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신수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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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원 감독의 이력은 특이하다. 중학교에서 10년 넘게 사회를 가르친 교사 출신이고 <날마다 자라는 느낌표>(1991)라는 청소년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갖은 계기도 독특하다.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세계사 수업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진행할까 고민하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가르치길 1년 여. 활동사진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고 34세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사탕보다 달콤한>(2002) <면도를 하다>(2003) 두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레인보우>는 신수원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자전적인 내용을 다뤘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창작인가?
극중 지완이 선생을 했고, 아들이 있고, 영화감독 준비를 몇 년 했고, 그 과정에서 인디밴드를 만난다는 기본적인 스토리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인물 구성에 있어서는 살을 붙인다든가 캐릭터를 가공한 부분도 많다. 예컨대, 지완은 나와 엉뚱한 면이 닮긴 했지만 학교를 그만 둔 연도는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이 작품 전까지 내 얘기를 시나리오로 잘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 물론 자기반영적인 인물이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를 이야기 삼아 출발한 적은 없다. <레인보우>의 시나리오를 돌릴 때, ‘왜 이런 영화 만드나?’, ‘결국 ‘자뻑’영화 아니냐?‘ 그런 얘기도 들었다. 사실 되게 걱정했다. 그렇지만 영화라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영상원 다닐 때 홍상수 감독님이 1년간 지도교수였다. 당시에 “감독이란 자신을 파는 사람이다. 자신을 제대로 팔지 않으면 아무도 설득 시킬 수가 없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 <레인보우>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더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레인보우>를 시작하기 전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졌다. 그러고 나서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했다. 촬영에 들어간 영화만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엎어진 영화도 괜찮겠다 싶었다. 게다가 그 전에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찍어놓은 영상도 꽤 있었다. 거기에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캐스팅해서 음악영화를 준비하는 감독 이야기를 섞어보자 했다. 극영화 형식에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접목해 재밌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구성안을 썼다. 그런데 쓰다 보니 극영화로 찍어야 할 분량이 더 많게 됐다. 이럴 거면 차라리 시나리오를 쓰자. 그래서 극영화 형식으로 바꾸고 인물 구성도 변화를 줘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의 어려움을 말하는 작품인줄 알았더니 ‘인간’을 말하는 작품이더라. 그래서 영화사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시나리오를 심사받는 과정에서 지완이 무참히 깨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다.  
화면 구성도 일부러 그렇게 의도했다. 카메라 위치도 테이블 한 가운데 놓인 모래시계를 기준으로 그 반대편 상석에 지완을, 양 편에 프로듀서와 관계자를 배치했다. 일종의 역설적인 의미인데 감독이 상석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지완이 자신만만하게 회의실에 들어가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 아니지 않나. 그런 미장센을 통해 의미를 내포했다. 그날 모래시계를 두고 지완을 앵글로 잡았을 때 ‘한 장면 나왔어!’ 감독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더라. (웃음)

회의실에서 프로듀서와 지완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클리셰를 따르라, 따르지 못 하겠다, 로 요약이 된다. 그러니까, 결국 <레인보우>는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영화다. 
그 의도가 있었다. 여러 장르의 혼합도 그렇고 기승전결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승전결이나 클리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의 톤이 뭐냐? 위험하다’라는 얘기가 많았다. 코미디도 있지만 심각하기도 하고. 또 음악이 있는데다가 다큐멘터리 장면도 끼어든다. 특히 다큐멘터리 장면은 이전에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기 전에 취재용으로 막 찍어놓았던 필름을 쓰겠다고 내가 고집을 피웠다. 촬영감독님은 오랫동안 동의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현장의 생생함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근데 나도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야기다. 형식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만 확실하면 된다고 정리했다.  

영화 완성 후 국내외 영화제에 초정을 받았고 전주영화제에서는 ‘한국 장편 경쟁’ 부문에서 JJ-STAR상을, 도쿄영화제에서는 ‘아시아의 바람’ 부문 최우수 아시아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전주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의 평이 ‘장르의 경계가 없고 클리셰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감독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진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색다른 스타일로 연출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더라.

처음부터 제목이 ‘레인보우’이었나?
그렇다. 음악을 다루는 영화인데 판타지를 주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빨주노초파남보’와 맥락이 통하는 것 같아 그렇게 제목을 지은 거다.

영문제목은 <Passerby #3>, 즉 ‘행인3’이다. 한국어 제목보다 극중 내용에 더 어울리는 제목으로 보인다. 
나 역시도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행인3’ 쪽으로 기울더라. (웃음) 편집실에서 제목 자막 넣어야 할 때 ‘레인보우‘로 할까, ’행인3‘으로 할까 무지 갈등했다. 결국 영문제목만 ’행인3‘으로 가자고 했다. 왜 그랬냐면, 극중에서 <레인보우> 시나리오는 폐기가 되는데 이 영화는 지금 세상에 실제로 나와 있는 거잖나. 그걸 노린 나의 야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행인3‘이 맞나 고민한다. 외국 관객들이 이 제목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주제곡이자 엔딩곡 제목도 ‘행인3’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음악감독과 작업했다. 단편영화 만들 때는 내가 먼저 선곡하고 후에 허락받아서 영화에 붙였다. <레인보우>도 초반에 음악감독님이 빠져서 그런 방식이었다. 중간에 음악감독님을 구하는 게 힘들지 않나. <낯선 여행>이란 곡을 이미 에브리 싱글데이의 문성남에게 허락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이라 이번에도 만났다. 그 참에 엔딩곡이 필요한데 내가 준비해간 가사와 맞는 곡이 있냐고 물었다. 옛날에 습작처럼 썼던,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 묵혀뒀던 게 있다며 8곡을 주었다. (웃음) 2개를 골랐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행인3’이다. 그런데 내가 준 가사가 곡과 잘 맞지 않아 함께 수정을 했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음악감독까지 맡아달라고 했다. 

극중 지완의 아들로 출연하는 시영 역의 백소명은 2007년 SBS의 <스타킹>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초등학교 밴드 ‘페네키’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다.
시영 역을 캐스팅할 때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실제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 연주를 못하면 카메라 잡기가 너무 힘들다. 또 하나는, 변성기여야 한다. 근데 그런 연기자가 없다. 한쪽은 되지만 한쪽이 안 된다. 고민 중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백소명을 찾아냈다. 수소문 끝에 직접 만나보니 내가 머릿속에 생각한 이미지와 맞아 떨어졌다. 연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공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겁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워낙 잘 치는데 극중에서는 못 치는 걸로 설정된 까닭에 조금 힘들어 하더라. 영화가 처음이라 촬영 초반에는 긴장을 하더니 놀게 해주는 분위기로 풀어주니까 나중에는 최소한의 사인만 줘도 잘 했다.

<레인보우>는 이처럼 음악이 여러 모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 때문에 어두울 수도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밝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진가가 느껴진다.
그걸 장치로 쓴 게 사실이다. 너무 어둡게 가는 걸 내가 싫어한다. 물론 어두운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긴 한데 이 영화만큼은 그렇게 풀고 싶지 않았다.

사진제공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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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레인보우> 신수원 감독”

  1. 아줌마 어디가냐며 정인기씨한테 뺨 맞는 장면에서 저는 막 울컥해서 엉엉 울었어요. 왠지 그 뺨 제가 맞은 것 같고 감정이입이 너무 되서 그랬는지…..ㅡ,.ㅡ;;;;

    1. 그 다음 장면에 아줌마 뺨이 막 부어있잖아요. 전 실제로 맞아서 저렇게 됐나보다 했는데 그거 입에 뭘 넣은 거래요. 재미있는 건 실제 다친 사람은 정인기 아저씨였데요. 키가 안 맞아 잘못 때려서 손이 삐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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