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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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상을 받았다. ‘드디어’라는 부사를 뺀 이유가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니어서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05년 <에비에이터>(2004)와 2014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에 이은 세 번째 수상이다.

디카프리오의 이번 골든글로브 수상은 유독 주목받고 있다.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의 연기상 수상은 아카데미의 오스카  트로피로 직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디카프리오가 다가올 아카데미 남우 주연 부문의 수상자로 유력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은 생애 최초가 된다.

휴 글래스, 너는 내 운명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가 맡은 역할은 휴 글래스다. 휴 글래스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최고 사냥꾼으로 평가받는 실재 인물이다. 영화는 휴 글래스가 모피 회사를 위해 일하다 회색곰의 습격을 받고 사지를 헤매던 중 벌어지는 사연에 주목한다.

숨만 겨우 붙은 휴 글래스를 돌보기 위해 동료와 아들이 곁에 머문다. 동료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지금의 상황이 불만스럽다. 어서 빨리 모피를 회사에 전달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휴 글래스 때문에 시간이 마냥 지체되는 데다가 언제 인디언이 닥칠지 알 수 없어 걱정스러운 것이다.

도망갈 기회만 엿보던 존 피츠제럴드는 휴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고 휴 글래스마저 눈보라가 심한 산 중 흙 속에 묻어둔 채 모피와 식량만 가지고 사라진다. 아들을 죽인 존 피츠제럴드를 향한 복수심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휴 글래스의 생존 의지를 불태운다. 휴 글래스는 부상한 몸으로 존 피츠제럴드를 쫓기 시작한다.

<레버넌트>의 연출자는 지난해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다. <버드맨> 연출 전부터 휴 글래스의 이야기에 눈독을 들였던 이냐리투는 “<레버넌트>는 5년 동안 나의 꿈이었다. 육체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 의지하게 되는 모피 사냥꾼들의 삶을 파헤치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모피 사냥꾼들의 처절한 생활과 극한에 부딪힌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고자 했던 이냐리투는 당시 미개척 지역에서 겪었을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했다. 19세기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혹독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5년 가까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의 가장 원시적인 숲을 찾아 헤매 100여 군데의 로케이션을 확보, 극사실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그 말인즉, 출연하는 배우들은 ‘개고생’을 각오해야만 했다.

디카프리오는 <레버넌트>의 캐스팅 제의를 받기 전 대니 보일 연출의 전기영화 <스티브 잡스>의 출연을 고려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디카프리오는 <레버넌트>의 출연이 영화 팬들로 하여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거라 판단했다. 그 자신의 고생 따위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까이꺼’ 포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굳은 결심에도 불구, 촬영 현장의 기후 조건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는 카메라가 작동을 멈출 정도였고 한 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2m가량 쌓여 촬영이 중단되기 일쑤였다. 실제 회색곰이 출몰해 덮치지는 않을까 서슬 퍼런 환경에서 디카프리오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맨몸으로 눈 위를 기는가 하면 인디언의 공격을 피한다는 설정상 강 속에 뛰어드는 연기도 마다치 않았다.

그 외에도, 타고 가던 말이 추락사하자 배를 갈라 내장을 다 끄집어내 그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고 어떻게든 살아서 존 피츠제랄드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물소의 생간을 실제로 뜯어 먹는 등 휴 글래스로 빙의한 디카프리오의 고생담은 이 지면이 부족하다. “평생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만한 장면을 30~40컷은 꼽을 수 있다. <레버넌트>의 좋은 점은 그 시련이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우리의 고통을 질료 삼아 걸작을 만들었다.”

오스카, 너를 내 손안에

<레버넌트>가 걸작이라면 이 영화에서의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최고일까. 최고라고 꼽을 만한 그의 연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마약 때문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해 침을 질질 흘리는 타락한 주식 중매인 역으로,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의 흑인 노예를 괴롭히는 백인 지주 역할로, <제이. 에드가>(2011)의 악질 정보국장 이미지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마마보이이자 동성애자였던 에드가 후버로 출연, 꽃미남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연기를 펼쳐 찬사를 끌어냈다.

휴 글래스 연기로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뛰어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디카프리오를 외면해온 아카데미를 향한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레버넌트>에서의 디카프리오 연기는 ‘이렇게까지 고생했는데 아카데미 너희가 상 안 주면 직무유기지’ 시위하는 것만 같다. <레버넌트>로 비유하자면, 여러 차례 후보로만 지명했던 아카데미를 향해 오랜 시간 무덤에 갇혀 있었던 최고 배우의 자존심을 끄집어내 이번만큼은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겠다는 디카프리오의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것이다.

일찍이 <디스 보이즈 라이프>(1993)에서 디카프리오(1974년 생)와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 로버트 드 니로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 아이한테는 범상치 않은 뭔가가 있어. 언제 한 번 같이 작업해봐” 드 니로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은 디카프리오가 이듬해 출연한 <길버트 그레이프>(1994)로 증명됐다. 디카프리오는 지적 장애를 가진 극 중 조니 뎁의 남동생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라 아카데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꽤 이른 나이에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골든 글로브와 다르게 디카프리오는 유독 아카데미와는 수상 인연이 없었다. <에비에이터>와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까지, 네 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혹자는 <타이타닉>(1997) <로미오와 줄리엣>(1996)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의 앳되고 뽀얀 외모가 관객에게 워낙 호감을 산 탓에 뛰어난 연기력이 묻혔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레버넌트>는 흐르는 물을 역행해 동물 사냥에 여념이 없는 휴 글래스를 비추며 시작한다. 산속의 동물들을 사냥하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휴 글래스의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와 상관없이, 디카프리오의 배우 활동에 대입하면 연기 대신 외모로만 평가해온 세간의 편견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미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복수를 마친 휴 글래스의 시선에 들어온 물의 흐름을 카메라가 그대로 따라가는 장면이다. 인간 본성상 새끼 잃은 아비의 복수는 자연의 이치와 다름 없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수상은?

골든 글로브는 드라마와 코미디 부문을 나눠 수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드라마 부문의 남우 주연상 수상자는 2012년을 제외(드라마 부문은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 코미디 부문은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하고는 모두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다. 2015년의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드라마 부문은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였다. (코미디 부문은 <마션>의 맷 데이먼이 받았다!) 그러니까, 2016년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드디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받을 차례다. 그게 순리다.

 

시사저널
(2016.1.16)

4 thoughts on “<레버넌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 평론가님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레버넌트 아직 못봤는데 영화도 수상도 기대가 되네요.
    끝에서 두 번째 문단 중 ‘새끼 잃은 아버의 복수는’ 부분이 아비의? 아버지의? 복수인지 궁금해서 댓글 남겨봅니다. 느낌이 살짝 다를 것 같아서요 ㅎ
    (진심, 오타 악플은 아닙니다 +_+)

    1. 안녕하세요 김혜란님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비로 쓴다는 게 아버가 됐네요 ^^;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1. 메일을 드리고 싶은데 이메일 주소를 제 메일에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제 주소는 댓글 내용에 다시 안남겨도 보이시는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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