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TV로 스포츠뉴스를 시청하던 중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축구계를 호령했던 브라질의 호나우두 선수의 은퇴소식을 접하게 됐다. 과거의 날렵함은 온데간데없고 뚱뚱해진 몸을 이끌고 나온 호나우두는 20년 가까이 이어온 현역 선수 생활을 은퇴한다고 말하며 아이처럼 눈물을 질질 흘렸다. 이런 종류의 은퇴 광경을 1~2년 전에만 봤더라도 나이 먹은 사람이 주책없게 공개석상에서 눈물이나 짠다고 꽤나 놀려먹었을 터인데, 호나우두의 경우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남들이 호나우두에 열광하던 2002년 월드컵 그 이전인 FC바르셀로나 소속인 시절부터 그의 파워 넘치는 플레이에 매료됐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인터 밀란 시절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그동안 호나우지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등과 같은 신성들이 나타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시들어들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호나우두의 은퇴가 딱히 안타깝거나 아쉽다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뭔가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은 나 역시도 은퇴의 기로에 서있었던 까닭이다.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 서른여덟의 나이가 될 때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중학교 때는 야구를 학교 클럽 팀에서 전문적으로 훈련했고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동아리 성격의 활동으로 줄곧 지금까지 농구를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구정 때 농구를 하다가 오른쪽 발뒤꿈치에 이상을 느껴 살펴보니 살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너무 놀라 버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화를 낼까, 웃어버릴까 생각하다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 다시 경기에 참여해 열심히 뛰었다. 이를 부상 투혼이라고 불러야 될까, 아픈 발뒤꿈치를 이끌고 이를 악물어라 뛰었는데 던지는 족족 슛이 들어갔고 동료에게 내어준 패스는 멋진 어시스트가 됐다.

흐뭇한 마음에 그날 경기를 복기하며 구정 연휴를 보냈는데 급기야 발뒤꿈치가 퉁퉁 부으면서 걷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병원을 찾았다. 부상 부위를 보여주니 의사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그냥 놔뒀느냐며 타박 비슷하게 말을 꺼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니 의사는 대뜸 운동선수냐고 물어왔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해왔다고 말하니, “이제 은퇴하셔야 합니다.”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오래 전부터 오른쪽 발목을 습관적으로 접질려 왔는데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의사의 판단이었다. 

그의 말처럼 4~5년 전 발목을 두어 번 접질린 적이 있었다. 부상을 당하는 순간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난 그것이 회복된 것이라고 보았는데 의사 말에 따르면, 젊은 육체라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란다. 증세가 잠복하고 있다가 육체가 노쇠화 되면서 겉으로까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치료는 되겠지만 농구처럼 심하게 뛰거나 점프를 하는 운동을 하면 발목을 아주 못 쓸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상담을 마쳤다. 일반인에게 은퇴라는 말이 우습게 들렸지만 그런 감정이 들기 전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울컥했다.

며칠 동안, 아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마음이 심란하다.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실 이 나이에 농구를 한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나이 값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유니폼과 운동화를 챙겨 넣은 불룩한 가방을 메고 출근할라치면 동료들은 그럴 시간에 선을 한 번이라도 더 보던가, 업무에 더 집중하라는 식으로 경멸했다. 그럴 때면 니들은 운동을 아예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왔지, 내 업무처리 능력은 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지는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냉소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농구하기를 즐겼던 건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이 바로 농구였기 때문이다. 함께 경기하는 친구들이 들으면 농구공 터지도록 웃을 소리지만 난 대체로 중요한 슛을 자주 성공시켜 팀의 승리에 기여한 편이었다. 그럴 때마다 농구는 현실 너머의 판타지를 제공했고 그런 맛에 중독되어 몸이 망가질 때까지 손에서 농구공을 놓지 못했다. 그런 심정을 겪어본지라 때마침 터져 나온 호나우두의 눈물이 천번만번 이해가 됐던 것이다. 이에 더해 호나우두는 갑작스레 뚱뚱해진 것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 때문이었다고 그의 몸을 놀림감 삼았던 언론에 사과하라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체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의 상실감을 알기에 그 또한 내 마음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호나우두는 차후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며 얼마간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 대목에서 확실히 나와는 처지가 다른 그의 입장에는 괴리감을 느꼈다. 돈도 얻고 명예도 얻고 무엇보다 슈퍼스타 배경이 뒤를 따라다니는 호나우두는 앞으로 축구 지도자이든 행정가이든 정해진 길이 있겠지만 농구가 직업이 아닌 내게는 더 이상 운동 현장과 연을 맺을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앞으로 운동이 사라진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그런 고민을 친한 선배에게 털어놓으니, 나이가 먹을수록 떨어지는 육체의 기능 저하는 정신으로 메워야 하는 법이라며 이제 철 좀 들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네가 정신적으로 꽉 차 있지 못하니까 아직도 운동을 하는 거야. 물론 운동 좋지. 젊어서 하는 운동이 있고 나이 먹어서 하는 운동이 있는 거야. 이젠 정신 운동에 좀 신경을 써봐.” 그러고 보니 나도 2년만 더 지나면 불혹의 나이인 마흔이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마흔이란 나이가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벌써 코앞이다. 불혹(不惑)은 무엇에 마음이 홀려 헷갈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태껏 내 몸이 이십대인 줄로만 알고 육체를 혹사시키는 만용을 부리고 말았다.

선배는 말을 이어갔다. “대학 졸업하고 네가 한 게 뭐 있나 생각해봐. 농구한 거밖에 없잖아. 이룬 게 뭐야? 부상 밖에 없지.” 순간 욱하는 심정에 따지듯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마흔이잖아요. 이룬 게 뭐예요?” “나? 없지.” “없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세요?”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일장연설을 펼쳐 보였다.

“마흔이란 나이가 끝이 아니라는 거야. 뭔가를 새로 시작할 나이야. 너 앞으로 운동 못하게 됐다고 마음 아파하지 마. 농구가 대수야, 네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 아직 할 거 무궁무진해. 뭐 하나에 올인 한다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다. 올인 해서 성공하면 그것도 좋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그렇다고 인생 끝인가? 포기할 거야? 그게 최선이야? 아니야, 또 다른 거 준비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여지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거지. 버릴 줄도 알아야 얻는 게 있다고. 버리지 못하면 그게 더 인생을 옭아매는 법이야. 상황은 가변적인 거라고. 미래를 예측하고 사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냐. 다만 대비는 할 수 있다는 거지. 여지를 남겨놓고 살라고.”

생각해보니 발뒤꿈치 부상을 당한 이후에 마음이 좋지 않았던 건 단순히 몸을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몸에 대한 한계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더 정확히는 마흔이 가까워 오는 것에 대해 은연중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반환점을 돌 나이가 된 건데 뭔가 해놓은 거 없이 잃어만 간다는 생각에 내 처지를 비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배가 원래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날은 술이 좀 들어가서였는지 맘에도 없던 멋진 말을 한 것 같다. 술이 깬 다음 날에 전화를 해보니 자신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 하드만. 개인적으로 그 덕분에 인생은 무언가를 얻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기 보다는 알게 됐다). 발뒤꿈치 부상이 갑작스러운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과거의 상처가 쌓이고 쌓여 찾아온 것처럼 그냥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과거와 달라진 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미치다보니 마흔이란 나이가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이를 비관해 내 삶을 원망할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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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4월호

“마흔 즈음에”에 대한 6개의 생각

  1. 흠… 윗글은 사실과 몇가지 틀린점이 있어 수정해야할듯…
    그의 슛은 가끔 들어갔지만… 경기를 좌지우지하지는 않았음 @@
    그의 육체는 이미 오래전에 불혹이었음 @@
    어쨌든 그의 불혹이 어떨지 기대해보겠음 @@

    1. 우우~ 나의 슛을 시기하는 걸 보니 레고시티 당신이 누군지 알겠군 ㅋㅋ 다음 기회에 나의 진가를 보여주마! 지금 회복 훈련 중이야 ^^;

    2. 레고시티는 다리는 불혹이고 배가 남산만한 걸 보면 이미 환갑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요 -_-; 나의 슛을 시기하고 말이야 ㅋㅋ

  2. 전 그래서 그냥 인생에서 꼭 뭔가를 이뤄야 해? 이러고 맘편히 살기로 했습니다. ㅎㅎ
    남웅님보다는 좀 더 남았지만 저도 불혹이 그리 멀진 않은데, 막상 그 때가 닥치면 편한 마음을 먹을 수 없을 것 같긴 하지만요……

    1. 안녕하세요 stefanet님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시죠? ^^ 저도 위에 저렇게 써놓기는 했지만 말씀처럼 편한 마음은 아닙니다. 벌써 사십이라니, 도대체 사십 될 동안 뭐한 거야… 아마 2년 뒤면 그럴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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