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양익준 감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똥파리>는 부산영화제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다. 사채를 대신 받아주는 건달 상훈(양익준)에겐 불우한 가정사가 있다. 그래서 상훈은 출소한 아버지가 못마땅해 욕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한국 사회에 내재한 폭력을 가족에서 찾는 <똥파리>는 굉장한 감정적 파고로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정서적이고 감정적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사실 머리가 안 좋다. (웃음) 나는 되게 단순한 사람인 거 같다. 시나리오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성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게 거의 부재하다. 내가 느끼는 걸 쓸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 이 시나리오에 거짓말을 보태지 않은 게 내 자긍심이다.  

<똥파리>는 한국 사회의 폭력성을 가족, 특히 아버지에게서 찾는다.
시초는 가족인 거 같다. 자식은 부모에게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역할은 용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시를 해줘야 한다. 어제 인터뷰를 왔던 모 기자는 아버지를 증오한다고 했다. 그런 말은 쉽게 할 수 없지 않나. 왜 부모가 자식에게 증오 받는 인격체가 될 수밖에 없었나, 이제 조금씩 직접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든 거 같다.

악한처럼 비추던 상훈이 결말에는 화해를 신청하려 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상훈이를 끝까지 악한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과연 가족에 대한 희망이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다. 길거리를 가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이들이 즐겁게 얘기하고 다니는 걸 보면 ‘이건 말도 안 돼, CG야. 어떻게 부자간에 저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속으로 그런 말을 되뇌었다. 근데 이런 갈등요소를 가지고 계속 살아야 할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어찌됐든 화해의 신청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화해를 신청하는 쪽으로 변화가 됐다.

하지만 상훈에겐 화해의 신청조차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화해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행동으로 취해지지 않는 거다. 사실 상훈이는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다. 과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한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 왜 그랬는지 툭 터놓고 한 번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거다. 근데 욕이 나오고 아버지를 때리게 되는 건 대화법을 터득하지 못해서다. 상훈에게 대화는 욕설과 폭력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으니 그렇게 나오는 거다. 

그런 상훈의 성향을 반영한 건가, 영화의 결말은 시간을 도치시켜 희망적인 장면과 절망적인 장면을 교차한다.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넣은 게 아니다. 극중 인물의 구도는 피라미드 구조를 띠고 있다. 맨 위에 아버지가 있고 아들 상훈이 있고 상훈의 부하가 있는 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가 피라미드 구조 맨 밑으로 가고 그 자리에 상훈이가, 상훈의 부하가 올라간다. 그렇게 폭력이 대물림 되지 않길 바라는 상훈은 화해를 신청함으로써 이를 끝내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사연들이 그들 각자에게 내재돼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미묘한 아이러니의 자장들이 있다. 결국 상훈 주변의 인물들이 대안가족을 형성하지만 예전의 사연이 그 순간까지도 해소되지 않는 거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장면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똥파리>, 제목이 강렬하다.
‘이 똥파리 같은 놈’ 이렇게 많이들 얘기하지 않나. 이 근처에 다가오면 안 될 더럽고 추잡하고 악한 놈. 그런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해야 하나. 화목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의미로 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ILM2.0 409호
(2008.10.14)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