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은 지금 새로운 전기를 마련 중이다. 그 중 오성윤 감독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흑(黑)역사, 즉 과거의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한층 진보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그간 한국 애니메이션이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관객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던 ‘이야기’ 강화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전한다. 그런 의지의 반영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작 선정에서부터 두드러진다.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이자 초등학교 5학년 읽기 교과서에도 수록된 황선미 작가의 동명 아동문학을 원작 삼은 것.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암탉 어미와 청둥오리 새끼 간의 사랑을 그린 일종의 가족영화다. 암탉 ‘잎싹'(문소리)은 양계장에서 알을 낳는 운명을 타고 났다. 잎싹은 그게 늘 불만이다. 알만 낳는 게 아니라 알을 품어 직접 새끼를 길러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나흘 동안 굶은 후 죽은 척 연기를 펼쳐 양계장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드넓은 자연에서의 삶은 때때로 죽을 고비를 가져오지만 청둥오리 ‘나그네'(최민식)의 도움으로 적응에 성공한다. 그렇게 나그네에게 마음을 품기를 잠시, 족제비의 공격에 나그네 내외가 목숨을 잃자 암탉 잎싹은 이들이 남긴 알을 품어 청둥오리 새끼 ‘초록'(유승호)을 기르게 된다.
동물의 세계를 의인화 한 이야기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은 보편적인 가족애를 전면에 내세우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방위적 관객층을 겨냥한다. 이는 아동을 타깃 삼은 원작소설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이라 할만하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가 등장인물의 매력을 넘어섬으로써 다소 어두운 색채를 띤 원작과 달리 <마당을 나온 암탉>은 친근한 캐릭터 구축을 통해 더욱 밝아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나그네와 잎싹의 가족을 위협하는 족제비 캐릭터를 제외하면 모두가 호감형 일색인데, 이는 현대영화가 갖는 캐릭터에 대한 공평성, 다시 말해 방사형의 이야기 서술에 빚진 측면이 크다.
과거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선인과 악인의 구도를 선명히 갈라놓아 관객의 감정이입을 한쪽으로만 쏠리게 하는 이야기를 주로 선보였다. 다소 유아적인 형태의 캐릭터 구도는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라는 저간의 선입견에 무임승차하며 성인 관객을 배제하는 우를 범해왔다. 그에 반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아무리 비호감의 족제비라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해명의 시간을 제공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동물의 운명은 닭과 청둥오리는 물론, 족제비도 피해갈 수 없다. 먹이사슬의 구도 속에 새끼를 키우기 위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모성애의 감정적 드라마는 ‘인간’ 관객들에게 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캐릭터들은 자연스럽게 입체성을 확보한다. 그것은 영화가 등장인물에게 부여한 성격의 다면화이면서 한편으로 인간 세계의 의인화로도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까닭이다. 닭과 청둥오리의 관계는 서로 다른 종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다문화로 들어선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모성을 다루는 방식만으로 충분히 흥미롭다. 주인공 잎싹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식인 초록 외에도 모든 동물들에게 동등한 정도의 애정을 표하길 즐긴다. 상대방의 특징을 찾아 그 누구라도 이름을 붙여주는 잎싹을 보고 있으면 모성이라는 것이 그 자신의 새끼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 누구나 고개 끄덕일만한 메시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이야기에서만큼은 꽤 성공적인 만듦새를 취하고 있음을 설득한다. 시장에서 상품성이 증명된 원작을 취한 결과가 작용한 탓이 크다. 다만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애니메이션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지 못한 것은 여전히 한국 애니메이션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애니메이션은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실사영화와 달라서 편집의 개입이 절대적인 편인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실사영화에서 구현하기 힘든 다양한 프레임으로 장면을 이어 붙이는데 주력한다.
한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풍경에서 뛰어노는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 예컨대 나그네와 족제비의 대결, 청둥오리 파수꾼 비행 대회와 같은 장면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란한 시각화를 위한 프레임의 잦은 변화는 이야기의 진행을 툭툭 끊는 인상을 준다. 이야기와 스펙터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제작진의 의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같은 이유로 <마당을 나온 암탉>에 대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완성형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망설여진다. 오히려 과거 한국 애니메이션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의 보완을 통해 일취월장한 진화의 형태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