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틸> 아버지의 지위를 복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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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스틸>이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개봉 첫째 주 압도적인 스코어 차(2위 <의뢰인>과는 관객 수 무려! 31만 명 차이)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고 할 만하다. 방학 시즌을 제외하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리얼 스틸>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가족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2006)를 연출한 숀 레비 감독과 <이티>(1982) <쥬라기 공원> 등 가족영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자로 의기투합, 또 하나의 가족영화의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원작소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리얼 스틸>은 인간을 대신한 로봇 복싱이 전면에 나선다. 한때 각광받는 권투선수였다가 지금은 삼류 프로모터로 전락한 찰리 켄튼(휴 잭맨)은 지하의 로봇 복싱 대회를 전전하는 중이다. 이 또한 결과가 좋지 못해, 빚을 내 구입한 로봇이 첫 경기부터 KO패, 고철덩어리 신세가 되는 등 찰리의 인생은 여전히 그로기 상태다. 설상가상, 맡아 기르고 싶지 않았던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와 재회하면서 찰리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끼는 듯하다. 하지만 맥스가 우연히 발견한 퇴물 로봇 ‘아톰’이 허약한 모양새와 달리 복싱 대회에서 승리를 거듭하자 켄튼 부자는 정식으로 파이터 훈련을 시작한다.

이처럼 <리얼 스틸>은 가족오락물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지만 이와 어울리지 않게 원작은 <나는 전설이다>로 유명한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스틸 Steel>(1956)로 알려진다. 후에 리처드 매드슨이 직접 각색자로 참여한 TV시리즈 <환상특급 The Twilight Zone>의 122번째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유투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와는 그 내용이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고장 난 로봇을 대신해 (리 마빈이 연기한) 주인공 켈리가 로봇 분장을 하고 링 위에 올랐다가 경기에 패하고 대전료도 챙기지 못하는데다가 몸까지 상하고 마는 애잔한 결론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리얼 스틸>은 단순히 로봇 복싱의 설정만 가져왔을 뿐이지 세부적인 내용은 원작의 비극적인 기운과 패배자의 정서를 완전히 제거하고 좀 더 희망적인 분위기, 그러니까 화해와 화합과 같은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온전히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리얼 스틸> 프로젝트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드림웍스가 파라마운트와 결별하고 디즈니와 손을 잡으면서 직접 챙겼던 프로젝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몇몇 사람은 이 대목에서 스필버그와 리처드 매드슨의 인연을 유추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스필버그와 매드슨의 인연

스필버그의 장편 데뷔작이자 <환상특급>의 한 편으로 기획된 TV영화 <대결 Duel>(1971)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그의 재능이 가장 먼저 인정받은 작품에 속한다. 다만 리처드 매드슨의 동명단편이 원작이고 영화의 각색자로 직접 참여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매드슨의 각본은 비서를 통해 스필버그에게 전달됐고 이들이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스필버그가 리처드 매드슨의 존재를 알게 된 건 <환상특급>을 통해서다. <환상특급>의 팬이었던 스필버그는 리처드 매드슨이 각색자로 참여한 시즌의 16개의 에피소드를 모두 시청하면서 그의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대결>은 물론 <리얼 스틸>에까지 이르게 됐다. 꽤 오래 이어진 인연인 셈인데 흥미로운 건 <대결>이 원작의 정서에 충실하다면 <리얼 스틸>은 완전히 반(反)하는 쪽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재밌는 가정을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스필버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결>과 <리얼 스틸> 중 리처드 매드슨이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아니 두 작품에 대한 리처드 매드슨의 평가는 과연 어떨까? <대결>에 대해서는 관심을 살만한 매드슨의 답변이 있다. ‘미스터리파일닷컴’이라는 사이트에서 공개한 인터뷰인데 (http://www.mysteryfile.com/Matheson/Interview.html) “어떤 작품을 경력의 정점으로 꼽느냐?”는 질문에 매드슨은 분야별로 답변을 하면서 영상 각색과 관련해, “<환상특급>에 참여했던 14개의 에피소드 중 4~5개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중 하나로 <대결>을 언급했다. (Highlights of my script work: four or five of the 14 Twilight Zone’s; SOMEWHERE IN TIME THE MORNING AFTER, DUEL, and THE DREAMER OF OZ on television.)   

그렇다면 <리얼 스틸>은? 아직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리처드 매드슨의 성향으로 추측컨대 별로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 <나는 전설이다>를 영화화한 작품’들’에 대한 리처드 매드슨의 반응 때문이다. <나는 전설이다>는 총 세 번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 The Last Man on Earth>(1964)와 <오메가 맨>(1971)과 <나는 전설이다>(2007)가 그 주인공인데 이들 작품은 공교롭게도 ‘멸망한 지구에 홀로 생존하는 남자’라는 원작의 설정만 최소한으로 살리는 대신 좀 더 대중적인 형태로 변형을 시도했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제작 당시 유행하던 흡혈귀물로, <오메가 맨>과 <나는 전설이다>가 액션이 강조된 영웅물로 장르의 성격이 바뀌며 원작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배반한 것.

잘 알려진 얘기지만 리처드 매드슨은 이 세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신의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단편소설을 쓴 후 이를 초안 삼아 좀비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든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밝혔다. 현실의 비극을 메타포 삼아 장르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매드슨의 작품 성향을 감안하면 의외는 아닌 셈이다. <스틸>만 해도 인간이 권투를 하는 것이 금지된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돈푼 벌어보겠다고 기능을 상실한 로봇 대신 켈리가 정체를 숨기고 링 위에 오른다는 설정, 즉 인간과 기계의 역전된 관계는 극도로 자본화된 당대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리얼 스틸>은 가족해체라는 현실의 비극을 Sci-Fi라는 미래 시점을 빌어 행복한 결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가족 신화의 보수성을 견고히 한다. 그런 점에서 리처드 매드슨이 <리얼 스틸>을 맘에 들어 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스필버그 가족주의의 계보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1977)를 필두로 가장 진보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Sci-Fi를 통해 보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특출한 능력을 보여 왔다. 그것은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미 공식화된 장르인데 그런 연유로 숀 레비의 <리얼 스틸>까지 이어지는 계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아버지의 복권을 통한 가족의 결합’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는 이 한 줄로 요약가능하다. 대개의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면 <이티>처럼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우주전쟁>(2005)처럼 아버지가 있어도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가족의 꼴을 갖춘 설정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와 같은 설정이야말로 스필버그가 당대의 미국 사회를 징후적으로 꿰뚫어보는 작가적 시각이라 할만하다. 하여 스필버그의 영화적 목적은 극 중 콩가루 된 가족을 재결합, 화목한 결말로 나아가는 이야기 구조를 취함으로써 특유의 메시지를 획득하는 데 있다. 제작자로 참여해 직접 입김을 불어넣은 <리얼 스틸> 역시 다르지 않아서, (감독 숀 레비와 다코타 고요의 캐스팅은 스필버그가 주도적으로 결정했다.) 찰리 켄튼은 태어나자마자 버린 아들 맥스를 돈 때문에 맡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로봇 복싱 대회에 함께 참가해 챔피언에 오르고 혈연관계까지 돈독히 다지게 된다.

다만 그의 영화가 가족영화의 흥행을 압도적으로 주도하고도 유아적이라고 비판(혹은 매도)당하는 이유는 아이의 시각에서 가족결합이 이뤄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역시 스필버그가 총 제작을 맡고 수제자로 알려진 로버트 저메키스가 감독한 <백 투 더 퓨처>(1985)를 보면, 아들 마티(마이클 J.폭스)의 시간여행으로 인해 아버지 맥플라이는 자랑스러운 가장의 위치에 오르게 되고, 스필버그 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며 스필버그 가족주의의 계보를 잇는 J.J. 에이브람스의 <슈퍼에이트>(2011)는 6명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명인 조(조엘 코트니)가 마을에 침공한 괴수에 주도적으로 맞서며 부인을 잃은 후 도대체가 가정을 돌보는 것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를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한다. 마찬가지로 <리얼 스틸>에서도 실제 주인공은 어린 아들 맥스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격투기 로봇을 조종하는 켄튼과 달리 맥스는 고철 로봇을 키우며 로봇 복싱의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한다. 이에 고무 받은 켄튼은 격투기 로봇 조종을 통해 잃어버린 복서로서의 자부심을 다시금 곧추 세우는 것이다.

결국에 스필버그 가족주의 영화의 최종 목적은 아버지 역할의 복권이다. 아버지가 가장의 지위를 획득해야지만 흩어진 가족은 모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철저히 남성적인 눈높이에 기반을 둔 메시지다. 그 중에서도 ‘철이 덜 든 남자’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강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덧씌우겠다고 아이들이 도움을 얻는 도구(?)가 다름 아닌 외계인, 자동차, 괴수, 로봇과 같은 유아적인 판타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미지와의 조우>와 <이티>의 괴생물체, <백 투 더 퓨처>의 ‘스포츠카’ 드로리안, <슈퍼에이트>의 외계에서 온 괴물, 그리고 <리얼 스틸>의 각종 격투기 로봇은 인간 가족의 결합과 행복을 위해 그렇게 소모되고 소비되어 왔다. 스필버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가족주의를 일러 보수적이고 동시에 유아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강한 아버지의 신화? 허구?

리처드 매드슨이 그렇게 경계했던 방식, 즉 현실의 비극을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그의 소설을 원작 삼은 영화가 대책 없는 가족주의로 개비됐다는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바로 그 점이 한미 양국에서 <리얼 스틸>이 흥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만 성격이 완전히 뒤바뀐 이야기는 한편으로 뭔가를 숨기기 마련이다.

우연의 일치처럼 스필버그의 가족주의 영화는 <미지와의 조우> <이티> <백 투 더 퓨처> 등이 흥행에 성공했던 1980년대 냉전시대와 <슈퍼 에이트> <리얼 스틸> 등이 집중적으로 등장한 2011년의 경제위기 등 공통적으로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때 각광을 받았다. 미소 냉전시대는 소련이라는 외부 세력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가 컸던 때이고, 지금은 금융 위기로 촉발된 경제 몰락이 세계 제1의 국가로써의 미국의 지위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내부의 결속이 강조되기 마련인데, 하여 강한 아버지에 대한 욕망이 가족결합으로 수면 위에 부상하는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는 강한 미국의 신화를 견고히 하는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스필버그 가족주의의 징후적 특징이라면 늘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이를 이겨낼 때야 비로소 가족의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리얼 스틸>을 예로 들자면, 켄튼과 맥스가 짝을 이뤄 최종적으로 무찔러야 할 상대는 일본인 로봇 제작자와 러시아 프로모터가 손잡은 다국적 챔피언 로봇 제우스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로봇 복싱 리그가 배경이지만 결승전 대결은 미국과 비(非)미국 팀 간의 대결로 압축된다. 게다가 겉으로 드러나는 현격한 실력 차와 무관하게 모든 불리한 조건을 딛고 찰리 부자가 끝내 경기에서 승리하는 순간, 극 중 우리의 주인공들이 겪은 갈등과 불행이 일거에 해소되며 마치 인간승리의 드라마처럼 많은 이들에게서 감정적인 동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가족주의에 감동하는 사이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이와 같은 감정의 스펙터클 이면에서 조작되는 미국적 가치다. 켄튼과 맥스가 그들의 로봇 ‘아톰’과 함께 일궈낸 승리의 이면에는 로봇과 유사한 금속성의 무기들이 주가 되는 전쟁에 대한 미화가 기저에 깔려 있다. 미국이 첨단의 무기를 앞세운 무수한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이권을 취득하는 상황에서 <리얼 스틸>과 같은 로봇물은 관객이 로봇 격투로 촉발된 감정의 스펙터클에 취한 사이 전쟁에 대한 동의를 은연중에 이끌어낸다. (스필버그가 <트랜스포머>의 제작자로 참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종류의 전략은 다분히 퇴행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는 현재 처한 위기의 상황, 다시 말해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로의 ‘백 투 더 퓨처’를 마다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로봇과 외계인, 괴수를 마다하지 않고 끌어들여 기어코 아버지의 강한 힘을 되살리고야 만다.  

그것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요 몇 년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적인 상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통적인 미국 가치관에 대한 배신감을 잇달아 맛보았다. 9.11에는 미국 본토가 습격되는 참혹한 테러의 현장을 목격했고 지금은 금융 위기로 촉발된 월가의 탐욕과 부패한 정치로 삶의 터전이 와해되는 광경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리얼 스틸>과 같은 낙관주의적 가족주의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손상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미국적 가치의 재확신을 불러온다. 강한 아버지의 지위를 복권하라! 스필버그에 이어 로버트 저메키스를 거쳐 숀 레비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계보를 이루는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는 그 기간만큼이나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 아니 미국의 현실을 역으로 증명한다. 2020년을 배경으로 한 <리얼 스틸>은 표면적으로 미래를 다룬 Sci-Fi를 취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과거를 지향하는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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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1.10.25)

3 thoughts on “<리얼 스틸> 아버지의 지위를 복권하라!”

  1. 이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역시나 미국식 가족주의 프로파간다를 잘~ 버무려 담은 선전물이더라고요. 근데 재미있었어요. 오락 영화 한편에 무슨 대단한 정치적 프레임을 갖다대냐 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죠? 그래서 이면에 숨어있는 메세지가 더 무서운거 아닐까..싶기도 해요.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보고 페북에 예고편을 올리고 추천글을 써도 아무도(정말 아무도) ‘좋아요’ 하나 안 눌러주더니, < 리얼 스틸> 개봉첫주에 페이스북에 추천글이 넘쳐나네요^^ 뭐… 늘.. 그런거겠죠?^^ 글 잘 읽었습니다~~

    1. 예, 오락영화에 왜 이렇게 죽자고 덤벼드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근데 그 보다는 이렇게 긴 글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_-;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일요일에 저희 부모님이 보러 아트선재센터에 갔는데 스무 명도 채 안되는 사람들만 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는 정말 좋은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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