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봉준호 감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더’가 뿔났다. 모성애의 극단을 탐구한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화제다.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박물관이 살아있다2> 등 할리우드 대박영화 틈바구니 속에서 6월 10일 현재 230만 관객을 모으며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 최초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아줌마 아니 할머니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중견배우 김혜자 주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차고 넘쳐나는 시즌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흥행 고공행진을 펼치는 이유는 무얼까? 당근 재미있으니까.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걸 모르겠다. 이를 알기 위해 본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는 그의 사무실 1층에 위치한 고즈넉한 카페에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봉준호 감독은 극중 면회소 구조의 아이디어를 이 카페에서 얻었다며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알려줬는데 이번 인터뷰는 한편으론 <마더>의 뒷얘기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반전이 마구 까발려지고 스포일러가 다수 공개되는 전차로,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제위께서는 <마더>를 관람한 후 인터뷰를 열람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그럼 인터뷰 요이 땅!


허남웅 기자(이하 ‘허’) 노무현 전(前)대통령 서거와 개봉시기가 우연히도 겹쳤다.
봉준호 감독(이하 ‘봉’) <마더> 개봉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건 고인에 대한 실례고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날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어 TV를 보고 있었다. 보는데 밑에 자막이 나오더라고. 노태우가 병이 있다더니 죽었나. (웃음) 난 몇 초 정도 노태우인 줄 알았다. 근데 자꾸 봐도 노무현인 거야. 그러고 나서 한동안 패닉상태가 되더라고. 뉴스앵커도 횡설수설하면서 보도하고 손발도 안 맞고. 정말 모두의 패닉이었던 것 같다.

<마더> 관련 행사는 취소 없이 모두 진행했나?
국민장 하는 날도 <마더> 무대인사가 잡혀 있어서 취소할까 했었다. 근데 그날 맞춰서 예매한 관객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김혜자 선생님 이하 원빈이나 우리 모두 검은 옷 입고 근조 검은 리본 달고 차분한 분위기로 무대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마더>는 봉준호의 본격 섹스 영화

<마더>는 진실을 숨기려는 영화다. 다시 말하자면 욕망을 숨기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은폐와 망각은 이 영화의 주된 키워드다. <마더>에는 주제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숨겨져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바로 ‘엄마와 섹스’다. 봉준호 감독의 특기는 서로 결합할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충돌시켜 어색하지 않게 조합해내는 능력이다. 엄마와 섹스라,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의견은 다르다. 엄마와 섹스를 왜 별개로 취급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그런 점에서 <마더>의 목적은 ‘왜 엄마는 섹스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발단은 ‘발정난’ 아들의 살인 누명죄다.

<마더>가 연일 매진사례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나 <박물관이 살아있다2>와 함께 개봉하니까 <마더>가 상대적으로 어떻게 될까, 난 예상을 못 하겠더라. 다만 엄마들이 많이 오셔서 보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분들이 ‘공감했다’, ‘내가 엄마라도 김혜자처럼 했겠다’ 그런 반응을 보이면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당신 최초의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아닌가.
<마더>는 내가 최초로 섹스의 세계를 탐험한 본격 섹스영화지. (웃음) ‘엄마와 섹스’니까 많은 이들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그런 조합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다.

김혜자 선생님이 몰래 섹스를 보는 장면도 있고. (웃음)
그 장면만으로도 불경한 것 같다. 선생님 본인이 직접 섹스를 한 건 아니지만 숨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낯설지 않나. 더군다나 거기서 섹스 하던 진태(진구)가 후에 ‘웃장 까고’ 다가와서 “씨발 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웃음) 원래는 “엄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였는데 촬영 전날에 내가 반말로 바꿨다. 그게 더 강렬한 거 같더라. 주변에서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냐고, 근데 진구한테 보여주니까, “감독님 입에 딱 붙는데요” (웃음) 역시 이 새끼 뭘 아는군. 아주 극악하게 잘 하더라고.  

<마더>의 비극은 결국 도준(원빈)의 발정에서 비롯된 거 아닌가?
도준은 말 그대로 발정난 청년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한 이불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 반대로 ‘쌀떡소녀’ 문아정(문희라)은 남자가 싫다. 섹스가 싫은데 생존 때문에 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 둘이 만났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난 거지. 처음엔 엄마가 진태의 섹스를 엿보지만 나중엔 마을 전체의 섹스를 보게 되는 것처럼 <마더>는 정말 섹스에 대한 영화다. 진흙탕 같은 섹스의 세계로 돌진하게 되는 엄마의 이야기지.

그래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됐다?
우리 나라는 왜 이렇게 엄마에게서 섹스를 격리시키는지 몰라. 엄마가 아빠와 섹스해서 자기가 생겨난 건데 그 한 번만 인정하고 싶은가봐. 자식이 셋이면 우리 엄마가 세 번 했나봐, 거기까지만 인정하려고 하나봐. 삼십, 삼백 번 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와 섹스를 분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됐다. (웃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은 수익 면에서 모험일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서 반대는 없었나?
제작사가 착해서 그렇게 압박은 없었다. 보통 제작사 입장에서는 15세 관람가에 대한 미련이 많을 수도 있고 징징 사정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마더>가 영화 분위기나 폭력적인 느낌, 사건 자체가 15세가 안 될 것 같으니 차라리 우리는 확 가는 게 낫지 않냐, 주춤주춤하면 오히려 손해인 것 같다 그러니까 선뜻 동의해줬다.


<마더>를 향한 논란

봉준호 감독은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욕망은 늘 범죄드라마를 향한다. <마더>는 그중에서도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그래서 끝까지 은폐와 은폐를 거듭하는 이야기를 상대로 엄마는 준(準)수사관이 되어 탐문과 추리, 목격담을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간다. 하지만 진실이 확인된 순간, 이 영화는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추리소설의 재미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때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한다.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현재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마더>를 향한 논란과 궁금증은 결국 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앞선 작품들에 비해 강하다.
범죄드라마니까. 오히려 그쪽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엄마 얘기를 많이 해서. (웃음) <마더>도 어떻게 보면 되게 독특한 구조의 범죄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범죄영화를 찍어왔다.
그렇다. <괴물>도 사실 표면적으로는 괴수물이지만 유괴영화다. 유괴범이 괴물이라 그렇지. (웃음) <살인의 추억>은 명백하고. <플란다스의 개>는 나름 범죄영화로 찍은 건데 너무 ‘짜쳐서’ 그렇지. 기껏 옆집 개를 죽이면서 전혀 심각하지도 않았고. 흐흐흐. 이번에 <마더>는 되게 독특하고 강하긴 한데 굵고 크기보다는 가늘고 예리한 범죄영화가 아닐까 한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괴물>은 맥팔랜드 사건을 인용했다. <마더>에도 실제 사건에서 영향 받은 이야기가 있나?
핵심 줄거리나 모자 관계에는 없다. 다만 문아정이라는 친구를 둘러싼 사건만 놓고 보면 비슷한 사건이 꽤 있다. 그중 어느 농촌 마을의 동네 남자들이 핸디캡이 있는 아이를 암묵적으로 돌아가면서 했다. 천원만 주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서 사건이 커진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 여자 아이가 실토를 했는데 오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관계가 됐었다. 그걸 그 전에 목사가 고발하려고 했다가 온 마을이 뒤집어져서 동네 사람들이 목사를 미친놈으로 몰고 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거든. 이 외에도 비슷한 사건이 많다. 내가 자료를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아정 관련 이야기는 그런 사건에 기반을 뒀다.  

추리 부분에 많이 집중한 작품인 만큼 봉준호 영화 특유의 엇박자스러운 느낌이 많이 줄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단순하고 심플하고 강렬한 느낌을 많이 추구했다. 영화 라스트에 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마지막 펀치를 위해 아끼면서 갔다. 영화의 전체 리듬도 그런 쪽으로 많이 생각했다. 엇박자스러운 건 진태 집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섹스 장면 목격할 때 애들이 끝말잇기 하는 에피소드가 유일한 것 같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아주 스트레이트하게 아정의 진실과 도준의 진실이 논스톱으로 달려가니까.

영화를 본 관객 중에 도준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을 두고 얄팍한 트릭이라고 생각하는 반응도 있다.
불편한 진실이 참 불편하다 이런 게 아닐까. 어쩌겠어요, 할 수 없지. (웃음)

문아정 부분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쌀을 받고 남자들과 관계 할 수 있냐,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알고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지 누가 지금 시대에 쌀 가지고 그럴 수 있냐 지적하는 관객이 있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얘기다. 단돈 오백 원, 천원 가지고도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있고 아무튼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별의 별 사건이 다 있다.

<마더>에 관한 반응 중에 인상 깊었던 건 무엇이었나?
애기 엄마 친구가 영화 보고 나서 전미선이 범인인 거 같데. 으하하하. 그 얘기 듣고 너무 황당해서 왜 그런지 물어봤다. 전미선이 계속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침도 맞고, 약도 먹고 자신은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정작 남편은 문아정과 했다는 거다.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한 나머지 문아정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시체를 옥상에 널어뒀던 거지. 내가 이 화냥년을 죽였다, 동네사람들에게 경고하려고. 재미있는 얘기였는데 내가 할 말이 없더라. (웃음)

고물상 할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더라.
그 할아버지가 문아정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맞다. 손님이니까 그녀의 핸드폰에도 나온 거겠지. 다만 문아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건이 터진 거고 그러니까 자기도 켕기는 게 있어서 신고를 안 한 거겠지. 물론 거기서 더 깊게 생각하면 고물상 할아버지의 거짓진술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관점도 나올 수 있겠더라. 영화 속에서 그 사람 말이 진실이라는 걸 가정한 거니까. 도준의 살인을 회고하는 장면도 고물상 할아버지의 관점인 거고. 원빈도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고물상 할아버지가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1%라고 남겨놓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면 도준은 결백한 거 아니냐고.

도준이 바보이긴 한데 농약 박카스 먹은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걸로 봐서는 꽤 영악해 보이는 측면도 있더라.
안 그래도, 이게 ‘도준의 복수극이다’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서 조회 수가 6만 건을 넘길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마가 농약 박카스를 먹인 거에 대한 복수로 지금까지 바보 연기를 해왔다는 거지. 그럴 듯하게 끼워 맞췄는데 억지야. (웃음) 하지만 그 개념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시나리오를 쓰다가 최종 탈고하기 두 달 전 노트에 서브텍스트 상으로 봤을 때 도준의 복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메모를 적은 적이 있으니까. 동반자살을 동반살인으로 되갚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엄마 손에 피를 묻히게 되니까. 근데 그건 넓게 봐서 그런 거고 도준이 20년 넘게 바보 연기를 하거나 그런 개념은 아니다. 그냥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럴 수도 있다 정도의 개념이지.  

전작의 제목들은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하나같이 한국어를 고수했다. 근데 왜 <마더>만 영어인가 했더니, 마더(mother)와 머더(murder)가 겹치더라.
내가 그 얘기를 했는지, 누가 그런 억측을 한 건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처음엔 <엄마>로 하고 싶었다. 엄마라고 부르는 느낌이 원초적이지 않나. 그런데 살펴보니 고두심 씨가 출연했던 <엄마>(2005)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더라. 불가피하게 <마더>로 바꿨다. 마더를 한글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반복해서 얘기해봐, 되게 기분 이상해진다. 마. 더. 사장님, 여기 ‘마’ 좀 ‘더’ 주세요. 푸하하하.

요새 많이 힘든가?
내가 요즘 개봉하고 나서 힘들어서 그래. 내가 이렇게 어이없진 않은데. (웃음)

안 그래도, 이번 영화 촬영은 유독 힘이 들었다고?
내가 이제 겨우 나이 마흔 된 건데 체력이 되게 안 좋아졌나봐. 쪽 팔려서 어디 가서 얘기도 못하겠고. 촬영감독 (홍)경표 형이나 김혜자 선생님이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힘들다 아프다 이럴 수도 없고. 촬영 초반에 잠깐 아팠던 적이 있었고 후반 작업할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기술시사 직전이 절정이었다. 내가 지금 모하고 있는 거지, 밖에 나가서 고양이를 죽일까, 죄 많고 힘없는 사람 없나, 죄책감 없이 패주게. (웃음) 칸 영화제를 전후해서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상태다.

그렇게 힘들었다는데 살은 예전보다 더 찐 거 같다. (웃음)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니까. 현장에 있으니까 섹스는 막혀 있고 식욕으로 푸는 거지. 여관방 숙소에서 혼자 치킨 시켜 먹고. 바닥에는 치킨 껍데기 사방에 흩어져있고 말이야. 이렇게 얘기하니까 되게 비참하다. (웃음)


김혜자를 비틀어라

봉준호 감독은 장르 비틀기가 특기다. 할리우드의 장르를 가져와 익숙한 전형을 배반하고 이를 통해 한국형 장르를 지향한다. <살인의 추억>은 끝내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을 배반했고, <괴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을 주인공 삼아 초인적 영웅을 편애하는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 한국형 괴수물을 창조했다. 결국 봉준호 감독의 장르 비틀기는 그동안 한국사회라는 수면 아래 침전해 있는 온갖 부조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때 작동한다. <마더>에서 봉준호는 ‘김혜자’를 비튼다. 김혜자는 한국의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하는 장르다. 하지만 봉준호는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무너뜨리며 한국의 모성신화를 새로 쓴다.

한국에서 김혜자는 ‘모성’이란 장르다. 하지만 <마더>에서 ‘국민엄마’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장르를 비튼다는 건 배반의 쾌감인데 <마더>는 기다림이 필요한 배반이지. 대신 영화 초반에 이에 대한 예고는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춤추는 오프닝이나 작두 써는 모습은 우리가 이전까지 보아왔던 혜자 선생님과는 다른 모습이니까. 그렇게 선전포고를 해놓고 뒤에 가서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흐름을 생각했다. 그게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쾌감이었다. 김혜자 장르의 변주와 파괴.

김혜자 선생님의 여러 인터뷰를 보니 굉장히 순수한 분인 것 같더라.
소녀지 소녀. 진공의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소녀 같은 느낌이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비현실이었다가 어느 때는 되게 세속적이실 때도 있다. 눈이 막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인데 굉장히 복합적인 분이시다.

게다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분을 가지고 살인을 하게 만들다니!
으하하하. 몽키 스패너로 두개골을 가루로 만들어버리시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이셨지. 정말 그 장면 끔찍해. (웃음)

김혜자 선생님은 그 장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던가?
되게 좋아하던데. (웃음) 2005년 처음 이야기를 만들 때, 물론 구체적인 디테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러이러해서 광기로 치닫다가 사람을 XX하게 된다니까 너무 하고 싶었다면서 좋아하셨다. 더 잔인하게 찍으시고 싶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보이신 적도 있어. (웃음) 

자기도 이상적인 어머니 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나보다.
드라마 포함 수백 편을 하셨는데 사람을 죽인 적은 딱 한 번인가? 대중들은 기억을 못하지만 <수사반장>에서 남편을 죽인 아내 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더라. 근데 공중파 방송이니까 암시적인 묘사였겠지. <마더>에선 그 장면 찍으시면서 최초의 어떤 짜릿함이 있으셨다고 하더라. 혜자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본 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지난 4,5년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이미지를 마침내 찍어버리니까. 제천에서 찍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공개된 촬영현장 스틸을 보니 두 분이 다정하게 모자처럼 있는 경우가 많더라.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웃음) 시나리오 때부터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이견이 생기는 경우가 없었다. 해석이 다르거나 그런 게 아니라 연기를 덧붙이거나 재미있게 바꾸려고 다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전미선 씨와 농약 얘기할 때. “그람옥선 탔으면 그때 죽었을 텐데 내가 마음이 약해서 론스타를 탔어. 그게 약하거든” 되게 끔찍한 사건인데 웃기게 얘기하신다. 원래 혜자 선생님은 정통파 방식으로 슬프게 하셨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내가 재미없었다. 역으로 완전 다르게 가보자 해서 이런 느낌을 보여드렸더니 금방 재미있어 하셨다. 선생님 본인이 그런 걸 좋아한다. 오픈돼있다. 내가 엉뚱한 걸 몇 번 주문한 적이 있는데 그걸 되게 잘 흡수하시니까 내가 연출하는 재미가 있었다.

문아정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하는 장면에서의 악귀 같은 표정도 인상적이었다.
일명 ‘광기의 레이저’ 찍다보니 그렇게 됐다. (웃음) 혜자 선생님 본인도 굉장히 놀라셨다. 모니터 보면서 약간 흉하다 생각하셨는지, “어머 내 눈이 왜 저래? 이 장면 쓸 거예요?” 근데 그 표정은 절대 다시 나올 수 없는 거라 나와 스태프들은 그 필름이 현상사고 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그 장면은 마치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순간을 찍은 뉴스릴과도 같은 거다. 절대 재현될 수 없는 느낌이랄까. 자기 몸을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 감정과 느낌에 몰입하는 순간, 바바바박 된 거다. 그러니까 자기도 모니터 보면서 놀라신 거고. 

몇 번 만에 얻은 표정인가?
6~7번 간 거였는데 몇 가지 변주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정서적으로 2만 볼트 전류가 올라오셨나봐. 나한테는 혜자 선생님 눈의 실핏줄이 터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모세혈관이 두두둑 끊어지는 환청이 들렸다. 사실 그 자리에는 안 가도 되는 건데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아들 욕하는 거 생각하면 이 엄마는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일당백으로 혈연단신 찾아가서 자기 자식이 안 그랬다고 선언을 하지 않나. 일견 미친 여자 같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니까. 그래서 “내 아들 미워하지 마”란 대사가 나온 거고. 그게 한국 엄마들의 특징인 것 같다. 사람들이 보는 내 자식의 모습에 되게 민감해하는 거. 

엄마라면 무척 공감할 만한 장면이다.
뺨 맞고 나서는 바로 내려가서 립스틱 바르잖아. 공석호 변호사(여무영) 만나러 가려고. (웃음) 그게 우리 엄마들의 모습인 거 같다. 자식 때문에 온갖 굴욕과 모진 꼴을 당하시잖아. 자식이 사고 치면 담임선생님 앞에서 무릎 꿇고 맞은 애 엄마한테 싹싹 빌고.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집에 와서는 자식 먹이려고 콩나물 다듬고. 난 그걸 컷만 싹 붙인 거지. 흐흐흐. 엄마들은 그 장면 보면 바로 느낌 올 거야. 엄마들은 되게 몰입해서 보더라고. 

모성이라는 게 세계적인 보편성인데 한국관객과 칸영화제에서 만난 외국관객이 다르게 반응하는 지점이 있나?
나라 별로 반응을 체크해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서 이겼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다혈질 벨트 쪽이 상대적으로 <마더>에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괴물> 프로모션 때 해외를 다니면서 <마더>에 대해 극단적인 엄마 이야기다, 코리안 마더가 워낙 세다, 라고 가볍게 얘기한 적이 있다. 폴란드계 프로듀서는 너 몰라서 하는 얘기다, 폴란드 마더가 짱이다, 그러면 옆에 있던 이탈리아계는 너희 다 비켜라, 이탈리아 마마보이 유명하지 않나. (웃음) 근데 미국이나 이런 쪽은 잘 모르겠다. 걔네들은 히치콕으로 <마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좀 더 장르적으로 보는 것 같고, 일본은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만큼 더 깊숙이 엄마에 대한 부분으로 접근할 것 같다.


엄마는 괴물이다

결국 봉준호가 <마더>를 통해 새롭게 쓴 한국의 모성신화는 실은 ‘엄마=괴물’이란 공식을 밝히는데 있다. 많은 이들이 도준의 살인을 두고 진범이 누군가에 대해 설왕설래를 거듭하지만 실은 이 영화는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것이야 말로 <마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자식 때문에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봉준호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한다. 봉준호 영화에서 약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약자를 배제하는 사회구조에 맞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가 결국 약자끼리 연대했다. <마더> 역시 약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안타깝게도 더한 약자를 밟고 일어서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많은 관객들이 반전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극단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 도준이 아정을 죽였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영화다. 근데 범죄드라마나 스릴러의 외양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관객의 촉각이 곤두서는 것 같다. 오죽 곤두서면 전미선까지 의심하겠어. (웃음) 사실 도준이 그렇게 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되게 단순한 결론이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고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그렇게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거다. 근데 사전정보 없이, 아무 예측 없이 본 관객들은 도준이 던진 돌에 문아정이 맞는 장면에서 엄청 비명 지르더라고.

그 장면 뿐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무서운 분위기가 지배한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웠다는 젊은 여자 관객도 있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학습된 거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아무런 학습이나 경험 없이도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고소공포증이고 또 하나가 어둠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준이가 어두운 골목 속으로 들어가는 아정을 볼 때 카메라가 어둠을 향해서 죽 가고 그런 다음에 시점이 바뀌어서 어둠 속에서 도준을 바라보는 전환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준이 고물상 할아버지를 목격한 것처럼 돼서 엄마가 그 할아버지를 잡으러 가게 되는 건데 사실은 그 반대다. 할아버지가 안에서 밖에 있는 원빈을 본 거다. 그 시점이 전환됨으로써 모든 게 붕괴되고 어둠 속으로 추락한다. 이미 어둠을 보는 순간부터 근원적인 공포를 느끼는 거다.

그러면서 엄마는 괴물이 된다.
그렇게 보는 시각이 꽤 있다.

<괴물> 때도 괴물이 엄마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더>에서는 ‘엄마=괴물’이란 공식이 더 확실해진 것 같다.
새끼 때문에 원초적인 짐승이나 야수가 되는 순간을 보여주려고 했다. 새끼를 보호하려고 이빨을 으르렁 으르렁 할 때 그 순간은 사실 선도 악도 아니다. 도덕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이다. 엄마가 그 순간이 되는 지경을 묘사했다. 그게 관객 입장에선 충격적이면서 불편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서 엄마가 괴물일 수 있는 것 같다. <괴물>에서는 엄마 자리에만 사람이 없었는데 <마더>에는 엄마가 중심에 있고 대신 아빠가 없으니까, 결국 이상한 범죄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웃음)

<마더>의 설정은 어쩔 수 없이 구원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괴물 같은 사회가 그렇게 몰아간다.
모성이 구원이라는 말에는 어머니한테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나. 그럼 어머니들은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들은 누군가를 보듬고 보호해주고 구원해준다. 이런 것들은 어머니 본인의 의무감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들은 벼랑 끝에 놓인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게 <마더>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정으로 작용한다. 어머니들은 불쌍하잖아, 눈물 나고 가슴이 쓰라리고. 그런 감정적인 경로를 통해서 엄마라는 존재에 접근해 들어갔다.

외국 평자들은 히치콕과 많이 비교한다. 개인적으로는 <마더>의 갈대밭 오프닝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대평원 장면과 겹쳐지더라. 남자 주인공이 사방이 뻥 뚫린 평원에서 비행기에 혈연단신으로 쫓기지 않나.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막막한 상황이 <마더>와 일치한다.
신선한 얘기다. 정말 <마더>의 엄마는 홀로된 고독한 존재지. 그게 우리 영화의 주된 이미지다. 오프닝 말고도 넓은 공간에서 이 엄마가 혼자 가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진태 집에서 골프채 찾아 혼자 가는 장면도 그렇고 고물상으로 가는 클라이맥스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엄청나게 롱숏으로 잡고 주변이 음산하게 나무들이 있고 운명적인 음악이 흐르면서 혜자와 고물상 할아버지가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리고 엄마가 고물상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운명이 완전히 바뀐다. 진흙탕에 찍 미끄러지듯이 가지 말았어야 할 곳이었다.   

그래서 2.35:1의 화면을 선택한 건가?
출발은 그게 아니었다. 근데 1.85:1로 했으면 그게 좀 답답했을 텐데 2.35:1을 사용하니까 그런 구성을 하기가 좋더라. 남들은 스펙터클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2.35:1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취향이 이상해서 그런지 그 사이즈를 보면 마음이 불안해. 옆으로 길쭉해서 그런가, 뭔가 기우뚱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사이즈에서 인물을 한쪽으로 몰면 공간이 언밸런스해지면서 불안정해지는데 <마더>가 불안과 히스테리를 다루니까 거기에 매혹됐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의외로 얼굴 두 개가 나오는 장면이 별로 없다. 2.35:1은 사람들이 측면에서 마주보는 구도가 많은데 <마더>는 한 명이 나오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이건 의도한 바다. 2.35:1에서 클로즈업을 세게 들어가면 머리와 턱 부분이 잘라진다. 그래서 혜자 선생님의 미묘하게 불안하고 타이트하게 드러난 눈이 이만하게 나오는 장면을 찍고 싶었다.

의도적으로라도 <괴물>과는 다르게 만들겠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전작과는 차별되는 요소가 많다. 아버지가 부재하고 실재적인 공간이 등장하지 않고 결말도 나름 명확하다.
<괴물>이 망치로 사람을 통통 치는 영화였다면 <마더>는 종이에 싹 베일 때 쓰라린 느낌과 같은 영화다. 또한 <괴물>은 여러 가지를 한 데 녹여낼 수 있을까, 잡탕을 잘 끓일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반면 <마더>는 올림픽 구호처럼 따진다면 더 높이, 더 멀리가 아니라 단순하게 깊게 강렬하게가 모토였다.

게다가 약자와 약자끼리 먹이사슬을 형성하는 경우도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그걸 떨어져서 전체를 바라보는 우리는 되게 슬픈 거지. 엄마가 불쌍한 것도 알고 종팔(김홍집)이 불쌍한 것도 아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슴 아픈 거다. 실제로도 우리 생활이 그렇지 않나. <마더>는 특히 이야기 구조 자체가 그런 게 심한 거 같다. 문아정 되게 불쌍하다. 이 불쌍한 아이를 또 다른 불쌍한 애인 도준이 죽이고, 더 불쌍한 종팔이가 그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엄마만 그 고통을 껴안으면서 침 맞고 춤을 추며 끝나는 거지. 참 잔인한 영화에요. (웃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금 시대에 굉장히 어울리는 은유적 설정이다.
내가 작품을 하는 게 항상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영화를 준비하기 때문에 시사적인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임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바보 노무현과 바보 도준을 묶어서 설명한 글도 있다.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 나야 3년 걸려서 찍더라도 관객은 그 시점에서 보는 거니까 당연한 해석인 것 같다.

엄마가 교도소를 찾아가 종팔이에게 “너 엄마 없어?”라고 묻는 지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더라.
만인의 심금을 울린 그 대사는 나와 함께 작업한 박은교 작가가 쓴 대사다. 사실 엄마도 범죄자다. 그렇게 말하고 울면서 옆에 형사 제문(윤제문)이 있는데도 절대 얘기를 안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미워하지 못한다. 왜 그런지 다 아니까, 거기서 오는 죄책감이 관객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는 거 같다. 그나마 엄마가 종팔이한테 차리는 유일한 예의라면 도준이 출소를 할 때 마중을 안 나가는 거다. 

매 작품 다른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손태웅, 송지호 작가, <살인의 추억>은 심성보 작가, <괴물>은 하준원, 백철현 작가, 그리고 <마더>는 박은교 작가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내가 영상원 강의 나갈 때 내 수업 들었던 학생들이다. 난 프로작가와 일해 본 적이 없다. 나와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면 연출부나 스크립터를 했다. 그 말의 의미는, 나와 2~3년은 보내게 된다는 거다. 인고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 나랑 함께 하면 몸이 한두 군데가 망가진다. <괴물> 때 하준원은 같이 시나리오 쓰고 스크립터 한 후 나의 개인 영화 학교를 졸업한 셈인데 얼굴에 경련 오고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박은교 작가는 어떤가? 건강하게 잘 살아있나? (웃음)
박은교 작가는 잘 버틴 편이었다. <마더>가 내가 했던 영화들에 비하면 프리프러덕션 시작해서 개봉할 때까지 기간이 제일 짧았다. 모든 공정이 1년 안에 끝났으니까. 작년 4월에 연출부가 출근하기 시작했으니까 정확히 1년 만에 작업을 마친 거다.


<설국열차>로 만나요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은 잘 알려졌다시피 제작자 박찬욱과 손잡은 동명의 프랑스 SF만화 <설국열차>다. 그의 작업방식이 늘 그렇듯 <설국열차>는 이미 <마더> 연출하기 전부터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돼 현재 1차 원고가 탈고된 상태다. 봉준호 감독은 이를 토대로 조만간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설국열차>를 스크린에서 조우하기 위해서는 이번 역시 3년을 기다려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늘 3년 터울로 장편을 발표해왔다. 다만 그는 당분간 좀 쉬고 싶다고 말한다. <살인의 추억> 이후로 <마더>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터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조만간 ‘뿅~’ 사라질 예정이다.

<설국열차>의 1차 시나리오는 SF소설가 김보영(<미래를 가는 사람들><7인의 집행관>)이 작업했다. 
시나리오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분이 쓴 버전은 영화적인 틀이 갖춰져 있지 않다. 원작의 설정을 토대로 자유롭게 에세이나 소설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올 여름부터 완전히 새롭게 쓰려고. 전체적으로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다만 그분이 쓴 시나리오를 보면 단편적인 아이디어나 과학적 배경지식이 엄청 풍부하다. 그런 것들이 좋은 바탕이 될 것 같다.

올 여름에 시나리오 작업 들어가면 별로 쉴 시간도 없네?
요즘 인터뷰할 때마다 다음 달부터 <설국열차> 시나리오 쓴다고 얘기하는데 (목소리가 작아지며) 사실은 내년부터 쓸 거야. 금년엔 놀려고. ‘찬욱팍’이 이 사실을 알며 쪼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쓴다고 얘기하는 거지. 흐흐흐. 금년은 남은 기간이나마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3년 터울로 영화를 개봉했지만 준비기간도 그만큼 만만치 않았으니 그동안 휴식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겠다.
내가 <마더>를 개봉시키고 과거의 일을 반추해보니까 2002년부터 논스톱으로 6년을 달려온 거 같다. <플란다스의 개>는 쫄딱 망했기 때문에 개봉하고 나서도 널널했는데 2001년 <살인의 추억> 발동 걸리면서 한영애 뮤직비디오, 단편 <싱크&라이즈>, 디지털 삼인삼색 <인플루엔자> <괴물> <흔들리는 도쿄> <마더>까지 미친 듯이 작업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이번에 반년이나마 쉬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럼 휴식기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건가?
6월 말에 스위스의 뉴샤텔 영화제라고 부천 판타스틱과 비슷한 영화제인데 거기 심사위원을 맡았다. 영화제 끝나면 안 돌아오려고. 알프스 주변으로 당분간 사라졌다가 8월 쯤 돌아올 예정이다. 9월에는 산 세바스찬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라 그땐 스페인 근처에서 사라질 거다. (웃음)  사진 편재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딴지일보
(2009.6.9)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