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스틸>,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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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미국에 존재하는 수십 종(?)의 슈퍼히어로 중 가장 대표 격일 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앞세운 아메리카니즘의 첨병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캐릭터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은 슈퍼맨을 일종의 신화로 삼아 일천한 자신들의 역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맨 오브 스틸>은 그 최신 버전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이 자신들의 실제 역사를 어떻게 부정하고 이를 이상적인 형태로 대체하는지를 목격할 수 있다.

I’m your father?

<맨 오브 스틸>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발화되는 지점은 어른으로 성장한 클라크 켄트(헨리 카빌)가 북극에 감춰진 크립톤 우주선을 발견하고 조엘(러셀 크로)을 만날 때다. 조엘은 크립톤 행성이 파괴될 당시 클라크를 지구로 보낸 후 사망한 친부(親父)다. 하지만 지구로 와 조너선 켄트(케빈 코스트너) 슬하에서 자란 클라크는 탈(脫)지구인적 능력이 저도 모르게 뿜어져 나올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심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오던 터다. 그것은 곧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나 달라, 우주선 내의 시스템 상으로 존재하던 조엘은 아들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인사말을 대신한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 I’m your father”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1980)을 통해 미국 영화사 최고 명대사 지위에 오른 ‘내가 너의 아버지다’는 미국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일개 영화를 넘어 미국의 신화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인데 그런 맥락에서 이 대사가 <맨 오브 스틸>에도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슈퍼맨 시리즈 또한 미국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신화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슈퍼맨은 태생부터가 미국, 그 자체다. 외계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설정은 과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입성한 이주민과 겹치고, 클라크가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는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지위를 놓지 않는 현재의 미국을 그대로 반영한다. <맨 오브 스틸>은 이와 같은 슈퍼맨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견해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그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 초반, 크립톤 행성의 멸망과 클라크의 지구 입성을 배치한 후 지구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으로 자각하는 슈퍼맨의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 참여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맨 오브 스틸>을 <수퍼맨 리턴즈>(2006)의 후속작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이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그랬던 것처럼 ‘슈퍼맨 비긴즈’ 즉, 영웅의 탄생기로 <맨 오브 스틸>을 위치시킨다. 또 하나, 슈퍼맨을 제목에 적시하지 않는 전략 역시 <다크 나이트>(2008)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를 연상시킨다. ‘강철 사나이’라는 의미의 <맨 오브 스틸>을 내세움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허구의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한다. 대신 클라크가 겪는 고뇌를 통해 슈퍼맨의 아버지, 아니 미국 역사의 뿌리가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기인하는지 탐구해 들어간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 이 대사가 <맨 오브 스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말이 되는 건, 그래서다.  

‘평화’인가, ‘폭력’인가?

그 자신이 친부임을 확인시킨 조엘은 클라크에게 그간의 사연을 들려주며 마지막에 가서야 이런 얘기를 한다. “희망을 알리는 너는 가문의 상징이다. 그러니 네가 지구인을 잘 다스려 이상을 심어주렴.” 그런데 클라크가 지구인에게 호감을 얻어 희망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장벽이 하나 있다. 슈퍼맨의 강력한 적으로 부상하는 조드(마이클 섀넌) 장군이다. 그는 무리한 자원 채취로 크립톤 행성이 종말 위기를 맞자 반란을 꾀해 재건을 꿈꾸는 인물이다. 이를 저지하려다가 조엘이 목숨을 잃었으니 슈퍼맨의 입장에서 조드는 가문의 원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슈퍼맨이 조드 장군과 확연하게 전선을 긋는 것과 다르게 지구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둘은 전혀 다른 인물이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온 몸으로 총알과 폭탄을 막아내는 이들의 초인적인 능력은 그 자체로 지구인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비친다. 극 중 클라크가 지구인 아버지 조너선 켄트에게 건네는 대사를 빌리자면, “아버지는 사람들이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날 거부할 거라 믿으셨죠. 세상은 아직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맨 오브 스틸>은 클라크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지구인이 슈퍼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입장을 정리해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처럼 <맨 오브 스틸>은 인물의 설정부터 극 중 사건까지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느끼는 ‘혼돈’이 이야기를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슈퍼맨이 두 명의 아버지를 두고 있는 것은 이미 설명한대로고 지구에서의 이름이 클라크인 것과 다르게 크립톤에서 그의 이름이 ‘칼엘’이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두 명의 아버지로부터 얻은 두 개의 정체성, 그에 더해 슈퍼맨은 조드 장군을 상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둘을 한통속으로 보는 지구인들의 편견도 극복해야 하니, 두 개의 전쟁 속에서 그가 느낄 혼돈이 얼마나 힘들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이는 선택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이 영화의 의도일 것이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하는 문제일 텐데 미국의 이미지는 민주주의, 자유수호와 같은 세계 평화가 한쪽에 있다면 반대편에는 전쟁, 학살과 같은 폭력성향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전자가 백(白)역사라면 후자가 흑(黑)역사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은 평화 수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운데 뒤로는 전쟁을 통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미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신대륙 발견한 후 토착민이던 인디언을 몰아내고 미국이라는 이민 국가를 건설한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학살의 역사 혹은 폭력의 역사에 대해 의도적으로 회피하며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그들 역사의 근간으로 내세우는 게 현실이다.

<맨 오브 스틸>의 제작진이 슈퍼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악역인 렉스 루터에 앞서 조드 장군을 주목한 건 이런 배경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사가 지닌 속사정을 이해한다면 극 중 조엘과 조드 장군이 상징하는 바가 확연해진다. “넌 지구인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 되어줄 거다. 때가 되면 넌 그들이 기적을 만들도록 돕게 될 거다.”라는 대사처럼 조엘은 슈퍼맨이 평화의 신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에 반해 조드는 클라크에게서 크립톤인의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를 빼앗아 지구 위에 크립톤 행성을 재건하려 한다. 이런 상반된 태도 때문에 조엘은 미국의 백역사를, 조드는 흑역사를 상징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신화인가, 허구인가?

바로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 미국에게 슈퍼맨은 그들이 옹호하는 입장을 전 세계에 알릴 좋은 알리바이가 된다. 무슨 의미냐면, 미국은 전 세계가 그들을 세계 평화의 수호자로 보아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열망에 걸림돌이 되는 미국 역사에 암처럼 퍼져있는 폭력과 학살의 역사에 대해 부정할 필요가 있다. <맨 오브 스틸>의 이야기에 빗대자면, 칼엘은 아버지 조엘의 바람에 따라 지구인에게 슈퍼맨이라는 신적인 존재로써 평화의 기적을 가져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에 따라 폭력으로 지구를 파괴하려는 조드 장군을 물리쳐야만 한다.
 
그래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슈퍼맨과 같은 ‘신화’다. 다행히(?) 잭 스나이더 감독은 슈퍼맨이 미국 대중문화를 넘어 미국 역사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슈퍼맨과 조드는 신화 속의 신이나 마찬가지다.” (씨네21 909호 ‘슈퍼맨은 우리 모두의 아이콘?’ 중 감독 잭 스나이더 인터뷰에서 발췌) 그 때문일 거다. 크립톤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맨 오브 스틸>의 극 초반부는 신화의 분위기가 물씬하게 풍긴다. 등장하는 크립톤 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도 되는 양 태도를 취하고 행동하며 이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하려 든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가 신화 속의 신이라고 칭한 슈퍼맨과 조드가 LA와 뉴욕 도심을 배경으로 벌이는 싸움은 마치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도시 전체를 우습게 초토화시킬 만큼  허구의 정도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혹자는 지구와 우주를 오가며 펼치는 액션이 카메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이뤄지는 까닭에 흡사 일본만화 <드래곤볼>을 연상시킨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신화와 허구가 범벅이 된 <맨 오브 스틸>을 다루는 제작진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사실주의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이처럼 신화와 허구와 사실이 혼합된 <맨 오브 스틸>을 보면 극 중 클라크가 겪는 혼란이 분열에 가까운 쪽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예컨대, 슈퍼맨 수트의 가슴에 상징처럼 박혀 있는 ‘S’를 두고 크립톤에서 칼엘로 불리던 클라크는 로이스(에이미 애덤스)에게 다소 뜬금없는 논리를 편다. 크립톤에서 ‘S’는 ‘희망’을 뜻한다는 거다. 물론 우리는 이 ‘S’가 ‘Super’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을 슈퍼국가라고 칭했지만 지금의 미국을 수식하는 슈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힘으로 밀어붙여 자신의 적으로 간주되는 나라를 몰아붙이는 모습이 폭력적으로 비추는 것이다.  

그와 같은 ‘슈퍼’의 의미를 부정하고 희망을 내세우는 것, 이는 슈퍼맨이 조드 장군을 물리쳐 폭력의 역사를 거세하고 평화의 역사를 정통으로 삼으려는 맥락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맨 오브 스틸>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주장하는 역사란 학살이라는 사실(fact)을 부정하기 위해 소환된 슈퍼맨이라는 허구와 평화 수호라는 신화가 더해진 분열증적인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이 지워질까. 아무리 제목이 <맨 오브 스틸>이라한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슈퍼맨’으로 기억한다. 마찬가지다. 조드 장군을 물리침으로써 마지막 남은 크립톤의 영향력을 제거했지만 슈퍼맨에게 두 명의 아버지라는 뿌리는 결코 지워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 아니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앞으로도 미국은, 그리고 슈퍼맨은 폭력과 평화라는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분열을 거듭할 것이다.  

딴지일보
(2013.6.17)

2 thoughts on “<맨 오브 스틸>,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1. 평론가님의 맨오브스틸 해석이 저에게는 인상깊었네요 ㅋ ㅋ
    저는 잭 스나이더 감독을 훌륭한 비쥬얼리스트인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오죽하면 조드장군과 슈퍼맨의 하늘을 날면서 펀치를 하는게 게임에도 쓰였겠습니까? ㅋㅋ) 하지만 이미지의 과용과 남용이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게 특히 배트맨 대 슈퍼맨이나 써커 펀치같은 영화에서 더욱 부각이 되서 저는 두 영화를 상당히 재미없게 봤네요.
    결론은 요번 저스티스 리그에서 잭 스나이더 감독이 이미지에 힘을 덜 주고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집중한다면 저스티스 리그가 성공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위기가 아니라 이미지의 과용과 남용으로 클락켄트, 브루스 웨인 등의 캐릭터에 몰입하기 저는 힘들었습니다.. dc팬으로서 잘 나오길 바랄뿐입니다.ㅠㅠ

    1. [맨 오브 스틸] 저는 되게 애정하는 영화입니다. [300]은 이상하게 정이 안 가는데 [왓치맨]도 좋고 잭 스나이더의 팬이에요. [배트맨 대 슈퍼맨]도 오히려 확장판 같은 경우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스티스 리그]도 워너가 너무 간섭만 하지 않고 잭 스나이더의 비전만 밀어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저 역시 DC팬으로서 [저스티스 리그] 기대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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