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에서 퓌센(Fussen)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 창밖으로 지나가는 ‘로맨틱 가도'(Romantische Strasse)를 바라보면서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도로 주변으로 중세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구(舊)시가지부터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고성(古城)들, 그리고 풍경 화가의 그림에서나 봤음직한 울창한 숲까지. ’캬~ 낭만 도로라니 이름 한 번 죽이는 걸‘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얼굴 표정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껍질보다 더하기로 악명(?) 높은 독일인들이 프랑스 파리에나 어울릴법한 이름을 지을 수 있다니 그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개그본능이 발동한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옆 좌석에 우연히 동석하게 된, 독일여행이 처음이라는 한국인 대학생에게 알은 척을 했다. “로맨틱한 도로를 이렇게 남자 둘이 앉아서 가게 되다니 우리도 참 낭만이라고는 쥐뿔도 없죠. 하하하” 재치 넘치는 나의 개그에 호탕하게 웃을 줄 알았던 대학생이 글쎄 피식 웃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녀석이 외국에 나와 있다고 고새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건가?’ 물론 아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로맨틱 가도의 로맨틱은 ‘낭만적’이 아니라 ‘로마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Romantische의 Romantis를 독일어의 낭만으로 오독하고만 나의 이 짧은 지식이란. (;–;)
나보다 10살은 족히 어려보이는 대학생은 어린 아이 대하듯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독일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면서 독일 관광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로맨틱 가도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뷔르츠부르크(Wurzburg)부터 남쪽의 퓌센까지 약 400km에 이르는 도로를 일컫는 말이란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쭉 더 내려가 스위스의 알프스를 넘으면 이탈리아의 로마까지 갈 수 있다고 하여 로맨틱 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아이고, 한 수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이참에 로맨틱 가도는 어떻게 조성됐는지도 알려주시죠. (^^;)
원래 이곳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2차 대전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대학생의 얘기였다. 미영 연합군의 공세에 시달리던 독일의 나치가 위기 타파를 위해 로맨틱 가도를 이용했다는 것. 미영 연합군을 로맨틱 가도로 유인해 이들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있을 동안 나치군(軍)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고 한다. 이후 패전국이 된 독일은 치욕스러운 역사를 지우기 위해 로맨틱 가도를 관광지로 조성했다는 것이 그가 알려준 유래의 정체였다. 독일 정부는 이곳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키우기 위해 옛 모습을 잃지 않도록 체계적인 관리를 해왔고 그런 과정을 거쳐 로맨틱가도의 관광지로 거듭난 곳이 무려 32군데란다.
그런데 독일 여행이 처음이라면서 어쩜 그리 로맨틱 가도에 대해서 전문가 뺨 칠 정도이신가요. 그는 한 장의 지도를 내게 내밀었다. 여행 안내소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로맨틱 가도의 지도였다. 나도 물론 가지고 있었다. 온통 영어로 설명이 되어있어 지도만 보고 관심을 끊었던 것인데 역시 요즘 대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뛰어나다니까. 이왕 없는 지식 ‘뽀록’난 김에 나 같은 사람이 갈만한 로맨틱 가도의 관광지가 어디냐고 그에게 물어봤다. 어린 대학생은 잠시간 지도의 설명을 살펴보더니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에 가볼 것을 강력 추천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면 한글로 된 나의 가이드북에도 자세히 설명돼있었다. 독일의 가장 미스터리한 왕으로 평가받는 루트비히 2세가 기획한 성으로, 평생토록 집착해왔던 백조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접목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이었다. 녀석 나의 귀족적인 풍모를 언제 또 알아보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권유하다니, 요즘 대학생들은 참 예의가 발라. 그는 내 속마음을 꿰뚫어봤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디즈니랜드의 성 모양이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모델로 한 것이라며 내 정신연령이 디즈니에 가까운 것 같아 추천해줬다나. 나는 퓌센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만 중간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ㅜㅜ)

현대자동차 사보
(2009.1.4)
저는 로만틱 가도는 못가봤지만,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가봤답니다. 하필 공사중이어서 1/3 가량이 가려져 있었지만…ㅜ.ㅜ 디즈니랜드 성을 모르더라도 숲 속에 하얗게 서 있는 성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귀족적 풍모를 간직하고 한 번 보러 가보시지요~^^ 거기까지 가서 퓌센까지 못가고 도중하차하시다니 아까운데요.
이게 사실은 좀 코믹하게 써보겠다고 거짓말을 섞은 거거든요. 부끄럽슴돠. ^^; 실제로 중간에 내린 건 아니고요. 퓌센까지 가서 1박 2일 지내면서 노이슈반슈타인 성 구경했어요. 나름 가이드의 설명까지 들어가면서 말이죠. 제가 갔을 때는 공사중이 아니었거든요. 물론 무슨 소리인지는 전혀 이해 못했지만 말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