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과 <화씨 9/11>


1.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미국의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와 달리 비폭력으로 흑인의 인권뿐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버림 받은 이들을 위해 사회 운동을 벌였던 이. 그의 주무기는 청중을 압도하는 연설이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연설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고, 용기를 얻었으며, 결속을 다졌다. 선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잠시 그의 연설 중 한토막을 감상해보자.

“때가 옵니다. 나의 벗들이여,  치욕의 구렁텅이로, 사그라질 줄 모르는 삭막한 절망을 겪어야하는 그 구렁텅이 너머로 내동댕이 쳐지는 참담한 신세, 이런 신세가 넌더리 나는 때가… 때가 옵니다. 사람들이 이글거리는 7월의 땡볕 인생으로 내몰리는 신세, 알프스 칼바람처럼 뼈를 깎고 살을 에는 동짓달 엄동설한에 한데 꼿꼿이 세워진 채 팽개쳐지는 신세, 이런 신세가 지긋지긋해지는 때가… 벗들이여, 때가…”  

미국 내 인종 차별 철폐의 시초가 됐던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서 5만이 넘는 청중을 열광시켰던 킹의 연설이다. 그런데 그 명성과 달리 수사학이 난무하고 상징과 비유로 점철된 그의 연설은 힘이 있다기보다는 어설픈 시같고 학생회장 선거에 나선 학생의 연설같다. 이런 내용에 5만의 마음이 움직였다니…

왜일까. 진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연설은 현학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차별을 증오하는 진실이 있었다. 그는 아무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는 인종차별의 현실을 고발했고 공개적으로 이를 부정하는 진실을 소리 높여 외쳤다.

진실은 이처럼 집채만한 단점도 가려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결국 간디에게서 물려받은 비폭력과 진실이 담긴 연설로 미국 전역을 흔들었고 미국을 바꿨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진실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혼이 담긴 연설로써 보여줬다.


2.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화제다. 감히 일국의 대통령을 대놓고 얼레리 꼴레리 하고 있는데 <화씨 9/11>의 목적은 단 하나. 다가오는 미 대선에서 ‘꼴통의 축’ 부시를 낙선시키는 것!

그래서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에서 공정성이고 중립이고 다 필요없이 부시에게 불리하다 싶은 정보는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에서부터 9.11 테러 이면에 감춰져 있는 부시 家와 빈 라덴 家 사이의 유착관계 등 없는 거 빼고 다 찾아내서 까발리고 있다. 그것도 단순히 보여주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시의 행각이 얼마나 악질적이었는지 더욱 극명히 하기 위해 하얀 와이셔츠에 묻은 빨간 루즈 자국마냥 ‘국회의원 자녀들의 군입대 비율 vs 하층민 가정 자녀의 군입대 비율’과 같은 대비의 효과가 극명히 드러나는 편집의 묘를 선보인다.    

그만큼 <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의 의도가 화면에 둥둥 떠다닐만큼 편파적이다. 이처럼 그의 의도가 적정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툭하면 감정이 폭발하다 보니 <화씨9/11>은 전작들에 비해 풍자의 칼날이 날카롭지도 못 하고, 조롱조의 야유도 초반을 지나고나면 힘을 받지 못해 그 재미가 떨어지며, 직설조의 화법도 뒤로 갈수록 지루함을 더할 뿐이다.  

그럼에도 <화씨 9/11>은 힘이 있고, 감동적이다. 왜. 다 알고는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진실을 대놓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편파적이지만, 그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의도적인 편파로 세계평화를 무너뜨린 부시를 재료삼아 그 빗나간 편파만큼 진실의 위치로 되돌려 놓기 위해 모든 힘을 다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화씨 9/11>은 자신의 목적대로 부시를 이번 미 대선에서 낙선 시킬 수 있을까? 진실은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그렇다면 우린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첫 번째 사례를 목격하는 최초의 인류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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