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 투 더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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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천만 관객 동원과 더불어 화제를 모았던 건 배우 오달수의 한국 영화 사상 최초 누적 관객 1억 돌파였다. 오달수는 극 중 덕수(황정민)의 곁을 평생 지키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죽마고우 ‘달구’ 역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국제시장>이 700만 관객을 찍었던 1월 3일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오달수는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의 뻘쭘남 역할로 영화 데뷔한 이래 <국제시장>까지, 13년 동안 무려 40편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단편영화까지 더하면 60편 가까이 된다!)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 중인 <국세시장>을 제외하면 총 9,360만 명의 누적 관객을 기록했던 셈이다.

한 해에 대략 3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한 편 당 평균 250만 명 정도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렀다. 천만 영화만 해도 (괴물 목소리로 출연했던 <괴물>까지 포함해) 무려 다섯 편(<국제시장> <변호인> <7번방의 선물> <도둑들>)을 기록했으니 2002년 이후 한국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최소 한 번쯤 오달수의 연기를 극장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감초 연기자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씬스틸러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오달수는 그 원조 격에 해당하는 것이다.  

누적 관객 1억 돌파에 대한 소감에 대해 오달수는 이런 요지의 대답을 했다. ‘배우로서 영광이다. 더 정확히는 1억 관객이 아니다. 연극배우 시절 관객 25만 명을 더해 누적 관객 1억25만 배우다.’ 축하할 일이지만, 수치를 제외하고 이 기록이 배우 본인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일지는 잘 모르겠다. 1억 명이 넘는 누적 관객 중 오달수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본 관객이 얼마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비하할 목적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듯하다. 그는 한국의 많은 감독과 동료 배우들이 선호하지만, 사실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는 아니다. 관객이 영화를 선택할 때 영향력을 발휘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나는 1억 명 누적 관객 수치가 2002년 이후부터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영화사(史)에서 지난 20년은 변화의 폭이 가장 컸던 시기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국영화는 ‘자기 나라에서 제작한 영화’를 뜻하는 방화(邦畵) 대신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감독들이 관객의 호응을 얻으면서 해외영화와 동일한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세계의 영화팬들이 주목하는 개성 있고 작품성 높은 작품을 연달아 내놓는 국가로 급부상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는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을 찾아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중 오달수는 한국영화의 권불십년이라 불리는 2000년대를 그대로 관통했다. 그동안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체화한 한국영화계의 유일한 배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게는 1억이라는 수치보다 이를 가능케 한 오달수 출연의 작품들로 2000년대 한국영화의 지도를 그리는, 즉 ‘맵 투 더 오달수’를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지금 와서 보면 오달수의 영화 연기 데뷔는 당시 한국영화계의 흘러가는 상황으로 보건대 시대적 요청이었다. 2002년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때였다. 대기업 제작사의 통조림 가공방식의 산업 시스템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의 젊은 감독들은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경유하며 새로운 영화를 발표하는 데 경쟁적이었다.

새로운 영화에는 그에 걸맞은 ‘뉴페이스’가 필요한 법.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소환된 배우 중 한 명이 오달수였다. 연극 무대에서 다진 발군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스크린에서 주목받은 오달수의 최고 강점은 어디서 본 적 없는 개성 있는 마스크였다. <도둑들>(2012)에서 오달수와 함께했던 최동훈 감독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에서) 그가 가진 강점에 대해 “(오)달수 선배 같은 분은 아무것도 안 하고 나오기만 해도 사람들이 웃으니까 기대 이상이죠.”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영화라는 것은 결국 개성을 말한다. 오달수의 진가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감독은 박찬욱이었다. 오달수는 “첫째도 개성, 둘째도 개성, 무엇보다도 오직 개성”을 부르짖는 박찬욱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정도였다. <올드보이>(2003) 이후 박찬욱 감독이 국내에서 만들었던 영화에 모두 출연했는데 (심지어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2003)까지!) 하나같이 개성이 스크린 밖으로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였다. 금이빨 이미지가 선명한 <올드보이>의 사설 감옥 책임자 철웅,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재)에게 “가불은 불가”라고 고개를 돌렸다가 본전도 못 찾은 나루세 베이커리의 장씨 등 비록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처럼 오달수의 배우 활용법은 개성을 중시하는 감독 군(群)에서 두드러졌다. 김지운, 봉준호 감독이 이에 해당한다. 예사롭지 않은 연출력을 과시하는 감독답게 이들은 오달수의 마스크 외에 안정된 발성에서 나오는 엇박자의 말의 리듬과 독특한 음색을 또 하나의 개성으로 삼았다. <달콤한 인생>(2005)에서 총을 거래하러 온 선우(이병헌)에게 되지도 않는 러시아어로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었던 불법 무기 거래 책 명구, ‘꾸에엑, 꾸에엑’ <괴물>(2006)에서의 괴물 목소리 출연은 그가 얼굴만(?)으로 경쟁하는 배우가 아님을 확실히 했다.

오달수의 활약은 2005년과 2006년에 두드러져서 각각 4편과 5편에 출연하며 주가를 높였다. 오달수에게는 영화배우로 맞이한 첫 번째 전성기였던 셈이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오달수가 지닌 배우의 고유한 특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신선한 개성을 넘어 코믹한 이미지로 대중 속에 자리 잡았다. 그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 영화의 다양성보다 모든 가치가 흥행으로 수렴되는 산업이 영화계를 지배한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오달수는 그동안 영화의 개성을 살려 주는 미장센의 존재에서 흥행 영화에 빠질 수 없는 감초 연기자로의 좌표 변환이 급속도로 이뤄졌다.  

2005년과 2006년에 이어 오달수는 2011년과 2012년에도 각각 4편과 5편의 영화를 필모그래프에 추가하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첫 번째 전성기와 비교해 의미가 다른 건 영화배우 경력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만난 시기라는 사실에 있다. 천만 영화 <도둑들>과 <7번방의 선물>에 출연했고 500만 명 가까운 흥행을 기록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도 이 시기에 속한다.

특히 2012년은 한국영화 산업의 측면에서 중요했던 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1년에 한 편 나오는 것도 힘들다고 하여 신의 스코어로 불렸던 천만 영화가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두 편이나 등장하면서 대형 제작사들의 천만 영화를 향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던 천만 영화는 2012년을 기점으로 매해 관객 수를 기록적으로 늘려 가며 이제는 2천만 관객 영화도 꿈이 아님을 증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산업의 규모는 커졌지만, 새로움이라는 모험 대신 안정된 흥행을 추구하다 보니 대개의 영화는 성공한 작품의 특정 요소를 그대로 따르는 나름의 공식을 갖게 됐다. 영화의 전반부는 웃음으로, 후반부는 감동 코드로 포장하면 흥행할 거라는 믿음이 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 제작사에는 팽배한 것이다. 영화 초반부터 관객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코미디가 필수인데 이런 역할에 오달수는 진즉에 검증이 끝난 배우다. 다시 한 번 최동훈 감독의 말을 인용하면, “다들 좋아하시죠. 인간들이 사는 게 힘들어서 하늘에서 보내준 요정이라고들 하죠. (웃음) 등장만으로도 관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엄청난 능력이에요.”

오달수 출연의 천만 영화 중 네 편이 2012년 이후 이뤄진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대개 영화의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 배우들은 진지한 역할에 특화된 경우가 많아서 이를 보조해줄 코믹한 캐릭터가 그 옆에 반드시 필요하다. 오달수가 연기한 <국제시장>의 달구, <변호인>의 박동호는 각각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덕수와 ‘송변’ 우석에게는 없는 웃음에 방점이 찍힌 기능적인 캐릭터에 가까웠다. 더욱이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는 보기보다 쉽지 않아 오달수처럼 재능을 보인 배우는 다작이 이제는 예사가 되었다. 동시에 여러 작품에서 관객을 기쁘게 하는 배우를 만난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배우 본인이나 한국영화에 마냥 도움이 되는 건 아닐 테다.

한국영화계의 배우 풀은 그리 넉넉한 편이 못 된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알아준다지만, 몇몇 스타 배우에게 시나리오가 몰리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흥행이 검증된 장르와 소재에 제작이 집중되고 있어 많은 배우가 다양한 출연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달수의 누적 관객 1억 돌파는 바로 그와 같은 한국영화계의 허약한 토대 위에서 달성된 수치다.

오달수의 존재는 한국영화계의 축복이다. 한국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데에는 오달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기록적인 다작임에도 불구하고 재능을 소모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특출난 캐릭터 소화 능력에 있다. <조선명탐정2: 놉의 딸>에서 오달수가 연기한 서필과 콤비로 호흡을 맞춘 김민 역의 김명민은 “달수 형은 소모되지 않는 유일한 연기자라는 점에서 대단하다. 이건 배우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오달수가 갖춘 능력과 별개로 마치 천만 영화 기원의 부적처럼 그의 연기를 소비하는 작금의 제작 배경은 못마땅하다. <조선명탐정2: 놉의 딸> 기자시사회 간담회 자리에서 오달수는 “2편은 1편과 다르게 비중이 커져서 뿌듯하다. 김명민과 함께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부담이 생겼을 때의 뿌듯함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영화 데뷔한 지 13년, 이제야 오달수는 주인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까지 올라섰다. 그렇다면 곧 오달수 단독 주연의 영화도 볼 수 있을까?  

이건 개인적인 바람도, 누적 관객 1억 돌파에 대한 예우도 아닌, 한국영화계에 주어진 과제 같은 것이다. 오달수의 누적 관객 1억 명 돌파는 한편으로 한국영화계가 필요로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드러낸 반증의 효과로도 의미가 깊다. 제2, 제3의 오달수를 발굴하고 감초나 주인공의 파트너를 넘어 오달수 배우 단독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영화 시장을 가능케 하는 것. 이는 오달수를 매개로 한 한국영화의 영토를 넓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맵 투 더 오달수’가 지닌 더 큰 가치일 것이다.  
 

ARENA HOMME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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