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애니웨이>(Laurence Any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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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진서(<올드보이><영화판> 등)가 <하트비트>(2010)를 연출한 자비에 돌란에 대해 평가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는 윤진서는 자신보다 어린 1989년생의 자비에 돌란이 “1989년생의 입장에서 사랑을 표현한 것이 그렇게 좋았다”며 애정을 드러낸 것이다. 1974년생인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평가였지만 윤진서가 특별히 언급한 자비에 돌란의 영화만큼은 궁금했다.

<로렌스 애니웨이>(2012)는 <나는 엄마를 죽였다>(2009) <하트비트>에 이은 자비에 돌란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그는 이미 네 번째 작품 <탐 엣 더 팜>(2013)을 발표했다.) 이 영화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로렌스(멜빌 푸포)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 프레드(수잔 클레망)의 사랑을 다룬다. 그러니 이 사랑, 참 쉽지가 않다. 로렌스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자신의 성적 취향을 두고 딴죽을 거는 세상이 야속하고 프레드 입장에서는 남자라 알고 사랑해온 로렌스가 별안간 여자가 되고 싶다 하니 그 충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3시간에 달하는 상영 시간 내내 로렌스와 프레드가 사랑했다 이별하기를 반복하는 상황은 그런 이들의 혼란함을 반영한다. 다만 ‘어찌됐듯(anyways) 로렌스(laurence)’라고 강조하는 영화의 제목에서 보듯 그와 같은 주인공들의 혼란은 결국 로렌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결말로 수렴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제는 라틴어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의 ‘에케 호모(ecce homo)’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극 중 로렌스가 여장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가 학교로부터 해고를 당하자 떠나기 전 그가 직접 칠판에 적는 말이다.

이를 좀 더 발전시켜 볼까. 빈의 미술사 박물관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동일한 제목으로 각각 타치아노와 귀도 레니가 그린 작품이 있다. 두 그림은 모두 ‘가시 면류관을 쓰고 박해받는 예수'(이 또한 에케 호모라고 말한다.)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확실히 자비에 돌란은 성적 정체성으로 공격받는 로렌스의 처지를 은유하기 위해 에케 호모가 가진 여러 레이어를 활용한 혐의가 짙다. 로렌스와 프레드가 함께 뒹굴던 침대 위에 붙은 ‘모나리자’의 활용법도 마찬가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그림 속 여인이 누구인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이에 자비에 돌란은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작품 그 자체로 인정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메시지로 로렌스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을 적극 활용하는 영화의 미장센은 자비에 돌란의 개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직접적인 인용이 아니더라도 <로렌스 애니웨이>는 눈에 띄는 미술적 효과로 관객을 매혹한다. 로렌스와 프레드가 입는 옷들은 욕망이 흘러넘치듯 원색이 압도하며 카메라의 구도 역시 한 편의 미술작품처럼, 특히 에케 호모 그림의 정면 숏에서 가져온 듯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로렌스의 비밀을 눈치 채고 떠났던 프레드가 오랜만에 그를 조우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색색의 옷들이 그들 위로 비처럼 내리는 장면(사진)에서는 자비에 돌란의 감각적인 연출력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가슴보다는 눈을 더 현혹하는 이 영화의 화면을 응시하다보면 ‘과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야기상의 특별함은 발견할 수 없지만 대신 어릴 때부터 각종 문화를 섭렵해온 자비에 돌란(4살 때부터 TV에 출연했으며 현재도 연기자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이 갖가지 은유의 미장센과 미술을 통해 개성을 과시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이 윤진서가 말한 1989년생의 시선 혹은 입장에서 바라본 사랑인 걸까. 잘 모르겠지만 <로렌스 애니웨이>는 이제 고작 24살인 청년이 만들 법한 영화라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싶어진다.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지만 소수자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이를 자신의 색깔로 연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것. 이것이 청년의 영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자비에 돌란이 19살의 나이에 연출 데뷔작 <나는 엄마를 죽였다>를 발표,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상’을 비롯해 3관왕을 수상하자 언론은 그를 천재감독이라고 추켜세웠다. 개인적으로 호들갑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미완의 대기’ 자비에 돌란에게는 그 나이 대에만 보여줄 수 있는 에너지가 충만하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그런 자비에 돌란의 넘치는 개성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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