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본, 나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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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은 항상 불만스러웠다. <레이어 케이크>(2004) <스타더스트>(2007)를 연출한 현역 감독인데도 사람들은 그가 영화를 만들 때면 늘 ‘매튜 본이 누구야?’ 하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나를 신인감독으로 쳐다봤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여섯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그는 2002년 세계적인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와 결혼한 후 한동안 ‘쉬퍼의 남자’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초 혜성같이 등장한 슈퍼히어로 영화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이하 ‘<킥 애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제 매튜 본은 슈퍼히어로물의 미래를 책임질 감독으로 추앙받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제작자 마인드로 영화를 만들다

흔히 슈퍼히어로물은 제작비 1억 달러를 가뿐히 넘기는 블록버스터와 동일시되지만 <킥 애스>는 3천만 달러 밖에 되지 않는 저예산영화다. 12세 소녀가 킬러로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의 제작을 허락할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는 없었다. 매튜 본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영화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감독의 권한은 그에 맞춰 축소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좋은 감독이라면 영화 제작에서의 자유를 얻기 위해 역량 있는 제작자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매튜 본은 <레이어 케이크>로 감독 데뷔하기 전 제작자로 먼저 영화 일을 시작했다. 정규 영화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뛰어난 재능을 보인 가이 리치와 손잡고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9, 이하 ‘<록 스탁>’)를 제작한 것. 96만 파운드의 제작비를 들여 전 세계적으로 1천 8백 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그는 이후에도 할리우드 시스템과는 거리를 유지한 채 영화 제작에 몰두했다. <록 스탁>의 TV시리즈를 기획해 인기를 모았고 가이 리치의 차기작 <스내치>(2000)를 제작해 또 한 번의 국제적인 성공을 거뒀다.

연이은 흥행작으로 가이 리치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 같았지만 <스웹트 어웨이>(2002)의 여주인공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게 됐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최적이라는 매튜 본과 달리 가이 리치는 당시 아내였던 마돈나를 고집한 것인데 결국 <스웹트 어웨이>는 기록적인 흥행 실패와 혹평 사례로 그해 최악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거물이 되어버린 가이 리치와의 사업적인 관계를 끊은 매튜 본은 이참에 연출자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독립영화 제작자가 살아남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그의 연출 데뷔작 <레이어 케이크>는 범죄 세계를 배경으로 10명에 가까운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킨다는 점에서 <록 스탁><스내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영화다. 다만 매튜 본은 동명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줄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간단명료하게! 이것만 지키면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간단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복잡하고 나쁜 아이디어보다 훨씬 좋다.” 그의 말처럼 <레이어 케이크>는 <록 스탁><스내치>와 비교 해봐도 제작 규모가 크지 않다. 눈을 현혹하는 연출 대신 이야기 전달에 충실하며 감독의 예술적 야심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의 연출 특징은 제작자를 겸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감독 매튜 본의 장점은 저비용 고소득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레이어 케이크> 이후 차기작으로 <스타더스트>(2007)를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 계속된 기대작들의 실패로 판타지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점차 떨어지는 시기라 <스타더스트>는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매튜 본은 원작의 복잡한 세계관을 최대한 단순화 하고 과도한 기교를 억제하며 CG에 대한 비용 부담을 줄이는데 주력했다. 비록 영화적 평가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최소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했다.    


<킥 애스>로 사고 치다

<킥 애스>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들로부터 숱하게 퇴짜를 받았음에도 결국 완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매튜 본 자신이 독립영화 제작자로 쌓아온 노하우 덕분이었다. 슈퍼히어로물이라지만 <킥 애스>에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아 스케일에 대한 책임을 덜 수 있었다. 영화적 공간을 몇 군데로만 한정하고 또한 빅 스타 대신 가능성을 가진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빅 대디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경우, 시나리오만으로 캐스팅에 성공한 경우였다. (케이지는 시나리오를 읽고서는 “바로 내가 찾던 거야!” (I got it!) 라고 외치며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매튜 본은 <킥 애스>가 실패할 수 없는 프로젝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동명의 원작만화를 본 후 “신이시여, 이제는 <킥 애스>와 같은 슈퍼히어로의 시대입니다!”라고 외쳤을 정도다. 그는 제작자 출신답게 시대의 트렌드를 간파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감독이다. <록 스탁>으로 감각적인 범죄영화의 유행을 이끌었고 <스타더스트> 역시 판타지물의 유행에 편승한 영화였다. 이는 제작자로 영화 일을 시작했고 또한 제작과 함께 연출을 병행하는 까닭에 가능한 그만의 영화적 방법론이라 할만하다. 

<킥 애스> 역시 마찬가지다. 슈퍼히어로물이 전 세계적인 현상을 이루고 있는 시점에서 <킥 애스>는 보다 현실적인 영웅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선도하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 “내가 코믹북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극중 정의수호를 위해 슈퍼히어로를 꿈꾸는 주인공 데이브(아론 존슨)는 학교에서는 왕따, 집에서는 외톨이인 인물로 설정됐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지도 못했지만 희생정신을 통해 영웅이 된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슈퍼히어로인 셈이다. 

<킥 애스>가 매튜 본에게 일종의 전환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대중들에게 비로소 감독임을 입증시킨 까닭이다. 그는 몇 해 전 <엑스맨-최후의 전쟁>(2006)의 감독을 맡았다가 가족 문제로 촬영을 불과 사흘 앞두고 하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후 그를 대신해 들어간 브렛 레트너 감독의 완성된 작품을 보고는 단순 볼거리 영화로 전락시켰다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매튜 본은 <킥 애스>의 성공 덕에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감독으로 결정됐고 또한 <킥 애스2>를 연출할 예정이다. 이제 사람들은 매튜 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기 때문에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킥 애스2>를 기대작 목록에 올려둔 상태다. 바야흐로 매튜 본 감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Tip! 될 성부른 연기자를 알아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매튜 본은 가능성 있는 배우를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난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다. 빅 스타를 쓸 형편은 안 되지만 그렇다면 아예 발굴하겠다는 제작자의 마인드가 작용한 전략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레이어 케이크>를 통해 제임스 본드 역에 낙점을 받은 경우다. <레이어 케이크> 촬영 당시만 해도 크레이그는 007이 되네 마네 논란이 오가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매튜 본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서 미녀를 밝히고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본드스러운’ 면모를 이끌어내 007 캐스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레이어 케이크>에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연인으로 등장한 시에나 밀러는 섹시한 자태를 뽐내며 인지도를 높였고 <해피 고 럭키>의 셀리 호킨스도 특유의 신경질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킥 애스>에서 매튜 본이 발굴한 배우라면 단연 힛 걸 역의 클로이 모레츠다. 귀엽고 예쁘장한 용모와 달리 상대방의 사지를 절단하고 피분수를 쏟게 만드는 액션에 전 세계 팬들은 열광했다. 그녀는 <렛 미 인> 리메이크 주인공으로 촬영을 마친 상태고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위고 카브레의 발명품>에도 캐스팅되어 ‘이미’ 스타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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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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