번째 스타들
비록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된 장르였지만 큰 인기를 모으면서 몬스터물에도 스타로 불리는 감독과 배우가 등장했다. 몬스터물이 장르로 정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감독이라면 ‘토드 브라우닝’과 ‘제임스 웨일’을 들 수 있다.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는 유니버설의 고전적인 호러 영화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브람 스토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1920년대에 할리우드로 넘어온 독일의 표현주의와 무대 미술로 포장했다. 고전문학을 재료 삼아 명암이 교차하는 공포의 이미지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토드 브라우닝의 스타일은 유니버설 호러가 특유의 스타일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제임스 웨일은 <프랑켄슈타인>은 물론 <어둡고 낡은 집 >(1932)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등과 같은 작품을 연이어 만들며 공포영화의 대가로 불렸던 감독이다. 당시 그는 보수적인 할리우드에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며 자유를 뺏긴 채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처럼 인적이 드문 자신의 저택에 틀어박혀 살았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타의에 의해 ‘몬스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제임스 웨일의 삶은 훗날 빌 콘돈 감독이 <갓 앤 몬스터>(1998)를 통해 영화화함으로써 다시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제임스 웨일의 말년의 삶은 <몬스터 호텔>의 드라큘라가 극 중 자신의 저택에 틀어박힌 이유와 묘하게 겹친다.)
사실 이 장르의 명실상부한 스타라면 드라큘라를 연기한 ‘벨라 루고시’와 프랑켄슈타인을 연기한 ‘보리스 카를로프’일 것이다. 그중 벨라 루고시는 4년간의 유니버설 호러 전성시대 동안 20여 편 가까운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몬스터 전문배우라는 꼬리표를 떨치지 못해 불후한 말년을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와 같은 사연은 팀 버튼이 연출한 <에드우드>(1994)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홀로 외롭게 지내며 모르핀 중독에 빠져있던 벨라 루고시를 에드 우드가 찾아내 사상 최악의 영화로 평가받는 <글렌 혹은 글렌다>(1953)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1958)에 출연시켰던 것.
그와 달리 보리스 카를로프는 벨라 루고시에 비해 살아생전 더 많은 명성과 부를 누렸다. 벨라 루고시의 대표 캐릭터가 드라큘라에 한정된 것에 반해 보리스 카를로프는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미이라>(1932) 등 유니버설 호러는 물론 RKO의 <신체 강탈자> <죽은 자들의 섬>(이상 1945) 등과 같은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이 때문에 벨라 루고시는 “프랑켄슈타인 따위 특수 촬영만 있어도 되지만 드라큘라는 연기력이 필요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벨라 루고시는 사후에 더 유명해져 지금은 그가 출연한 영화가 보리스 카를로프 영화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
해머, 몬스터 영화의 가교
194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독점금지법에 따라 붕괴하면서 B급영화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할리우드의 몬스터물은 영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스타일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바로 ‘해머공포영화’인데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해머영화사(Hammer Film Production)가 제작한 일련의 몬스터물을 일컫는다. 해머가 몬스터물과 같은 공포영화가 영국의 영화시장뿐 아니라 세계를 공략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장르라고 판단했다. 마침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소설 판권이 소멸된 상태여서 영화화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해머공포영화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작품은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다. 이 영화는 출발부터 제임스 웨일이 만든 유니버설의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인간의 오만함이 빚어낸 과학의 위험성에 더 중점을 둔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테렌스 피셔 감독은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를 메리 셀리의 원작소설에 더 충실한 쪽으로 연출의 가닥을 잡았다. 괴물보다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악마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와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적 관점은 단지 상대적인 수준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오히려 유니버설과 해머영화사의 몬스터물 사이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차이는 흑백과 컬러 간의 다름만큼이나 명백하다. <프랑켄슈타인>은 흑백의 명암 차이를 이용한 촬영으로 독일의 표현주의를 흡수했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컬러로 촬영한 덕에 첨탑의 건축양식과 과장된 장식성이 돋보이는 고딕스타일이 소설 그대로 묘사됐다. 실제로 해머의 몬스터물은 세트촬영이 돋보인다. 퇴폐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원색 이미지가 강렬해 관객의 시각에 깊은 인상을 ‘새겨 넣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의 흥행에 고무된 해머영화사는 고딕 이미지와 핏빛 색채가 강렬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1958)를 곧이어 영화화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에 이어 연출을 맡은 테렌스 피셔는 원작을 대폭 수정, 무대를 드라큘라 성으로 한정해 반 헬싱 박사와 드라큘라가 맞붙는 일대일의 대결 구도로 영화를 구성했다. 유니버설과는 차별된 해머의 몬스터물은 자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그 같은 결과에 힘입어 유니버설로부터 호러 클래식 리메이크 권한을 넘겨받아 <미이라>(1959) <늑대인간의 저주>(1961) 등과 같은 라인업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해머의 스타들
해머공포영화가 서구권에서 맹위를 떨치는 동안 이 장르는 ‘테렌스 피셔’를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를 해머 몬스터물의 역사를 완성한 배우로 배출했다. 테렌스 피셔는 해머에서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B급영화를 만드는 감독에 불과했다. 해머는 테렌스 피셔를 싼 값에 고용하면서 많은 관객들을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던 폭력 묘사, 원색이 강조된 세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테렌스 피셔는 해머의 대표 감독을 넘어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테렌스 피셔가 해머에서 영화를 만드는 동안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는 가장 훌륭한 협력자였다. 피터 쿠싱은 해머가 공포물로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의 미친 박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경우처럼 ‘광인’ 연기에 특출한 재능을 과시했다. 그의 매력을 간파한 해머 측에서는 속편(<프랑켄슈타인의 복수>(1958) <프랑켄슈타인 여자를 만들다>(1967) <프랑켄슈타인 죽이기>(1970) <지옥에서 온 프랑켄슈타인과 괴물>(1974) 등)을 마구잡이로 제작한 것은 물론 미친놈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원작의 이야기를 변형하는 등 그에게 추파를 서슴지 않았다.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사루만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는 해머공포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 B급영화에 단골로 출연한 배우였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 웃음기가 끼어들 틈 없는 차가운 인상은 그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문제는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이 발표된 이래 프랑켄슈타인 몬스터 이미지는 위압적이라기보다는 동정을 불러일으켰고 사악하기보다는 순진한 쪽으로 인상이 굳어졌다는 데 있다. 더군다나 유니버설은 오리지널 몬스터의 모습을 모방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한 상태였다. 그런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크리스토퍼 리의 몬스터는 그의 인상을 한껏 활용한 흉악한 괴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크리스토퍼 리는 해머영화사에서만 모두 12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 와 함께 드라큘라, 미라 등이 그의 캐릭터였다. 벨라 루고시, 보리스 카를로프와 함께 3대 몬스터 전문배우로 악명(?)을 떨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지만 크리스토퍼 리는 자신의 얼굴이 괴물 분장에 가려지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았다. 이후 그는 몬스터 전문 배우에서 악역 전문 배우로 돌아섰다.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의 스카라망가에서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까지. 그런데 <몬스터 호텔>의 드라큘라는 어쩐지 벨라 루고시보다 크리스토퍼 리와 더 닮아 보인다.
몬스터물의 영향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해머는 몬스터물의 인기가 쇠퇴하면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기야 영화사가 문을 닫는 지경에까지 몰렸지만 해머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현대에서도 의미를 갖는 것은 수많은 영화에서 감지할 수 있는 해머의 ‘공포분자’ 때문이다. 지금 현대의 공포영화에서 목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 즉 하얀 눈밭 위에 떨어진 붉은 핏방울과 같은 강렬한 색감, 고딕풍을 연상시키는 무대 세트나 미술이 제공하는 각종 이미지는 해머의 공포영화에서 시작된 것임은 자명하다.
유니버설은 좀 다른 경우이지만, 지금의 유니버설을 키운 건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몬스터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몬스터물은 한물간 장르가 되었지만 이를 통해 돈을 번 유니버설은 이제는 20세기 폭스, 워너 브러더스, 파라마운트, 콜롬비아, 월트 디즈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6대 메이저 영화사로 성장했다. 지난 2012년에는 창립 백주년을 기념,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등자사의 대표적인 몬스터물을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새롭게 복원했을 정도다.
<몬스터 호텔>은 유니버설이나 해머영화사가 주체가 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허당) 몬스터들의 천국’이라는 홍보태그답게 그간 이들이 쌓아온 몬스터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간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던 몬스터들이 이제는 인간을 보면 벌벌 떠는 캐릭터로 희화화되었다. 그럼에도 이 장르가 100년 가까이 갖가지 형태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건 놀라울 따름이다. 몬스터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Tip! 몬스터물의 대표작들
① 유니버설
<드라큘라>(1931)
토드 브라우닝 | 벨라 루고시, 데이비드 매너스, 헬렌 챈들러
브람 스토커의 소설을 극화한 수많은 영화 중 가장 큰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작품. 원래는 <노트르담의 꼽추> <오페라의 유령>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던 론 채니가 드라큘라를 연기할 예정이었지만 촬영 전 사망하면서 벨라 루고시가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프랑켄슈타인>(1931)
제임스 웨일 | 보리스 카를로프, 콜린 클라이브
미치광이 박사의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이 몬스터의 대명사 격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 보리스 카를로프가 연기한 몬스터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먼저 벨라 루고시에게 몬스터 역의 제안이 들어갔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투명인간>(1933)
제임스 웨일 | 글로리아 스튜어트, 클라우드 레인즈
<타임머신>으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을 극화한 영화. 1933년임에도 불구하고 안경만 둥둥 떠다니는 특수효과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특수효과가 발달한 오늘 날에도 제임스 웨일이 제시한 투명인간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제임스 웨일 | 보리스 카를로프, 콜린 클라이브, 엘사 란체스터
<프랑켄슈타인>의 성공으로 유니버설은 속편을 위해 메리 셀리에게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소설을 제안했고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 분장에 이어 제임스 웨일은 다시 한 번 인상적인 프랑켄슈타인 신부의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② 해머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 테렌스 피셔 | 피터 쿠싱, 헤이젤 코트, 크리스토퍼 리
해머영화사를 대표하는 공포 영화. 사형선고를 받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회상조로 시작하는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프랑켄슈타인’은 이후 해머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시리즈가 되었다.
<드라큘라>(1958)
테렌스 피셔 | 피터 쿠싱, 크리스토퍼 리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와 제목이 같다는 이유로 <The Horror of Dracula>로 개봉했다. 하지만 토드 브라우닝 버전에 비해 원작에 더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영국 개봉 당시 잔인하다는 이유로 많은 장면이 검열 당했지만 2000년대 중반 원본의 형태로 복원됐다.
<미이라>(1959)
테렌스 피셔 | 피터 쿠싱, 크리스토퍼 리
고고학자 존 배닝은 이집트에서 도굴을 하던 중 아난카 공주의 무덤을 모독한다. 미라로 보존되어 있던 그의 연인이 이에 격분해 깨어나고 존 배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영국으로까지 쫓아온다. 하지만 존 배닝의 아내가 아난카 공주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관심을 보인다.
<늑대인간의 저주>(1961)
테렌스 피셔 | 클리포드 에반스, 올리브 리드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을 간판으로 내걸었던 해머가 새롭게 수혈한 몬스터물. 유니버설의 <울프맨>(1941)을 변형한 이 영화는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청년의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선천적으로 늑대인간의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는 설정이 <울프맨>과 다르다.
movieweek
NO. 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