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추구하는 사실주의는 단순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크 나이트>(2008)부터 두드러진 특징인데, 허구의 세트에서 벗어난 뉴욕과 시카고에서의 로케이션 촬영, 미국 군대의 첨단의 기술력에 바탕을 둔 배트맨 슈트와 무기 외에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미국의 현실 정치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은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파이더맨2>(2004, 생활고에 시달리며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피터 파커는 말하자면, 미국의 88만원 세대 슈퍼히어로가 아니던가!)와 <배트맨 비긴즈>(2005, 이하 ‘<비긴즈>’)를 필두로, 그 어느 장르보다 가장 예리하게 미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이하 ‘<라이즈>’)는 전작 <다크 나이트>보다 더 거대하고 노골적으로 미국의 현실에 밀착하는 쪽을 택한다. (관련기사: <다크 나이트> 오바마 나이트?) 왜 아니겠는가. 이 시리즈가 신화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오락의 성격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에 대해 탐구하는 슈퍼히어로물로 장르를 재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즈>의 주요한 설정을 살피는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현재의 미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창이 된다.
2012년 <라이즈>의 개봉일은 2012년 7월 20일. <다크 나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라이즈>의 개봉일 역시 공교롭게도 올해 11월 6일 치러지는 대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이다. <다크 나이트>의 전략을 감안하면 놀란이 이번에도 역시 미국의 현실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라이즈>의 극 중 시간적 배경은 <다크 나이트>에서 하비 덴트가 죽고,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꼽히는 배트맨이 고담에서 사라진 지 8년 후다.
8년이면 4년 임기의 재선이 가능한 미국 대통령이 최대한 집권할 수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 <다크 나이트> 때 오바마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꾸몄던 놀란 감독의 의도를 감안하면 <라이즈>의 8년이라는 기간은 꽤나 상징적이다. 놀란이 <다크 나이트>에서 염려했던 것과 달리 오바마의 대통령 수행이 그리 나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 고담은 하비 덴트 특별법을 발휘, 조직 폭력과 같은 강력 범죄에는 일말의 가석방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정책으로 평화를 유지해왔다.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대신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도둑질을 행하는 일명 ‘합법적인 도둑’이 고담을 공멸 직전으로 몰고 간다. 꼭 영화 속 설정만이 아니다. 예컨대, 오바마의 미국도 대외적으로는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월가에서 촉발된 금융권의 탐욕으로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그 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8년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웨인가의 대저택에서 칩거하던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슈트를 다시금 끄집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베인(혹은 뉴욕) 현재의 미국은 월가(그렇다. 이번 영화의 주요한 배경은 뉴욕이다!)의 탐욕으로 비롯된 경제위기와 이에 아랑곳 않고 여전히 국민들의 세금으로 돈놀이를 벌이고 있는 금융기업들의 모럴헤저드로 빠르게 강대국의 지위를 잃어가는 중이다. 고담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총격전의 배경이 다름 아닌 월가의 증권거래소라는 사실은 <라이즈>의 바탕이 되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안 그래도 미국 시민들의 혈세로 호가호위했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되는 증권사 직원이 증권거래소를 습격한 베인(톰 하디)에게 변명이라며 내뱉는 말은 “여기에는 훔쳐갈 돈이 없어요”다. 그러자 베인 왈, “그래? 너희는 잘도 훔쳐가잖아.” 사실 베인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돈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다만 그가 월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존 대거트(벤 멘델슨)에게 고용된 까닭이다.
존 대거트는 주가를 조작해 기업을 사들이고 정치인과 유착해 공기업의 지분을 빼돌리는 기업사냥꾼이다. 그에게 베인이 필요했던 건 웨인의 손가락 지문을 구하도록 시켜 법망에 걸리지 않는 주가 조작을 통해 고담에서 막강한 부를 자랑하는 웨인 기업을 손에 넣기 위함이다. 하지만 천하의 악당 베인이 이를 그저 지켜보기만 할까. 그가 존 대거트의 부름에 응한 이유는 웨인 기업이 소유한 수중 원자로 시설을 핵무기로 변환해 고담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베인은 미국 금융권의 탐욕을 상징하는 존 대거트가 고담에 불러들인 위험을 의미한다. 놀란은 이를 미국의 몰락과 연결하는데 극 중 미식축구 경기장 폭발 장면이 대표적이다. 미식축구는 미국의 대표적인 국민 스포츠로 미국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여기에 미국의 국가까지 연주되는 가운데 베인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경기장은 쑥대밭이 되고 마니, 미국적 지위가 파괴되는 초유의 광경을 지켜보는 관중들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셀리나 카일 금융권의 탐욕주의자들이 주식과 금리라는 숫자놀음을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기는 동안 힘없는 서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는 상황에 이르렀다. 셀리나 카일(앤 헤서웨이)도 그중 한 명이다. 웨인이 애지중지하던 죽은 엄마의 진주목걸이를 첨단 금고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훔쳐갈 정도로 셀리나는 캣우먼의 이미지가 강하다. (<라이즈>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캣우먼으로 호칭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첫 등장을 상기해보라. 웨인이 주최한 파티에서 재벌과 정치인들의 시중을 드는 웨이트리스였다.
전 재산을 잃은 후 찾아온 웨인에게 셀리나가 건네는 대화도 그녀의 평탄치 않았던 성장 배경을 짐작케 한다. “먹고 살려고 훔친 건데 다시 시작하기는 힘든 시대가 됐죠. 그래서 계속 훔치고 있어요. 대신 있는 사람들 것만 훔쳐요” 셀리나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종의 의적인 셈인데 다만 셀리나는 가난한 자를 돕기보다는 그녀 한 몸을 건사하는 쪽에 가깝다. 혼자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알프레드(마이클 케인)는 배트맨 혼자 힘으로 베인과 상대하기 힘들다며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를 충고한다. 이를 통해 놀란 감독이 의도하는 바는 ‘연대’다. 여기에는 더 이상 지금의 정부나 정치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불신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베인이 고담을 함락하자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담화문을 발표한다. “테러범과의 협상은 없습니다. 다만 시민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무슨 의미냐고 묻는 존 블레이크 경찰(조셉 고든 레빗)에게 고든 경감(게리 올드만)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얘기네”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고든은 자신과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배트맨이 나타난다. 셀리나와 함께.
로빈 놀란 감독은 <라이즈>를 위해 가장 많이 참조한 작품으로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두 도시 이야기>를 언급했다. 실제로 <라이즈>에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에 묘사되는 바스티유 함락이나 혁명재판소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됐던 귀족과 평민, 부자와 빈민의 대결 구도를 그대로 영화 속에 이식한다. 여기서 주목할 건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인용했느냐다.
결론부터 말해, <라이즈>는 ‘민중이여, 봉기(rises)하라!’며 혁명을 독려한다. 월가의 탐욕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들의 횡포는 도를 넘었고, 이를 견제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감시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에 따라 배트맨의 역할도 <비긴즈> <다크 나이트> 때와는 확연히 변모했다. 안 그래도 8년이란 공백기, 왼쪽 무릎의 연골이 완전히 사라져 의학 기술을 빌려야 하는 몸 상태는 그의 역할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에 따른 고민의 결과도 달라져 배트맨은 뿔뿔이 흩어져 각개전투를 벌이는 이들의 뜻을 한 데 모아 혁명을 주도하는 리더의 역할을 담당한다. (배트맨 왈, “자신들을 이끌 리더가 필요하다는 걸 알려야겠죠”)
이는 후세에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열망의 결과다. 웨인이 8년만의 칩거를 마치고 배트맨으로 돌아온 것도 젊은 경찰 존 블레이크의 설득이 주요한 까닭이다. 배트맨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꿈을 키워왔던 고아 출신의 존이 “아이들이 희망 없이 죽으면 좋겠어요?” 회유하자 웨인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배트맨, 캣우먼과 함께 베인에 맞서면서도 존이 유독 아이들을 챙기는 것도 이 같은 영화의 태도를 대변한다.
사실 웨인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고담의 범죄를 척결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존 역시도 웨인과 같은 생각으로 경찰이 되었고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존재 의의를 갖는 인물이다. 결국 <라이즈>는 웨인이 품고 있던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理想)이 존에게로 넘어가는 이야기인 셈인데 아니나 달라, 마지막 순간 존 블레이크는 ‘로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즉, <라이즈>는 끝이면서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는 영화다. 비록 베인과 존 대거트를 제거하며 평화를 되찾는 데 성공하지만 고담과 같은 대도시는 늘 악을 부르기 마련이다. 하여 영웅에 대한 대중의 갈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라이즈>를 끝으로 배트맨은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대신 우리는 로빈이라는 새로운 영웅을 얻게 됐다.
movieweek
NO.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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