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잇 온 미> 아이라 잭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잇 온 미>는 퀴어영화다. 동성애자인 아이라 잭슨 감독은 그 자신의 경험을 투영, 극 중 영화감독 에릭(투레 힌드하르트)과 출판사 변호사 폴(재커리 부스)의 만남과 헤어짐을 10년의 시간동안에 잡아낸다. 남자끼리의 사랑이라는 점이 이 영화를 퀴어라는 장르에 묶어놓지만 <라잇 온 미>가 보여주는 건 동성애와 이성애로 굳이 구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의 보편성이다.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 내내 아이라 잭스 감독도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사랑이 무어냐고? 아이라 잭스 감독은 행복이란다.

감독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겼다.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 아주 격정적이면서 드라마틱한 10년의 연애를 끝내던 마지막 날, 우리는 연애 초기에 걸었던 그리니치빌리지의 8번가를 우연히 다시 걷게 됐다. 나는 바로 첫 만남과 헤어짐 이 두 순간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에 대해서 영화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덴마크 배우인 투레 린드하르트를 캐스팅한 후 그와 작업을 하면서 내 자전적인 이야기의 틀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투레 린드하르트가 연기한 에릭은 감독님 본인이 투영된 캐릭터다. 감독님은 미국의 멤피스 출신인 걸로 알고 있다. 에릭을 덴마크 계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덴마크인 친구가 투레 린드하르트를 소개해 주었다. 그 친구는 투레에 대해서 덴마크에서 가장 재능 있으면서 용기 있는 배우라고 했다. 나는 투레와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사이가 됐다. 그렇게 투레를 캐스팅하기로 결심했고 이 영화를 만드는데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라잇 온 미>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극 중의 모습과 감정 등은 새로운 무언가, 이다. 과거 경험에서 시작했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과거 얘기를 현재 시점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들면서 세운 연출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항상 의도적으로 악한 캐릭터를 넣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을 사랑스럽게 만든다. 다만 내가 겪은 관계 속의 모순과 얽힘을 묘사하되 불완전하게 다룬다. 또한 영화 제작 기간 동안 사무실 벽면에 ‘지루하지 않게’라고 노트에 적었다. 이야말로 영화를 만들기 전 세웠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라잇 온 미>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시간을 파편화해 에릭과 폴의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극 중 에릭은 외모에 큰 변화가 없다. 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나?
삶에는 주기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30살 전후로 10년 정도는, 특히 육체적으로 사람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10년의 시간을 표현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도리어 그런 걸 표현하는 것이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라잇 온 미>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대단한 사건이나 삶의 굴곡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차분하게 기억의 파편을 보여준다.

그를 위해 배우들에게는 어떤 주문을 했나?
나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지 않는다. 물론 기본적으로 배우들에게 대본과 대사를 충분히 숙지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이 지나치게 준비를 많이 하거나 다른 배우의 대사를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과한 준비는 도리어 그들이 대사를 나눌 때 지나치게 익숙하거나 반대로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그래야 한다.

에릭의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에릭에 비해 폴의 캐릭터 묘사는 부분적으로 이뤄진다. 폴은 감독님이 과거에 사귀다가 헤어진 연인이 모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캐릭터 묘사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질문처럼 에릭의 시점을 따라간다. 그래서 나는 관객들이 영화 중간까지 폴에 대해서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폴이 약에 취하지 않았을 때 그가 새로워 보일 것이다. 폴은 갑자기 심도 깊게 자신의 고뇌를 바라보고 이해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이 때야 비로소 서로 얽힌 두 사람의 고뇌가 입체적으로 드러나고 결국에는 헤어질 준비가 된 이야기가 된다. 

<라잇 온 미>의 감각적인 장면들은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뉴욕의 매력적인 장소들, 감독님의 애인이면서 화가인 보리스 토레스의 그림들 등 말 그대로 사랑을 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리스의 홈페이지(www. boristorres.com)에 들어가면 더 많은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매우 개방적이고, 동시에 아주 연민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적당한 유머도 가지고 있다. 나는 관객들이 폴과 에릭 사이에 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보리스의 그림을 영화의 프롤로그에 배치했다. 

또한 감독님은 보리스를 모델로 극 중 이고르 캐릭터를 만들었다. 보리스 토레스가 직접 연기하는 것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신 미구엘 델 토로를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미구엘은 보리스가 가진 친절하며 따듯한 가슴, 그리고 개방적인 태도를 갖춘 사람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에릭과 폴의 관계를 어렵게 하지 않으면서 추가로 누군가를 더하자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5년 후에도 난 여전히 이고르(보리스)와 함께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모든 사랑은 전쟁이 아니라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사랑에 대한 철학이 현재 반려자인 보리스와 오랜 시간 사랑을 유지한 비결인가?
우리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비결이 있다. 첫 번째는 정직함이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감추도록 교육 받아왔기 때문에 특히 이 정직함은 많은 게이들에게 찾기 힘든 점이다. 하지만 보리스에게 그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두 사람 모두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이전 연인관계에서 볼 때 나 스스로 뿐만 아니라 전(前) 남자친구 역시 그러지 못했었다. 모든 말이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 두 번째 비결과 정직함이 함께 적용된다면 건강한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데 훨씬 수월하다고 본다.

그 때문인가, 영화는 에릭과 폴이 처음 만날 때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사랑의 굴곡을 다루지만 일관되게 홍조 띤 화면 색채로 보여준다.
색채가 풍부하면서도 활력 있는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마우리시오 차하리아스와 촬영기사 티미오스 바카타키스는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1973)와 <좋은 친구들>(1990)을 참고해서 보았다. 왜냐면, 비록 모든 캐릭터가 어두운 부분이 있지만 그것 자체로 영화가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심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색감은 열정이고 그것은 우리의 온전한 삶의 중심, 관계의 열정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느끼는지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색감을 선택해서 <라잇 온 미>에 적용했다.

<비열한 거리>와 <좋은 친구들>은 또한 뉴욕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했던 영화다. <라잇 온 미>도 배경이 뉴욕이다. 영화의 배경이 반드시 뉴욕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개인적으로 뉴욕에서 25년 넘게 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이 도시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장소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매우 가깝게 겪어왔던 세월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배경을 뉴욕으로 정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 삶과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영화를 찍을 장소가 내 삶과 거리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라잇 온 미>의 원제는 ‘내 곁에 있어줘 Keep the Lights On’이다. 감독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극 중 에릭과 폴, 현실의 감독님과 보리스, 그리고 감독님과 뉴욕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영화를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양가적으로 지니고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정직한 삶 속에 투영된 생활은 그 자체로 대단한 에너지라고 본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스스로가 어둠속에 숨어온 지난 몇 년 간의 세월과 그 경험에 지쳤기 때문이다. <라잇 온 미>는 이러한 의미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이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차기작은 <Love Is Strange>라는 작품이다. 뉴욕에서 함께 산 지 28년이 된 60~70대의 게이 부부 이야기다. 커플 중 한명이 직장을 잃자 그들은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결국 떨어져 살게 된다. 이 영화는 그들이 다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재결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러브스토리이고 여러 면에서 나와 보리스와 잠재적인 미래관계를 투영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몇 십 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고 계속해서 꽃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이전에 나는 영원한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가 <라잇 온 미>의 에릭과 이고르가 실제 맺어진다고 예상했겠는가.

사진제공 (주)레인보우팩토리

NEXT plus                                                                                                                                                 NO. 75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