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과 <시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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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대한민국 최상류층 가문을 배경삼아 돈의 위력을 꼬집는다. 5만원 현금 다발을 탑처럼 쌓아놓은 금고를 비추는 첫 장면부터 영화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윤 회장(백윤식)이 대동한 비서 주영작(김강우)에게 건네는 한마디. “몇 다발 챙겨둬. 전임들도 다 그랬어. 돈의 맛 좀 보라고.” 어디 돈뿐이겠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규모의 대저택은 인테리어부터 가구까지, 의상부터 먹는 음식까지 최고급 일색이다. 고급스러운 취미인지, 혹은 비자금 은닉용인지, 저택 내부의 벽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는 예술품까지 더해지면 서양 중세시대의 어느 왕가의 내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면 이들 가족의 초상화는?

예로부터 왕이나 귀족으로 대변되는 상류층은 가문의 위세를 전시하기 위해 가족 초상화를 이용하고는 했다. <돈의 맛>에 가족 초상화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포스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프레임 속 윤 회장 내외와 딸 나미(김효진), 영작의 구도가 꽤 균형 잡혔다. 값비싼 의자에 앉은 백금옥(윤여정) 여사를 중심으로 배치가 이뤄진 것을 보니 가문의 권력이 어디로 집중되는지 짐작된다. 그 뒤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조각상은 미학적인 의도와 상관없이 재산 과시용으로 비칠 뿐이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정점을 찍는 것은 백 여사의 팔 아래부터 윤 회장을 거쳐 나미에게로 피가 퍼지듯 연결된 붉은 천이다. 오페라 무대의 비극이 연상된다. 영작은 거기서 살짝 비켜서있는 모양새지만 붉은 색 상의와 얼굴의 반을 가린 짙은 그림자가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을 암시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최고의 초상화가로 알려진다.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였던 그는 당연히 펠리페 4세의 가족 초상화를 그렸다. 바로 벨라스케스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녀들 Las Meninas>(1656)이다. 얼마나 뛰어난 작품이었던지, 후에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스페인의 후배 작가들이 그들 각자의 관점으로 <시녀들>을 재해석해 그렸을 정도다. 이유가 있다.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다양해지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궁전에 있는 큰 방이 배경인 <시녀들>에는 모두 11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9명 아니냐고?

맨 왼쪽에는 그림을 그리는 벨라스케스 본인이 서있다. 그 옆으로 포즈를 취하느라 짜증이 난 다섯 살의 마르가리타 왕녀와 그녀를 어르고 달래는 두 명의 시녀가 위치한다. 애견이 자리한 주위로 왕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동원된 두 명의 광대도 한 자리씩 차지했다. 그 뒤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수녀복 차림의 인물 둘과 방 안쪽의 열린 문 사이에서 막 계단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는 시종도 보인다. 그렇게 (애견을 제외하고) 모두 9명. 그럼 나머지 2명은? 열린 문 옆의 거울 속을 한 번 보라. 펠리페 4세 국왕 부부의 모습이 비친다.

여기서 해석의 다양성이 가능해지는 건 단순히 인물의 수가 아니다. 그림 속 상황이다. 어떤 이는 벨라스케스가 마르가리타 왕녀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국왕 부부가 방문한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벨라스케스의 시선으로 보건데 그가 그리는 대상이 바로 국왕 부부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도 있다. 벨라스케스가 화폭에서 부자연스럽게 떨어져 있는 걸 보니 국왕 부부를 그리는 게 아니란다. <시녀들> 그 자체를 제작하는 중이라는 거다. 말하자면 그림 속 그림. 아무렴 어쩌랴. <시녀들>이 펠리페 4세의 가족의 초상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지금의 제목을 얻게 된 건 19세기 이후이고, 그 전에는 <가족의 초상> 혹은 <펠리페 4세 가족상>으로 불렸다.) 의문은 두 명의 광대도 펠리페 4세 가문의 가족이냐는 거다.   

다시 <돈의 맛>의 가족 초상화(?)로 돌아와 보자. 편안히 앉아 있거나 기대고 있는 이들과 달리 영작만은 부동자세다. 실제로 영작은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윤 회장 지시에 따라 억대의 비자금을 챙겨 비리검사나 정치인에게 전달해야지, “나이 많은 여자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며 달려드는 어머니뻘의 백 여사와 잠자리도 가져야 한다. 그게 바로 돈의 위력이다. 돈이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 이를 깨달은 영작은 윤 회장의 충고처럼 돈다발도 챙기고, 치욕스러운 기억은 잊고 백 여사에게 충성을 다짐한다. 돈 앞에 누구나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 <돈의 맛>에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몰려드는 모욕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영작은 금고에서 돈다발을 챙길 때면 늘 자신의 방의 액자 뒤에 숨겨놓는다. 그럴 때마다 액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게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는 것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챙겨봤자 영작은 이 집에서 하남(下男)이고 노리개이기 때문이다. 가족? 영작은 (포스터로 재현된) 가족 초상화에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지적이고 핸섬한 영작을 부려먹고 있는 이 가문의 부 혹은 권력을 과시하는 전리품 정도의 목적일 따름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비유하자면 오른쪽 구석의 광대와 같은 존재라 할 만하다. 

<시녀들>의 광대들은 모두 난쟁이다. 개 등에 발을 올린 니콜라시토는 등이 굽었지만 절묘하게 화면이 잘려 있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의 마리아 바르볼라는 누가 보더라도 왜소증을 앓고 있는 성인 여자다. 어리고 환한 용모의 마르가리타 왕녀와 극적으로 대조되면서 기형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그게 바로 광대들의 역할이다. 가족이라 해도 가문의 영광을 빛내는 액세서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르볼라도 그런 자신의 역할을 모르지 않았을 터. 자세히 보면 그녀의 얼굴에서 억제된 분노가 읽힌다. (이들과 함께 ‘가족’의 일원에 소속됐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는 왜소증을 겪는 광대들의 초상화를 여럿 그렸다. 예컨대, <난쟁이 세바스티앙 데 모라의 초상>(1645년경)을 보면 바르볼라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르볼라나 영작은 결국 제한적인 가족인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백 여사의 후원을 등에 업고 더 높은 곳을 꿈꾸던 영작은 결국 주제파악도 못한다며 갖은 모욕을 당한 끝에 쫓겨나고야 만다. 바르볼라의 경우, 신체적인 결함도 무시 못 하지만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낮은 데로 임하여야만 가족의 ‘기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이들의 비극적 운명. 허울뿐인 가족의 초상 속에서 비극이 어디 힘없는 자들만의 것일까. 마르가리타 왕녀는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1세와 정략에 따른 근친혼으로 21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역시 정략 결혼했던 윤 회장은 순수를 찾겠다며 백 여사에 이별을 통보했다가 목숨을 잃고 그런 가족에게 오만 정이 다 떨어진 나미는 집을 떠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대외적으로 전시하는 ‘가족의 초상’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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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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