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프랑스 남서부 작은 마을. 18세 청년 라콤 루시앙(피에르 블레이즈)은 집을 떠나는 신세가 된다. 조국 독립을 위해 지하 조직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감옥에 수감된 동안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살게 된 것. 도리어 독일 경찰의 하수인이 된 루시앙은 권력의 맛을 알게 되고 마을 주민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어느 날 루시앙은 소녀 ‘프랑스’를 만나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루이 말 감독의 <라콤 루시앙>은 ‘이상한’ 성장영화다. 성장영화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낭만이나 희망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이 작품의 배경은 1944년. 당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 점령 하에 있던 반주권국가로, 루이 말 감독은 이 굴곡진 역사 위로 루시앙 개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국가에 대한 명분이나 의무감 같은 거대담론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환경에 따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특히 세상을 향한 반항심으로 가득한 18세 청년을 통해 상식과 금기를 뛰어넘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루이 말 감독은 주인공 루시앙을 순간에 반응하는 동물로 묘사한다. 총으로 새와 토끼를 쏘아 죽이고 심지어 맨손으로 닭의 목을 절단 내는 그의 앳된 얼굴에서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와 형을 따라 지하 조직에 가담하려 했다 거절당하자 곧바로 독일 경찰의 하수인이 되는 루시앙의 행동은 이성보다 본능이 우선하는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거기에 대고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루이 말 감독의 관심은 윤리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의식의 허위를 밝히는 데 있다. 하여 영화는 루시앙을 두고 옮고 그름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느냐고 의문의 뉘앙스를 던진다.

그런 의도는 관객의 예상과 달리 루시앙이 독일군을 살해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유대인 소녀 프랑스를 만나 사랑하게 된 후 그녀를 강제 수용하려는 독일군을 살해하는데 여기에는 이념이나 주의에 함몰되지 않는 루시앙 개인의 반응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전쟁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육하는 ‘이성적인’ 인간과 본능에 따라 새와 토끼 등을 죽이는 ‘동물적인’ 루시앙이 대비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바로 이 지점에서 루이 말 감독의 의문은 구체성을 띤다. 동일한 살육 행위지만 과연 인간의 행동은 정당하고 루시앙의 행동은 비인간적인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안 그래도, 루이 말 감독은 루시앙 역을 위해 비전문 배우 50여 명을 인터뷰 한 후 최종적으로 피에르 블레이즈를 캐스팅했다. 이에 더해 촬영 내내 그의 생각과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시나리오에 적용한 후 연출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라콤 루시앙>은 연출자의 주관적인 해석보다 과학자의 시선과 같은 객관적인 관찰력이 더욱 돋보이는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라콤 루시앙>은 성장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바라보면 인간 실험 보고서처럼 느껴질 정도다. 물론 루이 말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인간의 이성, 행동에 대해 고찰하는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피에르 블레이즈는 <라콤 루시앙> 촬영 이듬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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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416호
(200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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