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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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이끌고 나가 330척의 왜군 배를 무찌른 명량 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명량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없이 출전해 커다란 승리를 거둔 기념비적인 전투로 유명하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딛고 승리를 했다는 것은 리더인 이순신의 지략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결과적으로 이순신의 영웅적인 업적을 기리는 셈이다.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는 다름 아닌 최민식. 최민식은 한국 영화계에서 감정의 끓는 점이 가장 높은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다.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이 최민식을 캐스팅했다는 것은 이순신에게서 뜨거운 무언가를 감지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만들기 위해 수십 종의 ‘난중일기’ 완역본을 비교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극 중 이순신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러면서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썼던 대목을 그대로 대사로 옮기기도 했는데 그 자체로 뜨거움을 설명하는 실례이기도 하다.

남들은 모두 승패가 정해진 전쟁이라며 두려움에 떨거나 도망갈 궁리를 하는 동안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며 의지를 다졌고 패배의식에 젖은 병사들의 용기를 깨우기 위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다짐으로 진정한 리더로서의 위용과 용맹함을 과시했다. 이순신은 조건의 유불리에 상관없이 목표한 바를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무모할 정도로 활활 타는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이었던 셈이다.

이는 배우 최민식이 그의 대표작에서 선보였던 연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올드보이>(2003)의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 갇혔던 경험으로 복수심이 하나의 성격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악마를 보았다>(2010)의 장경철은 홀로 귀가하는 여자들만을 골라 납치 후 신체를 훼손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으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의 최익현은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 세대의 과잉 욕망을 대변했다.  

이들 캐릭터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굽힐 줄 모르는 의지로 독불장군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오대수는 막강한 부와 조직력을 과시하는 이우진(유지태)에 맞서 홀로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장경철은 자신을 옥죄어 오는 수현(이병헌)의 도발에 도망가는 대신 정면대결을 택했다. 그리고 돈과 가문의 출세에 관해서만 관심 있는 최익현은 궤변과 허세를 앞세워 나쁜 놈보다 더 나쁜 놈이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최민식의 연기에서 보이는 뜨거움과 그에서 뒷받침된 저돌성은 곧 장군으로서의 이순신의 면모로 치환할 수 있다.

최민식의 입장에서는 그 자신의 연기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이순신이라는 적역을 맡은 셈이다. 역시나 그에 임하는 최민식의 태도에서부터 뜨거울 정도로 발산하고 무모하리만치 밀어붙이는 저돌성이 감지된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게 최민식의 입장이다.

그것은 <명량>은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알면 알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조상이 있다는것. 살아 있는 이순신 장군, 생생한 역사의 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김한민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최종병기 활>(2011)을 시작으로 역사 삼부작으로 만들고 있다. <명량>은 그 두 번째 작품이며 앞으로 독립투사를 주인공으로 한 세 번째 작품을 만들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인물의 캐스팅은 대개 감독이 가지고 있는 역사 인식과 해석 능력을 대변하는 일종의 지표다.

김한민 감독은 최민식을 경유한 이순신처럼 마음속 횃불을 끄집어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 큰불을 지필 수 있는 행동을 격려하며 작금의 시대정신을 깨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횃불이 더 크게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순신의 적수이자 최민식의 상대 역인 구루지마 역할에 류승룡을 캐스팅한 건 이런 배경이 고려됐을 터다. 영웅은 그에 걸맞은, 아니 그보다 더 강한 적수를 만났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구루지마는 냉혹함과 탁월한 지략을 갖춰 이순신 장군을 잡는 데 최고의 적임자라고 판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명량 해전에 투입된 용병이다. 뜨거운 이순신과 달리 구루지마는 차가운 면모로 좌중을 압도한다. 말 수도 적고 주변에서 뭐라 해도 자신의 판단이 설 때만 행동에 나서는 고집도 만만찮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명량>의 구루지마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냉혹함은 있지만, 이순신 장군에 맞설 만큼의 지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이라는 기능적인 역할에만 부합할 뿐이지 인간으로서의 구루지마는 온데간데없다. 근데 이건 이순신 장군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에게서 동일하게 목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명량>은 이순신의 장군으로서의 면모와 최민식의 연기만 돋보이는 영화다. 이순신과 최민식이 지닌 뜨거움에 대항할 만한 차가움이 대등하게 존재할 때 영화의 완성도는 극대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균형추가 한쪽으로 급속히 쏠리다 보니 <명량>은 이순신 장군만 두드러지는 개인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명량>보다는 <이순신>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영화인 것이다.    

시사저널
NO.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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