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던트> 알렉산더 폐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지 클루니는 <일렉션>(1999)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꼭 한 번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의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을 그린 하이틴물이었지만 도덕과 윤리의 딜레마에 빠진 인간의 모순적인 성격을 짚어내는 감독의 시선이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어바웃 슈미트>(2002)의 제작 소식을 알게 됐지만 아내 잃고 방황하는 노인네의 원맨쇼라 할 만한 이 영화에 새파랗게 젊은(?) 조지 클루니가 꿰찰 캐릭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연이 아닌가보다, 관심을 접을 때쯤 에이전트를 통해 이 감독의 신작 시나리오가 전해졌다. 와인에 조예가 깊은 중년 남자가 친구와 함께 와인 여행을 떠난다는 <사이드웨이>(2004)였다. 특히 극 중 결혼을 앞둔 배우 출신의 바람둥이 친구 역할은 조지 클루니 그 자신을 위한 배역에 다름 아니었다.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직접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용건이 있으신 분은 메시지를 남겨주세요.”라니. “이런 젠장, 직접 찾아가든가 해야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조지 클루니의 애간장을 녹일 대로 녹인 감독은 다름 아닌 알렉산더 폐인이었다.

알렉산더 폐인은 직접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와 <사이드웨이>의 출연 의사를 밝힌 조지 클루니와의 첫 대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조지 클루니는 그야말로 출연 자체로 흥행을 보장하는 할리우드의 스타 중 스타가 아닌가. 아쉽지만 폐인은 그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이드웨이>는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평범한 이들의 성장을 와인에 비유한 작품인데 관객이 클루니에게서 실패자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클루니와 관련한 캐스팅 일화는 알렉산더 폐인이 추구하는 영화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영화는 비록 허구이지만 우리네 실제 삶과 최대한 닮아있도록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가 보여주고 싶은 삶이 아니라 실제 인생을 관객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디센던트>(2012)는 드디어! 알렉산더 폐인과 조지 클루니가 함께 하는 영화다. <디센던트>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걱정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변호사 맷이 아내의 사고로 삶이 엉망진창이 된 후 그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과정을 쫓는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다는 점에서 맷은 조지 클루니의 스타 이미지와 부합한다. 하지만 살아생전 아내가 외도했다는 딸의 폭로를 접한 후 혼란스러움에 두문불출하는 극 중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희극과 비극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보통 사람을 연기한다. 앞모습으로 등장할 때는 관리되지 않는 표정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희극을, 하지만 삶의 이면이 담긴 뒷모습을 비출 때면 비극이 되는 알렉산더 폐인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것이다.

폐인의 영화에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빠지는 적이 없다. 평생을 초()단위에 맞춰 기계적으로 살아온 <어바웃 슈미트>의 슈미트(잭 니콜슨)나, 소심하고 무미건조한 성격 때문에 이혼의 후유증을 떨치지 못하는 <사이드웨이>의 마일즈(폴 지아매티)나, <디센던트>의 맷 모두 마찬가지다. 폐인은 앞만 보고 전진해왔던 이들의 뒷모습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바쁘게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다만 인생을 복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나온 삶에 대해 당황하는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은 코믹하게 다가오지만 엉망이 된 현재의 삶의 바탕이 과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짠한 감정이 묻어난다.  

알렉산더 폐인은 현재의 혼란스러운 경험이 우리가 앞으로 맞닥뜨릴 삶의 좌표를 새롭게 지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그래서 폐인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영화들과 달리 열린 결말을 선호한다. <어바웃 슈미트>의 슈미트는 어질러진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없이 사는 삶에 맞서면서, <사이드웨이>의 마일즈는 어렵게 사귄 새 여자 친구의 대문을 노크하면서 끝을 맺기 때문에 관객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대신 실패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얻은 것만은 확실히 하며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폐인의 영화가 벅차오르는 감동이 아닌 잔잔한 여운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디센던트>의 경우, 섬처럼 부유하던 맷과 두 딸이 한 소파에 앉아 처음으로 살을 맞대며 TV를 보는 결말은 겉보기에는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황제 펭귄의 야생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맷의 가족의 녹록치 않은 미래를 암시한다. 그들의 미래는 온전히 그들 자신의 몫이지 영화가 대신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알렉산더 폐인의 입장은 확고하다. “관객은 기계적으로 조율된 감정을 원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영혼을 느끼고 싶어한다.”

할리우드 영화 속 완벽한 영웅들과 달리 폐인의 인물들은 워낙에 흠이 많아서 ‘갓길'(sideways)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생의 직선 주로를 무사고로 완주할 능력이 없는 이들은 길어 벗어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훑게 되는 인생이란 박살난 양동이에서 새오나오는 무수한 물줄기처럼 오점 투성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폐인의 영화는 사건을 극적으로 압축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어바웃 슈미트>라는 제목처럼 인생에 ‘대해'(about) 웃음과 눈물로 명암을 그려 넣은 희로애락의 드라마인 것이다.

<사이드웨이> 이후 <디센던트>까지 7년, 알렉산더 폐인은 실제 삶을 반영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와이가 배경인 <디센던트>는 하와이 출신의 작가 헤밍스 카우이 하트의 경험담이 바탕이 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폐인이 연출한 작품은 <시티즌 루스>(1996)를 제외하면 소설의 영화화 일색이다. 한 개인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경험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설에 기댄다는 것이 폐인의 입장이다. 한 가지 불만은 갈수록 사람 냄새 나는 소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그의 연출 주기가 갈수록 길어지는 이유인데 알렉산더 폐인의 영화 팬이라면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단, <디센던트>로 소월을 풀게 된 조지 클루니의 입장은 느긋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유력시 되는 상황에서 10년 넘게 폐인을 기다렸던 보람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런 게 바로 인생이란 거다. 알렉산더 폐인의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beyond
2012년 2월호

“<디센던트> 알렉산더 폐인”에 대한 2개의 생각

  1. 휴일 아침에 보기에 참 적절한 영화였어요^^ 만약 이 이야기의 공간이 하와이가 아닌 다른 곳이었을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뉴욕이었다면 식상한.. 동경이었다면 외롭고 차가운.. 그런^^. 딸들과 펭귄다큐를 보며 담요를 나눠덮는 마지막 장면이 참 따스했어요. 아빠펭귄처럼.

    1. 영화 참 좋죠 ^^ 이번 아카데미에서 제가 민 영화였는데 ^^; 예, 맞아요 하와이가 배경이 아니었다면 큰 감흥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죠. 이 영화 보시고 지친 회사 생활에 활력이 되셨기를 ^^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