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이재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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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 감독이 미쳤어요>는 감독 없이 만들어진 영화다. 더 정확히는 촬영 현장에 배우와 스탭만 남겨놓고 할리우드로 떠난 감독이 원격으로 지휘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대로 담은 영화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설정이라고? 이건 실제 상황이다. 유례없는 방식의 영화 만들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재용 감독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감독이 인터넷을 이용해 원격으로 현장을 지휘하며 영화를 찍는다는 설정은 옴니버스 영화 <시네노트>(2012)의 ‘십분 안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에서 선보였던 설정이다.
그 영화를 찍는 과정을 영화화한 게 <뒷담화 : 감독이 미쳤어요>(이하 ‘<뒷담화>’)다.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찍는 동안 벌어진 과정이 재밌겠다 싶어서 장편영화로 가져왔다.

<뒷담화>도 그렇지만 멜로드라마 <정사>(1998),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웹툰 원작의 뮤지컬이 가미된 <다세포소녀>(2006), 다큐멘터리 형식의 <여배우들>(2009) 등 매 영화 파격적인 형식이 돋보인다. 
한 주제를 파거나 하나의 형식을 고집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용에 맞는 형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로 시작해 틀을 찾는 식인데 <뒷담화>는 형식이 먼저 떠올랐다. 이를 테면, 원격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닐까, 에서 출발했다.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은 원격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시나리오로 쓴 건데 <뒷담화>는 영화 자체를 실제 원격으로 찍어버렸다.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위치다. 그런 고민이 <뒷담화>와 같은  설정을 가져온 것은 아닌가?
모든 게 앉은 자리에서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지금 이 인터뷰도 이렇게 만나는 대신 전화로 할 수 있지 않나. 그처럼 시나리오를 쓰다가 컴퓨터로 참고로 될 만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관련 기사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의 트위터를 통해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앉아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 앉아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이렇게 출발했다. 발상의 전환을 하고 싶었다. 핸드폰으로 바로 통화하고 이메일로 편지를 쓰고 스마트폰으로 TV를 볼 수 있는 시대인데 왜 굳이 만나야 하는가. 그렇게 사람들은 발상을 깨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뒷담화>는 일단 실험이지만 20년 후에는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풍경일 수도 있다.

이런 장르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시나리오가 있는 다큐멘터리를 페이크 다큐멘터리 혹은 모큐멘터리라고 한다. 그런데 <뒷담화>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의 일종의 메이킹필름이지만 드라마와 리얼리티 쇼와 다큐멘터리가 섞여있다. 딱 떨어지는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말하자면 새로운 영화다. 기존의 틀로는 진단할 수 없는 미래의 영화다. (웃음)

이런 장르는 시나리오를 사전에 완벽하게 준비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만큼 현장에서의 즉흥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여배우들>은 내가 준비한 시나리오가 50이었다면 나머지 50은 현장에서의 배우의 몫이었다. 그에 비해 <뒷담화>는 배우의 자율성을 70으로까지 높였다. 감독이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배우들의 자율권이 높아진 것이다. 시나리오대로 잘 표현하는 연기도 훌륭하지만 예측 못하는 데서 벌어지는 생동감도 재밌게 느껴진다. <여배우들>을 하면서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들을 좀 더 믿고서 한 작품이다.

그에 대한 배우들의 반응은 어땠나?
뭘 하자는 건지 알겠는데 원격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실제로 가능할지 의심하는 배우, 불안해하는 배우, 재밌어 하는 배우 등 의견들이 분분했다. 단, 내가 정말 현장에 없을 거라고 예상 못한 건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 배우들은 상상도 못한 것 같다. 왜냐면, 배우들이 대부분 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연기를 해오다보니까 설정이라고 본 거지 실제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거다.    
 
영화현장이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겠다. (웃음)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만들 때는 25분짜리 단편이어서인지 배우들이 느끼는 약간의 어색함 정도를 제외하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자율권이 70%를 차지한 <뒷담화>에서는 우왕좌왕했다. 내가 정해준 것 외의 배우들이 당황하는 모습이라든지 의도하지 않은 반응들이 많이 찍혔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혼돈에 빠질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낼 거라고는 전혀 예측 못한 부분도 많았다. 사실 감독이 무책임하게 현장을 떠나버린 격이 된 거니까 뭘 어쩌자는 거냐며 힘들어하는 배우도 있었다.  

배우들의 적나라한 감정을 보는 게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겠다.
배우들에게도 자율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불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다. 불만을 드러내도 그게 실제 감정인지 카메라에서 연기를 하는 건지 그 경계가 모호한 거다. 어디까지가 몰래카메라이고, 설정이고, 진심이고, 연기인지가 섞여 버렸다. 이를 테면, 진짜 불만을 드러내도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배우는 감수해야 했고, 내 입장에서는 속내를 드러내는 건지, 영화가 재미있으라고 자기 설정을 한 건지 오락가락했다.

카메라는 17대를 사용했는데 촬영감독들과는 현장에서의 동선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나눴나?
모른다. 사전에 회의는 했지만 나는 현장에 없었으니까. (웃음) 배우들을 개별적으로 따라다니기는 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촬영 팀도 우왕좌왕했을 거다. 배우나 스탭 모두 느끼기에 만나서 이야기하면 편한데 화상으로 하면 답답한 그런 정도의 차이일 거다. 이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선택했다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다. 그러니 감독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한가. 그래도 영화는 돌아가니까.

배우와 스탭에게 촬영 현장이 혼란스러웠다면, 감독에게는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는 것이 힘들었겠다.
그렇다. 3일 촬영하고 편집은 8개월을 한 거니까. 찍어놓은 후에 시나리오를 쓰는 거다. (웃음)

그럼 감독의 입장에서 기존의 현장과 원격 조정으로 이뤄지는 현장 중 어느 것이 더 편한가?
농담처럼 말하면 <뒷담화> 쪽이 더 편하다. 배우, 스탭들의 불만과 불평을 안 들어도 되지 않나.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니까. 그런 점에서 괜찮은 방식인 것 같다. (웃음) 쫓아와서 나한테 따질 수도 없고 자기들끼리 ‘뒷담화’하면서 마음속으로 삭여야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인가?
<뒷담화>를 만들면서 더 재밌고 효율성 있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원격 지휘를 하다 보니 중간에 인터넷도 끊어지고 그랬는데 기술적으로 지원만 완벽하게 된다면 더 멋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이 맞는다면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영화 현장도 분명히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금씩 대체가 될 거다.

movi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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