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동안 한국 극장가는 음악영화가 강세다. 별의별 음악영화가 다 쏟아지고 있다. <본 투 비 블루>도 음악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감미로운 사랑이 등장하고 그에 맞춰 음악이 화려한 포장지 역할을 하는 소위 아트버스터 계열의 음악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본 투 비 블루>는 트럼펫으로 유명한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를 다뤘다. 쳇 베이커의 전기영화이지만, 그의 평생을 두루 살피는 것이 아니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통하며 명성을 날렸다가 마약으로 몰락한 1960년대를 중심에 두고 그때 만난 연인 일레인(카르멘 에조고)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재기를 모색하는지 주목한다.
‘비포’ 시리즈를 제외하면 그동안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었던 에단 호크는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 역할을 맡아 인생 연기를 펼친다. 직접 트럼펫을 연주하고 무엇보다 쳇 베이커의 대표곡 중 하나인 ‘My Funny Valentain’을 부르기도 하는데 우와~ 목소리와 분위기가 시쳇말로 죽여준다.
그러니까, <본 투 비 블루>는 음악을 이해하고 재즈에 정통한 이들이 아니면 도달하기 힘든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를 연출한 이는 캐나다 출신의 로베르 뷔드로 감독이다. 그리고 음악을 감독한 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데이비드 브레이드이다. 이들은 <본 투 비 블루>가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을 찾았다.
로베르 뷔드로와 데이비드 브레이드가 함께 한 인터뷰 자리는 조화가 중요한 재즈 연주처럼 부드러우면서 잘 정돈된 느낌으로 진행됐다. 질문을 던지면 누구랄 것 없이 먼저 각자의 답변을 듣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더하는 식이었다. <본 투 비 블루>가 이뤄낸 성취는 상당 부분 로베르 뷔드로와 데이비드 브레이드의 협업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쳇 베이커의 죽음을 다룬 단편 <쳇 베이커의 죽음들 The Deaths of Chet Baker>을 2009년에 연출하셨죠. 특별히 쳇 베이커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로베르 뷔드로) 예전부터 쳇 베이커의 음악과 재즈의 팬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모순된 삶이 매력적이었어요. 오클라호마 농장 출신이었는데 나중에 LA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 되었죠. 쳇 베이커의 수수께끼 같은 매력과 성공과 실패를 오가면서도 재기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자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과 데이빗 브레이드 음악감독님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로베르 뷔드로) <드림 레코딩 Dream Recording>(2004)은 내가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찍은 단편입니다. 1950년대 재즈 신을 다룬 흑백영화인데요. 여기에 참여할 대중 뮤지션을 찾다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데이비드 브레이드를 만났어요. 데이비드 브레이드는 당시에 음악 학교를 졸업하고 밴드와 함께 첫 공연을 시작하던 중이었어요. 캐나다의 ‘글로벌 메일’이라는 신문에서 데이비드 브레이드의 공연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련한 얘기를 나눴죠.
(데이비드 브레이드) 로베르 뷔드로 감독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재즈에 관한 관심이 깊었어요. 무엇보다 진실하더군요. 직감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림 레코딩>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고 오래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승낙했어요.
(로베르 뷔드로) <드림 레코딩>을 마치고 나서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함께 일하자고 말을 해둔 상태였죠. <본 투 블루>는 영화의 성격상 뮤지션의 힘이 필요한 작품이었어요. 적절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안을 했고 데이비드 브레이드는 이번에도 오래 생각하지 않고 참여해줬죠. (웃음) 역시 호흡이 잘 맞더군요.
쳇 베이커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로베르 뷔드로) 쳇 베이커는 1988년에 사망했어요. 저는 그 이후에 접했어요. 원래는 밥 딜런을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관심이 재즈로 옮겨가면서 쳇 베이커를 알게 됐죠.
(데이비드 브레이드) 제가 처음 산 CD가 쳇 베이커 앨범이었어요. 쳇 베이커가 흰 셔츠를 입고 있는 커버가 너무 멋진 앨범이었죠. 수소문해서 흰 셔츠를 구해 입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어요. 앨범의 첫 트랙이 ‘오버 더 레인보우’인데요. <본 투 비 블루>에도 등장을 하죠. 저에게 <본 투 비 블루>는 너무 특별한 영화입니다. 쳇 베이커의 리드미컬하고 한편으로 멜랑콜리한 정서는 제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저에게 쳇 베이커는 한마디로 재즈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음악감독으로서 <본 투 비 블루>에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데이비드 브레이드) 영화음악은 이야기를 전개할 때 활용되는 중요한 수단이죠. 곡이 가지고 있는 무드나 가사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비언어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본 투 비 블루>에 사용한 음악을 선곡하고 나서 이걸 어떻게 다듬고 바꿔서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비전에 맞출지 고민했어요. 공연 실황에서 느낄 수 있는 라이브함보다는 이야기를 끌고 갈 때 도움이 되는 운반책의 역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에단 호크는 <본 투 비 블루>에 출연하기 이전에 ‘비포’ 시리즈를 연출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쳇 베이커 영화를 준비했다죠. 그와 같은 배경을 고려해서 에단 호크를 쳇 베이커 역할에 캐스팅했나요?
(로베르 뷔드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에단 호크를 쳇 베이커 역할로 생각했어요. 제안하자마자 응해줘서 기뻤습니다.
극 중 에단 호크는 실제로 노래도 부르고 트렘펫 연주도 해요.
(로베르 뷔드로) 노래는 뉴욕에서 보컬 코치에게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에단 호크가 워낙 특색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영화지만, 쳇 베이커의 연주와 노래를 재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리지널 하기를 바랐어요. 쳇 베이커의 음색과 상관없이 에단 호크의 특징을 잡아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요청했어요. 흉내가 아니라 에단 호크의 것으로 하되 쳇 베이커가 연상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드) 에단 호크는 촬영 전부터 8개월 동안 개인지도를 받았어요. 연주의 기본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본 투 비 블루>의 OST에 실제 연주자로 부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트렘펫은 굉장히 어려운 악기에요. 20년 정도 연습해야 겨우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인데요. 영화 속 대부분의 연주 장면은 전문 연주자의 것이고 에단 호크의 입 모양을 맞추는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다만, 극 중 목욕탕에서 트렘펫을 연주하는 부분은 에단 호크가 직접 했어요. 이상적인 재즈 연주는 오리지널에, 이를 연주하는 뮤지션의 색깔을 덧입히는 것인데요. 그걸 에단 호크가 해냈습니다.
우리가 재즈라고 할 때 먼저 떠올리는 건 오리지널에 얽매이지 않는 ‘즉흥성’인데요. 재즈와 다르게 영화는 규모가 크다 보니 사전에 미리 계획하는 게 중요하죠. 그 때문에 재즈의 즉흥성을 영화적으로 살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로베르 뷔드로) <본 투 비 블루>가 재즈의 톤을 가지고 있기를 바랐어요.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본 투 비 블루>를 전형적인 전기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특정한 전기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프리프러덕션 단계에서 이미 음악 작업을 끝내놓은 상태였어요. 그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에 제가 원했던 톤을 음악을 통해 잡을 수 있었어요. 편집 단계에서도 특정한 무드에 맞추기 위해 녹음해놓은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질문 주신 즉흥성 부분은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에단 호크와 이 영화에 대해 상의를 많이 했어요. 그가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추가했어요. 그래서 영화에는 약간의 오버 밸런스의 느낌이 있는데 그것이 재즈의 즉흥성과 맞아 보였어요. 촬영의 경우, 특정한 숏보다는 핸드헬드로 자연스럽게 인물들을 따라가 달라고 요청했어요.
(데이비드 브레이드) <드림 레코딩> 당시 먼저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면 제가 거기에 맞춰 음악 작업을 했어요. <본 투 비 블루>는 촬영 전에 미리 음악을 선곡하고 녹음을 끝냈지만, 그 전에 감독님이 길이는 어떻고 포인트는 어디에 줘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의견을 주셨어요.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작업을 한 건 아니었지만, 감독님이 원하는 바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어요. 오히려 그런 작업 방식이 <본 투 비 블루>를 더욱 진짜 같은 분위기의 음악영화로 만들었어요.
영화의 도입부가 인상적이더군요. 쳇 베이커가 이탈리아 루카의 감옥에 있는 1960년대 장면을 컬러로, 쳇 베이커가 일레인과 사랑을 나누는 1950년대를 흑백영화로 촬영했어요. 쳇 베이커의 현재와 과거가 마치 꿈인지 현실인지,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사실적인지 몽환적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더군요. 그와 같은 방식이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열어놔서 감독과 관객이 함께 재즈를 연주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 같았요.
(로베르 뷔드로) 쳇 베이커가 이탈리아에 있던 1960년대 당시 이탈리아의 영화 관계자가 그에게 영화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그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실제로 찍었다면 어땠을까 상정해서 찰리 카우프먼(<아노말리사> <시네도키, 뉴욕> 연출 및 각본, <이터널 선샤인> <존 말코비치 되기> 기획 및 각본 등) 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본 투 블루>에 집어넣었어요. 그와 같은 부분이 재즈의 즉흥성에 부합하는 것 같아요.
마틴 스콜세지의 <분노의 주먹 Raging Bull>(1980)은 제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에단 호크와 이 영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사람의 전기영화이지만, 전형성을 탈피한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분노의 주먹>에서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 니로)는 젊은 여인 비키를 두고 동생인 조이(조 페시)와 일종의 삼각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에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본 투 비 블루>에서 쳇 베이커를 일레인과 그녀를 닮은 전 부인 제인(일레인을 연기한 카르멘 에조고의 1인 2역) 사이에 두고 삼각 구도를 만들어 이야기를 구성했죠.
1950년대를 흑백으로 가져간 건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크슨의 흑백 사진을 참조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의 사진은 1950년대 재즈 신의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고 있죠. 또한,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쿨한 인물이었어요. 그와 같은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과거는 흑백으로, 현재는 컬러로 가져가 스타일리쉬하게 만드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판단이었죠.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은 현재 데니스 루헤인 원작의 <Consumers>를 준비 중이시라고요?
(로베르 뷔드로) 몇 가지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Consumers>는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이고 범죄소설이에요. 1940년대 배경의 스파이 스릴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게 <본 투 비 블루>와는 연관이 있어 보이네요. 샬럿 베이더라고 카바레에서 노래하는 싱어인데 이중첩자입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은행강도 이야기도 제안을 받았어요. 무엇이 먼저 들어갈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드 음악감독님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데요. 영화음악 작업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데이비드 브레이드) <본 투 비 블루>를 하기 전까지 재즈는 언더그라운드 세계이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이 영화가 재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줬어요. 앞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해나갈 건데 재즈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단순화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대개 대중화라고 하면 단순화하는 것을 연상하는데 로베르 뷔드로 감독님이 <본 투 비 블루>를 통해 성취한 것처럼 재즈의 특징을 완벽하게 살리면서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NEXT plus
(2016.5.30)
클래식을 공부하는 저에게 재즈의 ‘멋짐’을 알게해준 영화인것같아요! ㅎㅎ 에단호크의 명연기두 빠뜨릴수 없구요!! (보이후드때부터 멋졌지만 이 영화를 통해 더 진가가 발휘된것 같구요^-^)
와~ 클래식 공부하시는군요 멋지세요 d^^b < 본 투 비 블루>가 더 남다르게 다가오셨겠네요 정말 에단 호크는 오랜만에 인생 연기 보여준 것 같습니다. 제가 기념으로 < 본 투 비 블루> 20자평 일러스트 올려두었습니다.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