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명왕성> 신수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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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은 제목이 주는 SF적인(?) 분위기와 다르게 우리네 입시경쟁이 가져온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묘사하는 영화다. 극 중 배경은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서도 가장 성적이 좋은 아이들로 이뤄진 엘리트그룹이다. 이 그룹의 리더 격인 유진(성준)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김준(이다윗)이 지목된다. 하지만 준은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자신을 용의자로 몬 아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한국의 입시경쟁을 너무 극단화한 설정 아니냐고? <명왕성>의 신수원 감독은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혹하다고 말한다.

오프닝에서부터 입시 장면과 유진을 토끼몰이 하는 장면을 통해 입시지옥을 표현한다.
토끼사냥은 은유다. 그 장면에 캐스팅된 유진 역의 배우 성준이 역할은 좋아했지만 토끼사냥에 대한 은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캐스팅될 당시 시나리오는 맘에 들어 했지만 나를 만나본 후 결정하겠다고 했었다. 그는 유진이란 캐릭터에 대해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지 않나, 입시지옥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고 반문하더라. 그래서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건 너의 현실이다. 이 영화에는 판타지가 있다. 나는 토끼사냥과 같은 스터디그룹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고 나는 이걸 하나의 비유로, 은유로 극단화했다. 그러자 성준이 캐스팅을 승낙했다.

영화의 제목은 <명왕성>이다.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을 언급하며 이를 입시경쟁과 연결시킨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은 건가?
명왕성 퇴출은 2006년에 결정된 거다.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우연이 그런 얘기를 듣고 하도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봤다.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고 행성이라고 하기에 너무 작은 크기 때문에 천문학자 연맹에서 행성 지위를 박탈한 거더라. 웃기지 않나? (웃음) 더 재밌는 건 이에 항의하는, 그러니까 지위 복권을 요구하는 연맹이 있었다. 이게 재밌었다. (웃음) <레인보우>(2010) 촬영 끝내고 <명왕성>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제목은 ‘학교’였다. 그때 영화의 톤은 코미디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를 완전히 엎어서 진지하고 무겁게 갔다. 그러면서 과학만 잘하는 김준이라는 학생을 등장시킨 건데 자연스럽게 명왕성 얘기가 떠올랐다. ‘학교’에서 ‘토끼사냥’으로, 최종적으로 <명왕성>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밝은 코미디에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로 변모한 건 왜인가?
구상한 건 오래됐다. 영화 일을 하기 전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청소년 소설을 구상한 적이 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잘 안 써졌다. 예전에 교사 생활을 할 때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은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여드름치료제 비슷한 걸 만들었다며 보여주더라. 이걸 바르면 깨끗해진다고 하는데 재미있었다. 공부를 잘 한다기보다는 어느 한쪽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런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시험 자체가 자율화가 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내가 중학생 교사로 재직할 당시만 해도 지금만큼 치열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이들을 말 그대로 입시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다.

입시지옥은 결국 우리 사회의 나쁜 시스템을 학교 안에 이식시켰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극 중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음침한 지하창고 있지 않나. 이거 세트가 아니다. 학교에 섭외하러 갔다가 찾은 거다. 학교 담당자들도 그런 곳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더라. 내가 교사로 근무했던 학교에도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들이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밀폐되기 쉽고 은폐되기 쉬운 부분이 있지 않나. 그걸 활용한 게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학교가 군대와 감옥처럼 학생들을 몰고 간다. 이 영화를 위해 자료를 수집한 것을 보면 명문고에서 벌어지는 ‘왕따’ 사건도 있고 시나리오를 써놓고 나서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그런 여러 가지 사연을 시나리오에 녹였다?
가장 큰 이야기 줄기는 0.1%의 아이들 안에서 벌어지는 무한 경쟁을 그린 거다. 예전에는 입시경쟁을 해도 서울 변두리, 지방에 있는 학생들도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위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그룹의 범위가 견고해진 것 같다. 그 사람들이 결국 사회의 중심이 되는 거잖나.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상위 층의 덩어리들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비판조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풀어 가면 지루할 텐데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미스터리로 풀어간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연대기 순으로 묘사됐다. 지금 나온 영화는 그때 쓴 시나리오와는 완전히 다르다. 준이가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이었다. 근데 그 버전을 가지고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건을 먼저 두고 회고하는 방식으로 수정하게 됐다. 이걸 무슨 인질 소동극으로 판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절대 투자를 못 받는다. 그래서 형식을 고안한 건데 판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하루에 벌어지는 일로 처리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기준은 어떻게 잡았나?
이 영화는 준이가 스터디그룹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복하는 이야기지 않나. 우리끼리는 극 중 음침한 창고를 ‘미로의 복도’라고 부르는데 그 공간 안에서 현재와 과거를 나누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걸 시나리오에 다 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갔다. 근데 촬영을 하고 붙이려니까 분량이 많았다. 이걸 다 붙이면 상영시간이 늘어나게 돼서 많이 버렸다. 다 붙여버리면 긴장감도 떨어지고 지루할 것 같았다. <명왕성>은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다만 기교를 이용해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 편집은 지양했다. 그런 컷을 찍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콘티 연결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치고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레인보우>에서도 느낀 거지만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하되 기교에 기대지 않는 대신 직구를 던짐으로써 관객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감독님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참 쉽지가 않더라. 요즘 관객들은 기승전결을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는 방식 외에도 여러 가지 혼합된 형식에 익숙한 것 같다. <명왕성>은 결정적인 순간 반전이 존재하는 스릴러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었기 때문에 범인이 누군가가 아니라 이 아이들 사이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더 중요했다. 현재와 과거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공방이 본격적으로 겹쳐지는 게 준이가 서클에 들어가고부터인데 그때부터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편집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이 영화 속 교사는 아이들의 문제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못 본 채 한다. 사건을 해결하러 온 경찰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지금의 입시경쟁과 같은 문제는 어른들의 무능함이 한몫했다는 걸 꼬집는다. 
반장 역할을 한 배우가 조성하(<화차>의 전직 강력계 형사)다. 그런 네임 밸류의 배우가 출연하는 장르영화였다면 애들을 설득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이어야 할 텐데 우리 영화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 때문에 조성하 배우가 출연을 망설였다. 반장이 너무 무능하지 않느냐며 의문을 갖더라. 캐릭터에 매력을 느낄 수가 없던 거다.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그게 현실 아닌가요?”라고 말씀드렸다. 대신 이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하는 모습은 가져가려한다, 비겁한 인물로 만들지 않겠다고 설득했다. 작가 시절 경찰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들 말이, 우리가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미제 사건이 대부분이다, 무력함을 많이 느낀다고 하더라. 그게 바로 현실이다.  

전작 <레인보우>는 힘든 현실을 밝은 분위기로 돌파하며 미래를 도모했다. 그에 반해 <명왕성>은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한다. 우리 교육계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감독의 시선으로 이해해도 될까?
그렇다.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방식은 아이들을 입시 괴물로 만든다. 사회에 가서도 똑같을 뿐이다. 대학에서 스펙 쌓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유일한 목표 아닌가. 공교육이 이미 무너졌다. 학원으로 몰리지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지금 강남 아이들은 서울대가 목표가 아니다. 하버드가 목표다. 실제 리얼리티는 영화보다 더 크다.

사진 허남준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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