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내 운명 –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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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촬영 중간 생긴 두 달의 휴식기 동안 김윤진은 정신없이 <세븐 데이즈> 촬영에 임했다. 그녀에게 <세븐 데이즈>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스릴러영화다. <6월의 일기> 이후 두 번째 스릴러영화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는 첫 출연인 셈이다.


김윤진을 규정하는 단어는 ‘도전’이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연기와 역할에 대한 도전의 변천사라 해도 틀리지 않다. 드라마(<화려한 휴가>(1996))로 데뷔해 영화(<쉬리>(1999))로 스타가 됐고 일본(<러쉬>(2000))을 거쳐 미국(<로스트>(2004))으로 건너가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액션(<단적비연수>(2000))과 코미디(<아이언 팜>(2002)), Sci-Fi(<예스터데이>(2002)), 멜로(<밀애>(2002)) 등 작품과 장르의 선택에도 거칠 것이 없다. “호러와 스릴러영화도 좋아해요. 기왕이면 안 해본 역할을 연기하고 싶어요.” 김윤진의 도전사에 또 한 번의 전기가 될 영화가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다.

<세븐 데이즈>에서 김윤진은 승률 99퍼센트를 자랑하는 유능하고 냉철한 변호사 유지연으로 분해 사상 최악의 협상극을 경험한다. 하나뿐인 딸 은영(이나해)의 운동회를 맞아 이어달리기를 하던 중 한눈을 판 사이에 딸이 납치당한 것. 납치범이 바라는 조건은 하나. 사형선고를 받은 살인범 동료를 무죄로 석방시켜야 딸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 안에. 모성을 지닌 엄마, 법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하는 변호사의 역할 사이에서 지연은 갈팡질팡한다.

김윤진에게도 <세븐 데이즈>는 갈림길에 선 작품이었다. <쉬리> 이후 십 년 동안 여덟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쉬리>를 제외하곤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선’ 역으로 국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영화로 성공하지 못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너무 흥행을 못 해서 계속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는 김윤진. 이런 고민과 부담이 절정이었을 때 만난 작품이 <세븐 데이즈>다.

영화가 반가웠던 건, 무엇보다 상업적인 코드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가발> <구타유발자들>의 원신연 감독 연출이란 사실에 내심 믿음이 갔지만 장르 속성상 어두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 그러나 촬영 중간 중간 확인한 영화는 예상과 많이 달랐다. 이야기의 호흡이 빠르고 화면 전개도 리드미컬해 ‘미드’에 익숙해진 요즘 관객의 구미에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건 위주로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감정을 가둬두고 표현을 절제해야만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신경도 쓰였다. “너무 쉽게 가는 게 아닐까? 너무 차질 없이 진행이 되니까 불안했어요. 연기에 우여곡절도 있고 촬영도 좀 늦춰져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거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세븐 데이즈>가 도전에 어울릴 만한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었던 까닭이다. “한국에서 여배우가 원톱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흔치 않아요. 정통 장르영화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죠. 여자 배우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역할을 맡게 됐으니 엄청난 기회였던 거죠.” <세븐 데이즈>에서 김윤진의 출연 분량은 90%를 넘을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이다. 게다가 한국에선 여전히 미개척지인 스릴러에 법정 장면까지 연기하니 도전을 즐기는 배우로서 즐거움이 컸다.

김윤진에게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큰 벽을 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연기자 데뷔 때부터 줄곧 따라다니는 ‘소포모어 징크스’ 때문. 처음 출연한 드라마도, 첫 번째 영화 출연작도, 첫 미국시장 진출작도, 도전은 항상 큰 성공으로 보답 받았다. <화려한 휴가>는 40%의 시청률에 육박할 정도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고,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쉬리>는 ‘여전사’라는 호칭을 선사했으며, <로스트>는 한국배우도 미국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세계를 상대로 연기하는 그녀에게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나름 고민이 있다. ‘처음’은 창대했으나 두 번째 출연작부터 드라마나 영화 모두 대중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부터 앞세우는 건 김윤진 스타일이 아니다.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을 실천하는 것이 지금까지 배우로 살아남은 최선의 방법이다.

현재 <로스트> 시즌 4 촬영에 한창인 김윤진은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 미국영화 출연이다. 저예산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이 나을지, 블록버스터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하는 것이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도전하는 작품마다 성공을 거듭했던 만큼 이번에도 노력의 결실이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넘친다. “한국드라마, 한국영화, 미국드라마 모두 첫 작품이 크게 성공했으니까 첫 번째 할리우드영화 출연작에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세븐 데이즈>도 ‘김윤진의 아홉 번째 영화’라는 생각보다 ‘첫 번째 스릴러영화 주연작’이라고 자기 암시를 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강한 믿음의 발로이기도 하거니와 징크스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항상 다음을 고민해요. <세븐 데이즈>도 저를 새로운 단계로 넘게 해준 작품이죠.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김윤진에게 <세븐 데이즈>는 자신의 도전이 여전히 진행형에 있음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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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60호
(2007.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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