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Late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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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의 <만추>(2009)는 이만희 감독의 동명 영화를 세 번째로, 아니 네 번째로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지금은 필름이 소실되어 그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는 이만희의 <만추>(1966)는 일본에서 사이토 고이치 감독이 <약속>(1972)이라는 제목으로 가장 먼저 리메이크했다. 그 후 김기영 감독이 <육체의 약속>(1975)으로, 김수용 감독이 <만추>(1981)로 다시 만든데 이어 2009년 김태용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리메이크인 만큼 김태용의 <만추> 역시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 휴가를 받은 여죄수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던 중 정체가 묘연한 남자를 만나 서로에게 잠시간의 위안이 된다는 내용을 공유한다. 중국인 애나(탕웨이)가 남편을 살해한 후 자기처럼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한국인 훈(현빈)을 만나 상실감으로 텅 빈 마음속에 뜨거운 점 하나를 찍는다는, 원작의 정서에 가까운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김태용 버전의 <만추>가 이전의 ‘<만추>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미국의 시애틀을 극중 배경으로 삼기 때문이다.

김태용이 <만추>에서 이룬 미학적 성취는 절대적으로 시애틀이 갖는 도시의 속성에 기댄 바 크다. 쓸쓸함을 캐릭터로 내세운 도시는 많지만 그중 시애틀은 비와 안개, 그리고 자살로 유명하다. 인간의 고독을 묘사하기에 이곳만큼 적당한 장소를 찾기 힘들다. 김태용은 흡사 에드워드 호퍼의 황량한 도시 풍경을 연상케 하는 구도 속에 삶의 동력을 잃은 애나의 우울한 소외를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처지를 ‘길의 영화‘로 구현했던 이전의 <만추>들과 달리 도시 속에 갇혀 헤매는 인간의 절대 고독을 도시의 영혼과 포개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김태용의 <만추>는 ’도시의 영화‘에 가깝다. 

<만추>가 시대를 달리하며 다시 만들어지는 이유는 주인공 남녀의 전사(前史)가 희미하게 다뤄지는 탓에 감독이 개입할 여지가 넓다는 게 주요한 이유다. 남모를 사연 빼면 뭐 하나 제대로 소유한 것 없는 텅 빈 유리 같은 인물들을 감독 각자의 개성에 맞춰 채워가는 구조의 연출은 누구라도 탐낼만한 소재인 것이다. 특별히 김태용이 <만추>를 통해 주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시아성’이다. 미국이라는 이국에서 중국인 애나와 한국인 훈은 어쩔 수 없는 이방인에 다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 사이의 아시아인이라는 공통분모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어떤 기호이고, 무엇보다 감정이다. 그렇게 김태용은 이국에서 하나 되는 아시아의 동일성에 매료된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계에 리메이크 시도가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김태용의 <만추>는 대표적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달리하며 리메이크가 시도된 작품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하게 자리매김한다. ‘만추(晩秋)’라는 제목처럼 가을에 볼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드라마에서 맹활약한 현빈의 인기에 힘입어 지각 개봉하는 <만추>는 한국영화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긴밀하게 이어져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사례다. 또한 한국이라는 개별성보다 아시아라는 보편성에 주목하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할만하다. 왜 <만추>가 2009년에 리메이크되고, 미국에서 찍어야만 했는지 그 당위성을 김태용 감독은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만추>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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