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이방인>(行きずりの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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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타이의 충격적인 아동 인신매매 실태를 고발한 <어둠의 아이들>(2008)을 만든 후 일본 경제의 막후를 드러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일본 경제다. 그중에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형성되고 있는 매매의 흐름을 들춰내고 싶다.”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 작가 시미즈 다츠오의 <스쳐 지나간 거리>를 영화화한 <도시의 이방인>은 준지의 야심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방의 학원 강사로 활동 중인 하타노(나카무라 토호루)는 몇 년 전까지 도쿄에서 교사로 재직했었다. 하지만 제자와의 연애 사건으로 쫓겨났던 것. 불미스러운 기억을 안고 있는 그에게 실종된 학생을 찾아달라는 연락이 온다. 실종 학생의 집에서 발견한 우편물을 단서로 오랜만에 도쿄를 찾게 된 하타노는 이 사건이 과거 근무했던 학교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이고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한 그는 재단 이사장과 비서로부터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한다.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하타노는 학교를 둘러싼 이권 사업이 실종 사건의 배후임을 직감한다.

사카모토 준지의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도시의 이방인>은 다소 생소하다. 극중 하타노와 여제자를 둘러싼 러브 스토리는 준지의 전작을 감안하면 전혀 의외의 설정으로 다가온다. <멍텅구리-상처입은 천사>(1998) <의리없는 전쟁>(2000) <망국의 이지스>(2005) 등 여성 호르몬이 휘발된 폭력의 세계를 주로 묘사해 왔기 때문이다. <도시의 이방인>은 주변의 편견으로 맺어지지 못했던 교사와 제자의 관계를 복원하는 이야기지만 준지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들의 사랑에 방해물로 작용하는 환경이다. 여전히 준지의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창 삼아 순수를 억압하고 탐욕을 방패삼아 정의를 튕겨낸다. 여자들은 철저히 보호의 대상이요, 기껏해야 협상의 수단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결국 하타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거대악과 맞서는 것은 정의감의 발로 따위가 아니다. 과거 추문을 뿌렸던 제자와의 오해를 풀고 무엇보다 실종 학생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많은 남자를 놔두고 더티 해리 같은 폭력경찰도, 필립 말로우 같은 냉소적인 탐정도 아닌 일개 강사가 구원자로 나서는 이유는 뭘까. 이것이 바로 일본 암흑시장의 핏빛 경제 논리를 고발하고 싶다던 사카모토 준지를 <도시의 이방인>으로 이끈 계기(로 보인)다.

도시의 발전에 맞춰 날로 조직화되어가는 지하 세계의 범죄를 소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도시의 이방인>에서처럼 순수해야 할 학교를 둘러싼 이권 싸움은 이 사회가 얼마만큼 타락했는지 잘 보여준다. 다른 예 필요 없이 학생을 볼모로 이익을 추구하겠다며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기성세대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다. 더 무서운 건 재단이사장-기업회장-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비리의 커넥션이 워낙 견고한 까닭에 누구하나 나서서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힘없는 자들에게 악에 오염된 도시는 방관하며 그저 ‘스쳐 지나가는 거리’일 뿐이고 지방에서 오랫동안 썩다가 멋모르고 범죄에 대드는 하타노는 제목처럼 ‘도시의 이방인’에 다름 아니다. 하타노가 그렇게 위험한 사랑에 몸을 던진 것도 도시의 썩은 바람이 싣고 온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타노 역을 맡은 나카무라 토호루는 <청연>(2005)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 등 한국영화의 출연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배우다. 일본에서는 연쇄살인범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인을 짝사랑하는 변호사를 연기한 <입맞춤>(2008)이나 이혼 후 젊은 여자에게 대시하는 벤처사업가로 출연한 <언러브드>(2001) 등 미래가 불확실한 사랑에 올인하는 역할을 심심찮게 해왔다. 나카무라 토호루는 그런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 사카모토 준지의 새로운 경지라고 해도 좋을 ‘하드보일드 러브 스토리’ <도시의 이방인>에서 또 한 번의 인상적인 옴므파탈 연기를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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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week 448호
부산국제영화제 특별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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