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블록버스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indieresergence

<인디펜던스 데이>가 개봉했다. 이 문장은 ‘블록버스터가 개봉했다’는 표현과 뉘앙스가 좀 다르다. 후자가 ‘즐길 만한 오락물이 나왔다’는 의미가 있다면 전자는 ‘멍청한(?) 블록버스터가 또 개봉했어?’라는 뜻이 크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이하 ‘<인디펜던스 데이 2>’)는 1996년에 개봉했던 <인디펜던스 데이>의 속편이다. 무려 20년 만이다. 그동안 할리우드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촬영과 배급이 디지털로 이뤄지고 3D 상영이 대중화되었다. 천지개벽할 수준… 까지는 아니지만, 2D 필름 상영이 일반적이었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의 폭이다.

그에 비하면 <인디펜던스 데이 2>는 변한 게 ‘없어 보인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규모 정도. 전편의 뉴욕 하늘을 덮었던 외계인의 비행물체는 지구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어마해졌다. 그리고 출연하는 배우 정도. 나를 따르라! 보무도 당당히 전투기를 직접 몰아 적진으로 향했던 토마스 휘트모어 대통령 역의 빌 풀먼은 전(前) 대통령으로 출연한다. 이번에는 나만 믿어라! 측근들이 만류하는 가운데도 홀로 외계인에 맞선다. 하지만 스티브 휠러 대위 역의 윌 스미스는? 출연료를 너무 과하게 요구해 출연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대신 ‘토르’ 크리스 헴스워스의 동생 리암 헴스워스가 새롭게 합류해 (과감한 결단력으로 포장된) 만용을 만방에 떨친다.

20년 전 외계인의 공격에 쑥대밭이 됐던 지구는, 아니 미국은 재건을 이뤄낸다. 이를 기념하려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던 중 세계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잡힌다. 20년 전 전쟁에서 생포했던 외계인들이 몸부림을 치고 아프리카에 숨겨 놓았던 외계 비행물체에 별안간 전원이 들어온다. 이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요양 중인 토마스 휘트모어는 악몽에 시달리니, 아니나 달라, 더욱 힘을 키운 외계인들이 다시 한 번 침공을 감행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속편을 만들었다고 해서 <인디펜던스 데이> 시리즈를 멍청하다고 매도하는 건가? 이런 소재의 할리우드 영화는 세고 셌다. 일일이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면의 1/3을 채울 수 있다. <인디펜던스 데이> 시리즈가 멍청한 블록버스터의 대명사 격이 된 이유는 팍스 아메리카의 메시지를 거대한 볼거리로 무리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실어나른다는 데 있다.

지구 절반의 크기에, 강력한 자기장까지 장착한 비행물체를 개발하고 운행하는 외계인의 지능은 결코 지구인이 따라갈 것이 못 된다. 이런 생명체를 지배하는 여왕 외계인, 즉 퀸 에이리언의 존재라면 그 능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터. 이제 지구는 끝장을 맞이하는가 싶은데 이 지점부터 <인디펜던스 데이 2>는 이야기가 널을 뛰기 시작한다. 굳이 ‘스포일러’라고 경고할 만한 설정도 아니라서 좀 자세히 설명하면,

퀸 에이리언이 이끄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전 멸망시킨 외계종족 중 하나가 스피어다. 스피어는 비밀리에 지구로 잠입, 나쁜 외계인이 지구를 재침공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이에 맞서려 일종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들의 과학 기술을 인간에게 전수해 지구를 구하려는 의도다. 이를 눈치챈 퀸 에이리언은 직접 스피어를 생포하기 위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근데 한다는 짓이.. 스피어 잡기에도 바쁠 텐데 아이들을 태운 (퀸 에이리언의 눈에는) 코딱지만 한 통학 버스에 정신을 뺏겼다가 미군의 공격에 위기에 직면한다.

이걸 지금 줄거리라고 요약하자니 난감하다. 왜 아이들 통학버스가 그곳에? 여기에 이성이나 합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미국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서는 외계인 정도 희생시켜야 하는데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설정이다보니 무리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비행물체를 개발하고도 한낱 인간에게, 아니 미국인 따위에 패배하는 외계인은 노골적인 미국 만만세의 메시지를 강백호의 왼손처럼 그저 거들뿐.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밀어붙일 수 있는 원동력은 할리우드 특유의 거대한 이미지 축조 능력에 있다. 실제 우주에서 촬영한 듯한 배경 하며, 동공이 확대되는 파괴 장면 하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퀸 에이리언의 이미지는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가 싶어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다.

실제로 북미에서는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2위를, 한국에서는 1위를 기록하며 전편만큼은 아니지만, 녹록하지 않은 흥행력을 과시했다. 성조기 휘날리며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일컫는 말)를 전파하는 이야기에는 킬킬거리면서도 재난 이미지에 푹 빠진 관객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멍청한 블록버스터에 대처하는 관객의 자세가 <인디펜던스 데이> 때와 비교해 얼마나 변화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인디펜던스 데이 2>는 시쳇말로 생각이 없는 영화인가? 멍청하게 구는 듯해도 실은 또 다른 보수적 가치를 은연중에 관객의 뇌리에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교활한 영화다.

<인디펜던스 데이> 1편과 2편을 모두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민주당 지지자다. 정치적 성향에 걸맞게 <인디펜던스 데이 2>에서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랜포드, 즉 여성으로 설정했다. 민주당 경선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것을 고려하면 롤랜드 에머리히가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려고 나름 신경을 쓴 것 같은 모양새다. 과연 그럴까? 그 배경을 파고들면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의도가 감지된다.

<인디펜던스 데이 2>와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는 아무리 진보적인 양 해도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서는 관객을 쉽게 현혹할 수가 없다.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는 온갖 보수적인 가치가 주도권을 잡는다. 그래서 이분법의 논리가 횡행하는 곳이 바로 재난 블록버스터의 세계다. 결국에 인간은 모든 재난을 극복하지만, 그 중심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건 남자이고, 백인이고, 이성애자다. 여자거나, 유색인종이거나, 동성애자이면 죽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여자 대통령이라는 그 자체로 특별할 뿐이지 <인디펜던스 데이 2>에서 엘리자베스 랜포드의 운명은 뻔하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의 토마스 휘트모어 대통령이 활약한 것과는 다르게 엘리자베스 랜포드는 ‘남자’ 정치인과 경호원의 보호를 받다가 영화 중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망 처리되어 극 중에서 사라진다. 엘리자베스 랜포드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임시로 이임 받는 이는 외계인과의 전투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남자 백인’ 조슈아 아담스 장군이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 토마스 휘트모어는 퀸 에이리언을 유인해 외계인의 우주선에 탑승하는 데 성공,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기폭장치를 터뜨리며 미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멍청한 듯 보여도 <인디펜던스 데이> 시리즈는 보수의 가치 전파를 위해 치밀하게 접근한다. 이와 같은 전략은 흥미롭게도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발견된다. “모유 수유? 역겹고 구역질 나고 끔찍하지 않나요?”, “제가 얼마나 잘 생겼습니까. 그러는 힐러리는 대통령 할 세숫대야입니까?”,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공짜로 의존하고 있어요. 한국은 미쳤어요. 한반도에 전쟁이 나든 말든 그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연일 쉴새 없이 뱉어내는 트럼프의 막말은 가히 블록버스터급이다. 그중 몇 개 추린 것만 보아도 그의 막말은 여성에, 자신들보다 약한 국가에, 소수자에게로 향한다. 그래놓고 한다는 소리,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답게 행동하겠습니다.”

이런 멍청이가 대통령 후보가 다 뭐야 공화당 경선이나 통과할까 웃으면서 지켜봤던 이들은 현재 상황 ‘멘붕’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설마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에 떨고 있다. 예상과는 다르게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마당에 트럼프가 다가오는 미국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사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어쩌다? 그의 막말이 그동안 체면을 생각해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지지를 끌어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재난 블록버스터가 노리는 효과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을 비웃다가 계속되는 재난 이미지의 노출에 재미를 느끼고 그러면서 서서히 이들 영화가 옹호하는 가치에 은연 중으로 넘어가는 악순환. 설마 이런 멍청한 블록버스터가 지향하는 가치를 옹호할 사람이 있겠어, 라고 웃어넘기는 동안에도 혹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멍청하다고 조롱하고 놀려대고 무시해도 이에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미국 만만세를 외치는 블록버스터가 기획되고 개봉하는 배경이다.

블록버스터라는 명칭에 걸맞게 대규모로 밀어붙이는 물량 공세는 매번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한다. 이에 경계하는 기존의 관객에게는 변하지 않은 듯 교묘하게 메시지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이에 동조하도록 유도하며 진화를 꾀한다. 이미 <인디펜던스 데이 2>는 속편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극을 마치며 많은 이들의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올려놓은 상태다.

이런 종류의 블록버스터가 노리는 효과라면, 트럼프와 같은 이가 지지를 받는 사회적 현상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재난 블록버스터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기능 중 중요한 게 현실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오락성이다. 다만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로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극장전>(2005)에서 극 중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동수(김상경)가 하는 얘기다. 생각을 원천봉쇄하려는 재난 블록버스터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영화 시즌이 도래했다.

 

arena homme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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