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은 어떻게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 잡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블, 마블, 마블.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를 원작으로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마블’ 영화 들이 지금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맹폭하고 있다. 국내만 하더라도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이하 ‘<캡틴 아메리카 2>’)가 3월 26일 개봉 이후 4주 연속 흥행 1위를 차지했으며 4월 23일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아 순항 중에 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엑스맨>을 시작으로 2000년 이후 만들어진 마블 코믹스 원작의 33번째 영화다. 하지만 제작사는 마블 스튜디오가 아니라 소니픽쳐스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마블 코믹스는 슈퍼맨, 배트맨 등을 창조한 DC코믹스와 함께 미국의 코믹스를 양분하는 회사다. 특히 마블 코믹스는 현(現) 명예회장인 스탠 리를 영입한 1960년대부터 <판타스틱 4>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엑스맨> 등으로 쇠락해가던 코믹스 시장을 되살려내기도 했다.

마블 코믹스의 가치는 무려 8,000여개에 달하는 캐릭터에 있다. 하지만 경쟁사인 DC 코믹스가 영화에 주목하며 <슈퍼맨>(1978)과 <배트맨>(1989)의 연이은 성공으로 주가를 올리는 동안 마블 코믹스는 고작(?) 캐릭터 장난감 사업에만 열을 올리며 급기야 파산 직전에 몰리게 된다.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찾은 것이 바로 영화, 더 정확히는 자사의 캐릭터를 원작으로 한 영화화 판권 장사였다.

마블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 들은 기울어진 가세를 세우기 위해 여기저기로 팔려갔다. 스파이더맨과 고스트 라이더는 소니로, 엑스맨과 판타스틱 4와 데어데블과 엘렉트라는 20세기 폭스로, 루크 케이지는 콜롬비아로, 네이머는 유니버설로 영화화 판권이 넘어가며 마블의 캐릭터 들은 속속 영화로 모습을 드러냈다. 흥행 성적도 얼마나 좋았던지, <엑스맨>은 4억2천4백만 달러를, <스파이더맨>(2002)은 이를 훌쩍 넘어선 8억2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마블 코믹스가 영화판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아니 캐릭터임을 연달아 증명해 보였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이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우선적으로 각각의 작품에서 연출을 맡은 브라이언 싱어와 샘 레이미의 공이 컸다. 지금은 빅 네임이 되었지만 그전까지 인디영화에서 활약했던 이들은 블록버스터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마블 슈퍼 히어로의 할리우드 공습에 앞장섰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 원작의 영화에서 감독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프로듀서다. 그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현재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로 있는 케빈 파이기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의 서울 촬영을 주도적으로 밀어붙이며 직접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던 케빈 파이기는 <엑스맨>의 프로듀싱 능력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엑스맨>은 <어벤져스>(2012) 이전 이미 다수의 슈퍼히어로를 등장시키고 이를 통해 스핀 오프의 가능성도 열어두며 시리즈물로 구상했는데 케빈 파이기는 이와 같은 전략이 앞으로 할리우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중요한 트렌드라고 미리부터 자각했다.

케빈 파이기는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스타트렉> <백 투 더 퓨처> 등과 같은 시리즈물에 열광했고 무엇보다 마블 코믹스를 단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었던 열렬한 팬이었다. 말하자면, 케빈 파이기에게 마블 코믹스 원작의 <엑스맨>은 코믹스 팬으로서 가졌던 애정을 영화라는 사업으로 승화시키는 본격적인 작업이었던 셈이다.

날고 기는 재능이 넘쳐나는 할리우드에서도 팬의 순수함과 직업인의 냉철한 판단력을 양수 겸장한 케빈 파이기는 보기 드문 인재다. 이에, 당시 마블 코믹스에서 영화 부문을 담당하고 있던 아비 아라드 현(現)마블 엔터테인먼트 CEO는 케빈 파이기를 영입해 좀 더 공격적인 영화 사업을 선보였다. 소니가 <스파이더맨>에 이어 <스파이더맨 2>(2004)까지 성공시키자 케빈 파이기와 아비 아라드는 영화화 판권 장사 대신 직접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캡틴 아메리카와 닉 퓨리 등의 캐릭터를 담보 삼아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 린치로부터 5억2천5백만 달러를 투자 받아 2005년 마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러면서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로 올라서게 된 케빈 파이기는 자신을 비롯해 회사의 중역 들이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하는 방식의 시스템을 만들어갔다. 이는 할리우드의 제작 관례로 봤을 때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 들은 대중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감독의 창작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을 선호한다. 그래서 프로듀서는 대개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 마련인데 마블 스튜디오는 철저히 내부 인사 들이 제작에 관여하며 오로지 대중성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 만들기의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름값이 전혀 없는 감독, 즉 존 파브로와 루이스 리터리어를 영입해 각각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이상 2008)의 현장을 맡겼다.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 역할을 맡은 에드워드 노튼은 감독과 배우의 창작권을 불허하는 마블 스튜디오의 방침에 크게 반발하며 촬영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빈 파이기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건 감독이나 배우가 예술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었다. 이미 <엑스맨>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한 바, 마블의 캐릭터 들이 각자의 영화를 배경으로 하는 가운데 필요에 따라 헤쳐모여 하는 방식으로 거대한 우주를 이루는 희대의 프랜차이즈였다.

케빈 파이기의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마블 스튜디오의 첫 번째 영화 <아이언맨>은 5억8천5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동안 관객들은 정체성 운운하며 어둠 속에 틀어 박혀 있던 슈퍼히어로에 서서히 지쳐가던 차였다. 그에 반해 아이언맨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게다가 유머 감각까지 갖춘 새로운 유형의 슈퍼히어로였다. 비록 <인크레더블 헐크>가 썩 만족할 만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언맨을 활용한다면 더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바로 <어벤져스> 프로젝트였다.

<아이언맨>의 성공에 힘입어 마블 스튜디오는 <아이언맨 2>(2010)와  <토르>, <퍼스트 어벤져>(이상 2011)를 차례로 선보였다. 사실 <토르>와 <퍼스트 어벤져>를 영화화하는 것에 대해 마블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었다.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의 캐릭터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는 것이 불만의 요지였다. 케빈 파이기의 생각은 달랐다. <어벤져스>를 통해 드러나게 될 ‘마블 유니버스’를 위해서라도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를 선보이는 것은 중요했다.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들이 주로 현재 시점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것에 반해 토르는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와 같은 신의 영역에 속한 존재였고 캡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맞서던 1940년대의 영웅이었다. 이 둘이 <어벤져스>에 합류하게 된다면 마블 유니버스는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까지,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말 그대로 거대한 우주를 아우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스파이더맨과 엑스맨과 데어데블 등의 영화화 판권을 타사에 팔아넘겨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의 존재는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마블의 캐릭터에 주목한 디즈니가 2009년 마블 스튜디오를 무려 4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케빈 파이기의 계획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많은 반대에 부딪혔던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는 각각 4억4천9백만 달러, 3억7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케빈 파이기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 기세를 이어 결국 <어벤져스>는 15억 달러를 넘어서는 초대형 흥행 수익으로 <아바타> <타이타닉>에 이어 전 세계 최고 흥행 영화 TOP3에 이르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케빈 파이기가 참여한 마블 영화의 흥행 수익은 무려 90억 달러를 훌쩍 넘긴다. 또한 미국의 영화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www.boxofficemojo.com)는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 순위를 발표하면서 1위로 마블 유니버스를 선정했다. (2위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케빈 파이기가 진두지휘하는 마블 유니버스의 활약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케빈 파이기는 최근 미국 현지의 인터뷰에서 마블 스튜디오의 이후 라인업이 2028년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발언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만 해도 5월에 마블 코믹스 원작으로 20세기 폭스가 제작에 참여한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개봉할 예정이며 마블 스튜디오는 8월에 마블의 새로운 영웅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저>(이상 2015년 개봉 예정)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에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기존 캐릭터까지, 마블은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할 기세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 중에 있다.  

시사저널
NO. 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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