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바로 서야 팀이 바로 선다

mourinho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공히 리더를 잘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지면에 안 그래도 쏟아지고 있는 정치 이야기 하나를 더 보태려고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리더 문제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있는데 여기서는 스포츠 지도자, 즉 감독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주제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gue)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경기였다. 맨유의 현(現) 감독이자 첼시의 전(前) 감독 조제 무리뉴로 인해 ‘무리뉴 더비’로 불린 이 더비에서 무리뉴는 전 소속팀에 0:4로 대패했다.

스코어 차가 말해주듯 맨유는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했다. ‘스페셜 원 Special One’으로 불리면서 맨유 명가의 재건을 노리던 무리뉴. 첼시를 비롯하여 맨체스터 시티 등 라이벌 팀과의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노멀 원 Nomal One’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금까지의 결과(11라운드 현재 5승 3무 3패로 6위!)를 보자면 무리뉴와 맨유는 궁합이 맞지 않아 보인다.

포르투와 첼시와 인터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와 (다시) 첼시를 거치며 보여준 무리뉴의 축구에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다. 우선 뒷선의 수비를 견고하게 구축한 후 중앙의 플레이메이커가 찔러주는 패스 한 방으로 윗선의 골게터가 득점하는 경제적인 축구로 무리뉴는 EPL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세리에 A,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까지 유럽 3대 리그를 모두 석권했다.

그런데 맨유에서는? 수비진은 11경기에서 13골을 내주며 매 경기 한 골 이상의 실점을 기록 중에 있다. 미드필더는 거액을 주고 인터밀란에서 데려온 폴 포그바만이 매 경기에 출전 중이고 파트너로 마이클 캐릭, 마루앙 펠라이니, 후안 마타 등이 번갈아 가며 뛰는 등 확실한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스트라이커의 경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팀에서 가장 높은 6골을 기록하고 있지만, 예전 같은 파괴력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리그 일정이 아직 절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언할 수 없지만, 지금의 결과만 본다면 무리뉴 감독과 맨유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인상이다. 반면, 맨유와 ‘레드 더비’로 유명한 리버풀은 감독 한 명 바꿨을 뿐인데, EPL 출범(1992년) 이후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벌떼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제라드도 없고, 수아레즈도 떠나고 라이벌 팀보다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단을 이끌며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피치 위의 선수 전원이 벌떼처럼 움직이며 승리를 쌓는 모습은 올해 리버풀의 전망을 밝게 한다.

팀의 선수 사정과 스타일을 고려해 감독을 선임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름값이 보장하는 건 과거의 경력에 비추어 지급해야 할 돈의 액수가 높다는 사실을 빼면 별로 없다. 미래의 결과는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경기장 안팎의 온갖 변수를 감독과 감독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과 이들을 총괄하는 프런트가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달린 셈이다. 리더의 선임에는 따져야 할 게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EPL 감독 선임 문제로 글을 연 건 실은 한국 프로야구(Korea Baseball Organization)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두산 베어스의 우승과 함께 스토브 리그에 돌입한 KBO는 이미 10개 구단의 감독 선임이 끝난 상태다. 두산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는 기존 감독이 내년에도 이끄는 것으로 결정 났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와 kt wiz는 신임 감독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

넥센은 파격적으로 프런트 출신의 장정석 감독을 사령탑으로 맞이했다. SK는 롯데의 제리 로이스터에 이어 KBO 역사상 두 번째 외국인 감독 트레이 힐만이 팀을 이끈다. 그리고 삼성과 kt는 각각 김한수와 김진욱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선임했다. 팀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넥센은 지도력이 증명된 감독을 거액 주고 데려오기보다 돈을 아끼면서 좋게는 도전, 시쳇말로는 도박하는 쪽을 택했다.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 매년 성적이 내리막길인 SK는 쇄신 차원에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며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지만큼은 확실하게 표명했다.

삼성은 류중일 감독이 유임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한수 전 타격코치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2011년 삼성 지휘봉을 잡고 2015년까지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의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둔 류중일 감독을 이렇게 내칠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신생팀 kt를 팀 창단부터 이끌던 조범현 감독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에도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전 두산을 이끌었던 김진욱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줬다.

이들 팀의 감독 선택이 옳았는지는 내년 시즌의 성적이 말해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보다 의문이 앞선다. 넥센은 파격적인 감독 선임도 물론이거니와 김동우 신임 배터리 코치는 전력분석팀장 출신으로 또한 모험적인 선택이다. 코치진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맡을 것이라는 예상을 깬 중용(重用)이라 벌써 내년 시즌 넥센의 성적을 꼴찌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주요 선수가 대거 빠져나간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한 염경엽 감독을 떠나보낸 넥센 프런트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반응이기도 하다.

삼성의 감독 선택은 또 다른 면에서 반감에 직면한 상태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살펴봐도 류중일 감독 만한 업적을 이룬 사령탑은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 취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1986∼1989년까지 4연패를 달성한 김응룡 전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정규시즌 9위를 기록했다고 해서 올해를 제외하면 계약 기간 내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감독을 바로 내친다는 건 삼성 프런트가 사령탑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지도자의 권위라는 건 감독 스스로가 만들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보내주는 신뢰가 또한 밑거름이 된다.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 것이 SK나 kt처럼 약속한 계약 기간을 준수한 후 리그 결과에 따라 재신임을 묻거나 아니면 아쉽지만, ‘마이웨이’ 각자의 길을 가면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넥센과 삼성의 감독 선임 사례는 많은 씁쓸함을 남긴다. 선수단의 사정, 즉 스타일을 고려한 감독 선임도 아니고 전임 감독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차기 감독을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한국 프로야구의 프런트의 현주소를 가늠케 한다.

맨유의 레전드 중 한 명인 게리 네빌은 언론을 통해 올 시즌 맨유가 4위 안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무리뉴 감독을 경질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강하게 비쳤다. 아직 무리뉴가 자신의 베스트 팀을 구축하지 못했다며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맨유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팀 맨유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와 관계 없이, 지금까지의 성적과는 별개로 나는 네빌의 발언을 지지하는 쪽이다. 프로 스포츠는 성적으로 말하지만, 먼저 팬을 위해 존재한다.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는 것을 바라지만, 단 하나의 결과에 상관없이 성장해 가는 모습에 더 많은 감동을 한다.

프로야구를 포함해 한국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팀은 말로는 팬을 우선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성적에 기준을 맞춰 대부분을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팀의 프런트는 이미 지나간 업적을 기준으로 지도자를 꼽아 선수단을 만신창이로 만들기도 한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침해 방식의 훈련으로 과연 이것이 프로 스포츠에 합당한 것인지 팬들의 반발을 불렀을 정도다. 이것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스타일은 퇴행을 불러올 뿐이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에서 감독은 선수단을 조직하고 그에 맞는 전술을 구축, 좋은 성적을 거두는 임무에 앞서 팬들이 이해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팀의 존재 이유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를 전제로 팬들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말을 통해 전달되기도 하지만,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팬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우승하지 못한 것에 아쉬워해도 단순히 성적만을 위해 팀의 존재 이유를 해치는 결정에는 실망한다.

결국, 스타일은 역사다. 팀의 색깔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승만을 생각한다면 아직 팀과 궁합이 맞지 않는 무리뉴는 경질되는 것이 맞다. 맨유 왕조를 이끌었던 ‘퍼기 경’ 알렉스 퍼거슨도 1986년 감독 부임 초기에는 실망스러운 행보로 팬들의 비아냥을 듣기도, 경질 위기도 겪었다. 결과적으로 2013년까지 27년의 재임 동안 EPL 13회 우승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달성했다. 감독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아니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결과다. 이를 직접 경험한 맨유와 맨유의 팬들은 무리뉴의 실망스러운 행보에도 서두르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이 팀의 품격이고 팀의 리더를 대하는 태도이자 예의라는 생각이다. 팬들이 응원하는 팀에게 원하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도 퍼기 경처럼 장기간 팀을 이끌고 존경받을 수 있는 감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절실히 바란다.

 

ARENA
2016년 12월호

“리더가 바로 서야 팀이 바로 선다”에 대한 3개의 생각

  1. 진짜 무리뉴의 행보가 찾아보니 더 안 좋아졌네요 ㅠㅠ 정말 아쉽네요
    그래야 네빌의 발언이 더 빛났을텐데 안타깝네요
    연말인지도 실감이 안 나는 시국이지만 남은 한달 마무리잘하세요 평론가님^^

    1. 무리뉴가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ㅜㅜ 이승영님 한해 동안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준비 잘 하셔서 시험 잘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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