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감독은 커밍아웃한 게이다. 단편시절부터 그는 게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첫 번째 장편 연출작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이 민수(김동윤)와 레즈비언 효진(류현경)이 위장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것. 다만 김조광수 감독의 단편 시절과 비교해 <두결한장>은 레즈비언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샤방샤방’한 정서 한 편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등 눈에 띄는 변모가 느껴진다. 이와 관련, 김조광수 감독을 만나 <두결한장>에 대해 물었다.
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이하 ‘<소소만>’)와 <친구사이?>(2009)는 각각 10대와 20대의 사랑을 그린다. <두결한장>에서는 30대의 사랑이다.
<소소만>을 2,500명 정도가 봤다. 단편치고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뒷얘기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꽤 많이 했다. 민수와 석이가 20대가 되면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결혼을 앞둔 30대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증을 해소해달라더라. 그렇게 <친구사이?>를 거쳐 <두결한장>까지 오게 됐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매 영화마다 민수와 석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가?
그렇다. 민수와 석이의 연작 드라마다. 사실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광수와 석이였다. 그런데 <소소만> 때 조감독이 내 이름은 별로 안 예뻐서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영화는 굉장히 말랑말랑하고 밝은데 내 이름은 너무 촌스럽다나. (웃음) 그래서 민수로 바꿨고, 석이는 그 당시 내가 버스를 타고 가다 만났던 아이 이름이었다. 굉장히 남성적인 이름인데다 외모도 그랬지만 성격은 여성스러웠다. 외모와 성격 사이의 간극이 커서 석이라는 이름을 가져가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 같더라. 그때부터 극 중 민수는 항상 여성스럽고 석이는 남성다운 외모로 가져갔다.
제목이 마이크 뉴웰이 만든 로맨틱 코미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 이하 ‘<네결한장>’)의 패러디다. <두결한장>은 <네결한장>의 이야기와도 관계가 있나?
기획할 때부터 <두결한장>을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빌려왔다. 그 작품이 바로 <네결한장>이다. <두결한장>은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이 나오지만 게이가 중심이기 때문에 <네결한장>과 구성을 비슷하게 가져가서 오마주하고 싶었다. 그게 시나리오로 풀 때는 마음처럼 잘 안되더라. 결과적으로 앞뒤로 결혼식이 있고 중간에 장례식이 있는 설정과 제목만 남기고 모두 바뀌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시나리오를 완성해놓고 배우 캐스팅이 여의치 않아 실제 촬영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누구나 다 아는 스타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었다. 그래야 더 나은 작업 환경에서, 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선택은 신인배우와 조금 알려진 배우,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최종적으로 조연을 주로 했지만 주연을 해도 손색이 없는 이미지와 연기력을 가진 배우 중에서 김동윤과 류현경을 선택하게 됐다.
배우들이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내 주변의 사람들과 자리를 주선하면서 설명을 많이 해줬다. 같이 MT를 가서 관찰하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민수와 석(송용진)이 주변의 게이 5인방의 경우, 실제 인물들이 있었다. 민수와 석이는 창조한 캐릭터라서 모델이 없었는데 다양한 게이들을 만나면서 해결했다.
아무래도 배우들이 이성애자라서 동성애 연기에 대해 의견이 안 맞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소소만> 때는 대단한 연기가 필요했던 건 아니라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친구사이?>는 상대적으로 좀 더 세심한 연기가 필요해서 기성 배우와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신인 배우와 한 경우였다. 오히려 나이도 어리고 성적인 경험과 연기 경험이 별로 없다보니 이해시키기가 쉬웠다. <두결한장>에서는 30대 배우와 함께 했다. 이들에게는 이성애 경험이 많이 쌓여있고 연기 패턴도 자기 것이 있어서 동성애 연기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단편을 거치면서 내가 배우들의 연기를 잘 끄집어낸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게 오류였다. 자만심이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두결한장>은 게이의 생활을 정확히 알려주고 종국엔 커밍아웃을 독려하는 목적을 가진 영화다.
정체성을 숨기던 민수가 친구의 죽음 이후 커밍아웃하는 얘기다. 그런데 민수의 무겁고 어두운 사연을 끝까지 가져가면 관객이 안 좋아할 것 같았다. 그 무거움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재미를 어디에 줄 것인가, 그래서 게이 5인방이라 불리는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을 높이게 됐다. 다만 시나리오 쓸 때 그런 지적을 받았다. 재미있는 게 좋긴 한데 이야기가 산만해질 수 있다고. 그래서 다소 어두운 민수의 사연과 재미를 주는 게이 5인방의 에피소드들을 산만하지 않게 적절히 배치하는 타이밍이 쉽지는 않았다.
어떻게 웃음과 슬픔 사이에서 최적의 감정적 조합을 찾았나?
나름 신경을 썼다. 처음부터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를 집합적으로 지칭하는 축약어)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쪽 중심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오해하는 분들은 그게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맞다, 성소수자로 사는 게 이성애자들에 비해 힘들고 우울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365일 힘들게만 사는 건 아니잖나. <친구사이?> 때 특히 내부에서 그런 비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경이 쓰였다. <두결한장>을 하면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적절히 조화해 비판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동성애자들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성애자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예컨대, 석이의 남동생 같은 경우 게이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데도 만남의 자리가 있을 때면 항상 등장한다.
겉으로는 심하게 말을 해도 속으로는 형이 보고 싶으니까 핑계를 대서 형을 찾아온다. 그것도 현실의 모습 중 하나이다. 나는 동성애자들에게 석이 동생과 같은 가족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으로 교육을 받아서 나오는 행동이니까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한다, 라고 얘기를 한다.
그만큼 영화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선의가 느껴진다. 마지막에 민수와 석이가 결혼하는 장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민수의 아버지는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 표정만 보여주는 선에서 그친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내가 실제로 결혼을 한 후에 <두결한장>을 개봉하는 거였다. 실제 현실에서 동성애 결혼식이 있다면 영화 속 결혼식 장면은 판타지일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민수의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 결혼식이 미뤄지게 됐다. 그러다보니 민수의 아버지까지 아들의 동성애 결혼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흔쾌히 받아들이면 너무 판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가능한 게 아니잖나. <두결한장>이 심한 판타지로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느낌이 나는 판타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민수의 아버지를 그렇게 묘사하게 됐다.
<친구사이?> 때 의도와 다르게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아서 소송까지 갔었다. <두결한장> 역시도 게이들의 키스신이 나오고 베드신이 나온다는 점에서 <친구사이?>와 묘사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의도한대로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친구사이?> 등급 건에 대한 행정소송은 두 번 다 이겼고 지금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또 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지는 않을 것 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도 다시 한 번 시끄러워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두결한장>은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는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퀴어 영화에서 선정적인 장면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갖지만 감독님은 키스신이나 베드신을 코믹하게 가져간다.
<두결한장>의 베드신은 덜 끈적끈적한 느낌으로 찍으려 했다. 음악도 과도하게 쓰고 전체적으로 코믹하게 갔다. 내가 퀴어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10대 성소수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청소년 관람불가가 되면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15세 관람가를 목적으로 뒀다. 그런데 내부에서 15세 관람가는 안 나올 거다, 청소년 관람불가일 거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좀 더 야하게 가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15세 관람가를 받기 위해서 이야기도, 촬영도, 편집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번엔 청소년을 위한 행사도 해볼 계획이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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