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이스>에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뉴스가 뜨자 기뻐했던 게 나뿐이었을까. 전 세계의 남성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단순히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이 다름 아닌 린다 러브레이스였기 때문이다. 린다 러브레이스가 누구이기에?
린다 러브레이스는 전설의 포르노 스타다. 출연한 포르노 영화는 단 한 편. <목구멍 깊숙이 Deep Throat>라는 작품이다. 평소 성생활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자신의 성감대가 목구멍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는 여자의 사연을 다뤘다. 1972년에 미국에서 개봉했던 작품인데 지금까지 무려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극장 상영이 이뤄지고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포르노 영화에 당시 23세이던 러브레이스(1949~2002)가 출연을 했으니 그 시절 관객들이 받았을 충격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린다 러브레이스의 전기영화 <러브레이스>에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한 것 역시 이에 버금갈 만 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느껴질 만한 것이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러브레이스>에 출연하기 전까지 건강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청춘스타의 지위를 누려왔다. <맘마미아!>(2008)에서는 엄마는 하나, 아빠는 셋인 딸로 출연, 씩씩하게 아빠를 찾아나서는 모습을 선보였고, <레미제라블>(2012)에서는 장발장의 의붓딸 코제트 역으로 등장, 그녀 특유의 사랑스럽고 애교 넘치는 매력으로 남성 관객들에게 어필해왔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러브레이스>의 출연은 안전한 청춘스타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좀 더 실력 있는 배우로 인정받고 싶다는 도전에 다름 아니었다. “마냥 순진하고 청순한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 역할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특정한 장르와 이미지에 저를 가두는 대신 도전을 해보고 싶어 <러브레이스>를 선택했어요. 제 또래의 많은 여배우들이 이 영화에 출연하는 걸 두려워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전 더욱 이 역할을 맡고 싶었어요.”
그녀의 말처럼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러브레이스>에서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파격적인 연기로 관객을 영화 내내 놀래킨다. 팬들이 가장 많이 기대했을법한 노출 연기라면, 가슴 노출은 기본이고 빈번한 베드신 장면까지 등장한다. 여배우라면 좀체 출연 결정이 쉽지 않았을 종류의 영화를 통해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그녀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제가 맡은 역이 포르노 스타였기 때문에 당연히 노출이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겁이 나진 않았어요.”
사실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같이 미모와 몸매가 출중한 여배우는 유혹에 대한 노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는 외모가 거액으로 환원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여배우라면 의례히 경험해야 할 통과의례 같은 거다. 예컨대, <러브레이스>에서 린다 러브레이스의 어머니로 출연한 샤론 스톤은 오랜 무명 시절 끝에 헤어 누드 의심을 샀던 <원초적 본능>(1992)에서의 연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러브레이스>에서는 청교도적 가치관에 충실한 보수주의자 역할을 맡았다.)
물론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젊은 시절의 샤론 스톤과는 좀 다른 경우이기는 하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굳이 노출 연기가 없더라도 앞으로 스타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배우다. 그럴 정도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던 터였지만 그녀에게는 좀 더 특별한 경험이 필요했다. “전 항상 실존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의 인생으로 파고들어서 완전히 동화된 연기를 펼쳐 보이고 싶었죠.”
그럴 정도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배우로서 변화에 대한 욕망이 절실했다. 다시 말해, 그녀에게 <러브레이스>의 출연은 단순히 자신의 벗은 몸을 전시하는 파격에만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러브레이스>는 린다 러브레이스의 화려한 포르노 스타 이면의 충격적 진실을 담은 자서전 <호된 시련 Ordeal>이 원작이다. 린다 러브레이스가 <목구멍 깊숙이>에 출연했던 건 돈이 필요했던 남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원치 않았던 영화, 그것도 옷을 벗고 민망한 성행위를 연기 해야만 했던 린다 러브레이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러브레이스>에 임하면서 걱정했던 부분은 노출이 아니었다. 오히려 린다 러브레이스가 겪은 모든 일에 공감하고 이를 책임감 있게 연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나 그녀의 필모그래프에서 처음 연기하는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린다 러브레이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기울인 노력만큼 영화의 성과가 그리 뛰어난 것만은 아니다. 린다 러브레이스가 자신의 포르노 경력이 강제적이었음을 고백한 후 반(反)포르노 운동가로 활동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실존 인물 대신 역설적이게도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더 눈에 들어온다. 예쁘장한 배우가 펼친 워낙 파격적인 연기였기에 극 중 린다 러브레이스의 삶을 잡아먹은 형국이랄까. 거꾸로 생각하면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강력한 스타라는 얘기도 된다. <러브레이스>에서의 연기도 좋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변화하고 성장한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저널
NO. 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