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뱀파이어 헌터> 링컨은 어떻게 근심을 멈추지 못하고 뱀파이어 헌터로 부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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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링컨 : 뱀파이어 헌터>는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기존 뱀파이어물의 장르 컨벤션을 완전히 뒤엎는 영화다. 단순히 링컨을 뱀파이어 헌터로 설정한 그 기발한 상상력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액션이 강조되는 형국이지만 원작소설을 쓰고 시나리오 각색 작업에도 참여한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는 현실의 메타포로 뱀파이어 물을 활용한다.

아마 제목으로만 관객의 기대감을 판단한다면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링컨 : 뱀파이어 헌터>는 단연 톱이다. 이 영화는 제목만으로도 꽤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어떻게’ 뱀파이어 헌터로 둔갑(?)시킬 생각을 했는지, 그 많은 미국의 역사적인 인물을 두고 ‘왜’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을 선택했는지, 이 기상천외한 설정의 이야기를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시기에 선보이는지 의문이 절로 고개를 든다. 이를 알아보는 것은 <링컨 : 뱀파이어 헌터>의 기저에 흐르는 미국의 ‘어떤’ 욕망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왜 링컨인가?

<링컨 : 뱀파이어 헌터>는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동명소설(국내에는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레이엄 스미스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좀비 물로 패러디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로 유명세를 탄 작가다. 그는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이디어를 얻게 된 과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로 북 투어를 하던 2009년 당시 어떤 서점을 방문하게 됐다. 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을 판매하는 서가가 눈에 띄었고 그 옆 서가에는 링컨의 전기물들이 놓여있었다. 그 순간, 이 두 개의 소재를 연결하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번쩍했다. 실은 뱀파이어 물을 좋아하는 독자와 링컨을 존경하는 독자를 모두 공략하자는 속셈도 있었다. 하하하”

<트와일라잇>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며 뱀파이어 열풍을 일으킨 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다만 링컨의 미국 내 인기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통령이 링컨이란 사실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트와일라잇>이라는 팝문화가 정점을 찍고 있던 2009년에 ‘뱀파이어’라는 키워드와 나란히 하는 일종의 ‘링컨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미국 바깥의 우리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은 링컨 탄생 200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2009년 한 해에만 링컨의 전설에 대해 다룬 신간이 10여종 넘게 출간됐다. 그런데 이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미국의 연애정보 월간지 ‘베니티페어’의 에릭 스피츠나겔 기자는 2010년 2월에 진행된 세스 그레이엄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년이 갓 넘은 버락 오바마와 링컨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2007년 2월 10월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던 오바마가 미국의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의 옛 주정부 건물 청사 앞에서 연설을 하며 링컨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서두를 연다. 그 자리에서 오바마는 청중들을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데 요약하자면, 당시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던 미국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도록 링컨의 의지를 다지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이다. 아시다시피 링컨의 업적에 있어 스프링필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이곳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고 정치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 워싱턴에 입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그날 연설은 사실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발표 장소로 스프링필드를 선택한 데에는 링컨과 관련해 상징적인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요컨대, 오바마는 현대에 재림한 링컨의 이미지로 유권자에게 어필했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의 통일을 이뤘듯 오바마는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오르며 평등의 가치를 몸소 실현했다. 그는 이미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주로 흑인과 여성 등 사회적 소수 계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바꿔 말해, 링컨이 흑과 백의 화합을 가로막는 벽을 허물며 하나 된 가치를 실현했지만 지금 미국의 분열은 흑백의 차원을 넘어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못 가진 자의 대립 양상으로 더욱 심화됐다. 그러니까 오바마의 당선과 함께 다시 조명 받게 된 링컨의 업적은 또 다른 해방을 바라는 미국 사람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그레이엄 스미스는 그 욕망을 감지하고는 링컨이라는 필터를 통해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럼 링컨과 뱀파이어 헌터 간의 연관성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왜 뱀파이어인가?

링컨(벤자민 워커)이 뱀파이어 헌터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어린 시절 목격한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뱀파이어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링컨은 복수를 다짐하며 성장기를 보낸다. 하지만 누가 뱀파이어인지 분간을 못하는 링컨 앞에 헨리(도미닉 쿠퍼)라는 의문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로부터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숨어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은 링컨은 뱀파이어 헌터로 훈련받는다. 헨리가 지목한 뱀파이어를 처단하며 끝내 어머니의 복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실을 다시 보게 된 링컨은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정치가가 되리라 결심한다. 노예 시장의 흐름을 관찰하던 링컨은 남부 농장의 백인 대지주들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동안 놓았던 도끼를 다시금 꺼내든다.

이 영화를 시나리오로 각색한 이는 다름 아닌 원작자 그레이엄 스미스다. 제작자 팀 버튼과 연출자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로부터 액션을 강화한 이야기로 각색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그는 원작에는 없던 강력한 뱀파이어 캐릭터 애덤(루퍼스 스웰)을 창조해 링컨과의 대결을 강화했다. 하지만 그레이엄 스미스는 <링컨 : 뱀파이어 헌터>가 단순한 액션물로 기능하는 걸 원치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가 ‘뱀파이어 헌터’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소설은 뱀파이어와 헌터라는 허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링컨의 역사적인 업적’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영화는 링컨과 뱀파이어 간의 말 위를 날고 구르며 중력을 무시한 채 펼치는 인공적인 액션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소설은 지문의 90% 이상을 역사적인 사실로 채우는 것이다. 그레이엄 스미스 왈, “실제 링컨에 대해, 그리고 그가 인생을 걸고 투쟁했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우고 깨닫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레이엄 스미스는 영화를 위해 애덤 외에도 링컨과 어린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윌리엄(안소니 마키)이란 흑인 친구를 새롭게 설정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윌리엄을 링컨이 구해주면서 이들은 처음 인연을 맺는다. 그때 윌리엄을 괴롭히는 인물은 잭 바츠(마튼 크소카스)라는 백인 사채업자인데 그는 또한 링컨의 아버지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링컨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뱀파이어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잭 바츠와 같은 악덕 사채업자를 두고 ‘가난한 자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 같은 놈’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렇다, 그레이엄 스미스가 소설과 영화에서 뱀파이어라고 지칭하는 인물들은 탐욕에 절은 자본주의자의 은유다. 이들은 인간 세상에 숨어서 부귀를 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이승의 사람이 아니다보니 영혼이 빠져나가 하얗게 뜬 얼굴은 명백히 백인을 상징한다.  
 
그레이엄 스미스가 링컨을 뱀파이어 헌터로 설정한 건 그렇게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닌 셈이다. 결국 남부의 대지주들이 흑인 노예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닦달하였던 건 탐욕이라는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함이었다. 그레이엄 스미스는 이를 뱀파이어인 남부 대지주들이 마음 놓고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할 심산으로 노예제도를 유지한 것이라고 은유한다. 이건 패러디와는 차원이 다른 형태다. 제목이 주는 황당한 기대와 달리 소설이건 영화건 링컨과 뱀파이어 헌터와의 연관을 두고 웃음을 유발하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 비록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이 작품을 액션물로 대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레이엄 스미스만큼은 시종일관 뱀파이어 물이라는 장르를 넘어 실제 역사를 다루는 듯한 태도로 일관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링컨 : 뱀파이어 헌터>를 보고 있으면 이 이야기가 꼭 200년 전 링컨이 활약했던 과거의 시간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과 영화 모두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링컨의 시대를 회고한 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특히 소설과 다르게 영화는 링컨의 유산을 지금에 되살리려는 노력이 극 전반에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링컨이 제거해야 할 뱀파이어들이 종사하는 직업군은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헨리로부터 첫 지령을 받고 찾아간 뱀파이어가 ‘약사’였고 그 다음 뱀파이어가 ‘은행가’였다는 사실은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을 상기하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약사를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보험의 폐해로, 은행가를 월가의 탐욕으로 은유하고 있다는 창작자의 의도가 보이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돌고 도는 법. 그레이엄 스미스는 원작소설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비밀일기(사실은 작가의 상상력!) 중 한 대목을 인용, “이 나라에 노예 제도가 존속하는 한, 뱀파이어의 저주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그 때문인가, 소설에서는 암살당한 링컨이 세계2차 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부활해 뱀파이어의 봉기를 진압했다는 내용을 결말에 삽입하기도 했다. 영화는 또 어떤가. 링컨이 남북전쟁을 승리를 이끈 후 2012년 현재로 시간을 이동한 영화는 또 다른 뱀파이어 헌터의 출현을 예고한다. 그레이엄 스미스는 부활한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로 활약하는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의 후속(완결)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지만 영화는 또 다른 뱀파이어 헌터의 존재를 공란으로 남겨둔다. 이는 속편에 대한 느슨한 암시이면서 현대판 노예제도가 존속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이기도 하다.

제2의 링컨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오바마는 앞서 언급한 스프링필드에서의 연설에서 공약 중 하나로 보편적인 의료 제공을 약속하며 의료보험의 대대적인 개혁을 천명했다. 허나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여전히 높은 치료비용으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금융권의 탐욕으로 비롯된 경제 불안정은 돈 없는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19세기의 미국이 흑과 백으로 분열됐었다면 지금은 1% 부자와 99% 빈곤층으로 나뉘어 격렬한 전선을 긋고 있으니, 미국인들의 대다수는 링컨, 아니 뱀파이어 헌터(?)의 부활을 목 놓아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엄 스미스가 링컨과 뱀파이어의 아이디어를 얻었던 2009년만 해도 오바마는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심리를 충족해줄 것만 같았지만 다가올 2012년 11월 대선에서 연임을 장담하기 힘든 처지로 전락했다.

그레이엄 스미스가 소설의 후속편을 준비 중에 있고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의 영화가 속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건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미국인들의 상실감에 대한 다른 식의 발현이라 할 만하다. 탄생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열렬히 소환되고 있는 링컨을 향한 미국의 욕망은 단순히 존경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레이엄 스미스는 원작소설의 마지막을 “세상에는 너무 중요해서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장식했다. 이처럼 미국은 여전히 링컨을 필요로 할 만큼 혼란하다. <링컨 : 뱀파이어 헌터>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마지막 장면은 어떤 형태가 될까. 다시 한 번 또 다른 영웅의 부활을 알릴까, 아니면 깔끔한 해피엔딩일까. 어떤 모습이 됐든 우리는 그를 통해 미국의 현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movieweek
NO.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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