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트만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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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트만이 우리 곁을 떠나 영화의 우주에서 별로 반짝인 지가 올해로 벌써 5년째입니다. ‘할리우드의 반골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2006년 11월 20일 80세의 나이로 타계해 전 세계의 영화팬들을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임은 갔어도 영화는 남아 이렇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처럼 로버트 알트만이 세계영화계에 미친 영향은 너르고 깊다 할 것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나름의 개성을 갖는 주요인물이 대규모로 등장해 그들 각자의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는 구조를 알트만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했고 존 카메론 미첼은 <숏버스>를 만들면서 “촬영 중 세트 위에서 즉흥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며 2002년 베를린 영화제와 2006년 아카데미 영화제는 그런 알트만의 공로를 기려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로버트 알트만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할리우드의 주류 시스템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면서도 미국영화의 중심에서 인디영화의 정신을 주입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초기작 <매쉬>(1970)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군의 지휘 체계를 유린하는 외과 전문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미국이 주도한 전쟁을 조롱하며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또한 <플레이어>(1992)와 <패션쇼>(1995)를 통해 미국 대중문화의 선봉에서 화려함을 뽐내는 패션계와 할리우드의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숏컷>(1993)에서는 아홉 쌍의 부부를 등장시켜 미국 중산층의 허약한 내면을 날카롭게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특유의 반골기질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트만은 생전에 다섯 번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하는 명예 아닌 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미국 사회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로버트 알트만을 통해 ‘아메리칸 뉴 시네마’라는 새로운 영화 사조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발흥하여 권불십년으로 마감한 아메리칸 뉴 시네마였지만 이후에도 로버트 알트만의 경력의 창끝은 날카롭게 날을 벼르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해 미국영화의 찬란한 유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처럼 데뷔작 <범죄자들>(1957)에서부터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까지 옆길로 새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고 유지해온 감독은 ‘사회파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시드니 루멧을 제외하고는 그가 유일할 것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준비한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 프로그램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의 5주년 기일을 기념해 기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여섯 편을 추린  목록이지만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작품을 기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다시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영화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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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Altman Special
(2011.11.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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