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일본 대중소설의 빛나는 별

(장르의 사소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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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커스>(2009) 개봉 소식을 듣고 처음엔 시큰둥했다. 이누도 잇신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영화가 원작 삼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동명소설이 국내에는 <제로의 초점>(이하 ‘<제로 포커스>’ 통일)으로 소개된 까닭에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의 영화? 하실지 모르겠지만 2009년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1909.12.21~1992.8.4) 탄생 백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해 일본에서는 <점과 선><야광의 계단>(이상 TV아사이), <역로>(후지TV), <검은 회랑>(니혼TV) 등 세이초의 대표작들이 새롭게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제로 포커스> 역시 그중 하나였다.

흔히 마쓰모토 세이초를 일러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부’라고 일컫는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추리물로 구성한 작품을 말한다. 세이초는 다름 아닌 사회파 미스터리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제로 포커스>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만 흥미롭게도 이누도 잇신이 원작의 이야기를 살짝 변용해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면에 구두점을 찍었다면 세이초는 단 한 번도 사회파 작가라고 자처한 적 없이 평생 300여 편에 달하는 소설을 썼다는 점이다.

<제로 포커스>는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선 부인의 사연이 주를 이룬다. 이것이 ‘미스터리’의 한축을 담당한다면 ‘사회파’적 의미는 이들 부부가 중매로 만나 결혼한 지 얼마 안됐다는 설정에서 발생한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1950년대 횡행하던 ‘중매결혼’이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제하지 못했다는 점에 착안, 미스터리의 과정을 부인이 남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사연으로 채웠다. 그에 반해 이누도 잇신은 원작의 시대적 배경이 전후 일본 부흥기였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팡팡걸’로 대변되는 미군 상대 양공주들의 희생이 지금의 일본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무난한 만듦새를 보였지만 세이초의 세계를 온전히 되살리는데 실패한 인상을 받았다. 뭐랄까,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사회파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세이초는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가는 아니었다. 인물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사회파적인 면모가 드러났던 것뿐이지 그의 작품은 오히려 개인사(史)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누도 잇신은 개인의 사연을 사회적으로 확장, 의미 부여에 너무 힘을 쏟은 탓에 세이초 특유의 소소한 맛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2~3년 전부터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화차><모방범>)에게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개인의 일상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작풍이 세이초와 닮았기 때문인데 정작 미야베 미유키 본인은 완전히 수긍하지 않는 눈치다. “일본에서도 제 소설이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종종 마쓰모토 세이초와 비교되곤 해요.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품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일본의 추리소설사(史)에 길이 남을 인물이면서 대표적인 논픽션 작가이고 일본 고대사 연구도 하셨죠. 마쓰모토 세이초가 큰 부분을 다루고 있다면 저는 그 중 아주 작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에요.”   

미야베 미유키의 말처럼 추리는 물론, 시대극에 역사소설, 그리고 고대사 연구까지, 세이초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사회파 미스터리에만 국한돼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데뷔작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역사소설인 <사이고사쓰>이었다. 그런 세이초의 이력을 감안해 1994년에 제정된 ‘마쓰모토 세이초 상’은 (2005년부터 ‘장편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범위를 확대했지만) 장편 미스터리와 역사 시대 소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니까, 마쓰모토 세이초를 사회파 미스터리에만 국한하는 건 일종의 편협한 시각이다. 대신 그의 세계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인간’, 더 정확히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세이초의 작품에서 전면에 나서는 주인공은 사회에서 소외받거나 비주류이고 웬만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인간 본위의 화법을 추구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출현은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작품에서 사건 해결은 첨단의 과학수사나 주인공의 특출한 능력이 아닌 철저히 인간 행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 비롯된다. 가령,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에서는 지방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3류 작가가 처음으로 독자를 얻게 될 때 생기는 감정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 <일 년 반만 기다려>의 경우, 악인의 시점에서 글을 서술함으로써 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이들의 행동마저도 이해하려고 든다. 그래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에는 절대 악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 모두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혹자는 세이초의 작품 성향을 두고 사회파 대신 ‘생활파’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장르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을 묘사하는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더 없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는 “하늘을 보면 언제나 태양이며 달을 볼 수 있듯이 거기엔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군’이 있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의 등장은 일부마니아만을 위한 ‘이단의 문학’이었던 추리소설이 ‘대중의 문학’으로 탈바꿈하는 현대 문학사 최대의 사건이었다.”는 평가는 마쓰모토 세이초를 단순히 추리작가의 범주에 머물게 하지 않는 것이다.



Tip! 한국에도 마쓰모토 세이초 백주년 기념 도서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9년 이전 국내에 소개된 세이초의 작품은 <점과 선> <모래 그릇> <바다에 남겨진 유언> 등 몇 편에 불과했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북스피어, 이하 ‘<세이초 컬렉션>’)이 출간되면서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2004년 일본에서 발표됐던 <세이초 컬렉션>이 세이초 탄생 백주년을 맞아 국내 출간된 것. 미야베 미유키가 직접 책임 편집을 맡아 작품을 엄선하고 해설까지 덧붙인 까닭에 세이초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같은 해 나온 <검은화집>(태동출판사) 역시 세이초의 단편집으로, 역사소설, 논픽션까지 아우른 <세이초 컬렉션>과 달리 추리소설과 사회파 미스터리 위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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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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