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테크니션에서 장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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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핀처가 ‘페이스 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했다. <세븐>(1995) <파이트 클럽>(1999) <패닉 룸>(2002) <조디악>(2007) 등 시커먼 인간의 마음을 어두운 도시에 새겨 넣는데 독보적 재능을 보인 스릴러 장인이 고작 전기물 따위를 만든다고? 핀처를 향한 기자들의 첫 질문은 모두 ‘왜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나?’로 모아졌다. 그때마다 핀처는 질문이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아이패드를 열심히 만지작거렸다.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 북에도, 마크 주커버그에도 별 관심이 없다. 제목에서부터 핀처의 의지는 확고하다. ‘페이스 북’도 아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도 아니다. <소셜 네트워크>다. 그러니까, 웹상에서 획기적인 인맥 구축 서비스를 완성한 주역들의 현실 관계가 어떻게 발기발기 찢겨나가는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사회 관계망’(The Social Network)에 주목한다. 핀처가 말하길, “정보화 시대의 비즈니스 윤리와 도덕성의 오랜 세상의 개념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데뷔작 <에이리언3>(1992)에서부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이하 ‘<벤자민 버튼>’)까지, 핀처는 조직화된 사회를 부정하거나 혹은 겉도는 이들의 행보에 유난한 관심을 보여 왔다. <에이리언3>의 리플리는 에이리언을 몸에 품은 실험 대상이었고,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 더든은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파괴자였으며 <벤자민 버튼>의 버튼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일종의 돌연변이였다.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 주커버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버드 출신의 천재이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능하지 않고 웹이라는 ‘동굴’ 속에 틀어박혀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일종의 소통 부적응자로 묘사된다.  

핀처는 날로 짙어지는 도시의 그림자를 자세히 보기위해 이런 유형의 인물들을 렌즈 삼아왔다. 연쇄살인마가 판치고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도시에서 형사 밀스 부부는 ‘일곱 가지’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멕 모녀는 ‘패닉 룸’에 갇혀야 했으며, 그레이스미스는 ‘조디악’ 킬러를 잡기 위해 가족과 인생 모두를 버려야 했다. <소셜 네트워크> 역시 큰 틀에서 핀처의 영화적 주제를 공유한다. 웹상에서 신으로 군림하던 마크가 현실에서 홀로 된다는 설정은 증강현실이 판치는 작금의 씁쓸한 풍경화다. 다만 인간과 도시에서 웹과 현실의 상관관계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테크놀로지에 능한 핀처가 자신의 분야에서 이야기를 발전시킨 첫 번째 영화라는 인상이 짙다.

실제로 핀처는 수많은 혁신적인 기술을 자신의 모든 작품에 적용하며 테크니션의 면모를 숨기지 않아왔다.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에이리언3>와 <세븐>의 어두운 화면, 범인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가 집안의 가구를 ‘뚫고’ 지나가는 <패닉 룸>의 롱 테이크, 우회전하는 택시의 움직임에 맞춰 화면도 직각으로 틀어지는 <조디악>의 카메라 움직임 등 그는 언제나 스타일리스트였고 비주얼리스트였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저속촬영으로 잡아내면서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만 그것이 단순한 과시로 비치지 않는 것은 평단과 관객이 느끼는 것과 달리 기술을 영화에 종속된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핀처의 태도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핀처의 대답은 늘 같았다. “기술은 그저 고기와 감자 같은 것이다. 훌륭한 대본과 놀라운 배우, 충분한 시간만 갖춰지면 도달할 수 있는 결과다.”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선택한 소재의 본질을 가장 영화답게 보여주는 연출의 방법론이다. 그런 맥락에서 핀처는 ‘사실’(fact)의 힘을 믿지 않는다. <소셜 네트워크>의 경우, 마크 주커버그를 다루지만 시나리오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의 의견은 단 한 줄도 반영되지 않았다. 대신 페이스 북을 두고 갈등을 빚은 왈도와 윙클보스 형제의 발언을 단서삼아 마크의 인간상을 다각도에서 빚어보고 이를 통해 웹 시대의 인간관계의 한 전형을 제시한다. 그래서 핀처는 “글쎄, 사실이 진실에 다가서는데 얼마나 효용을 발휘할지 잘 모르겠다.”며 단선적 이야기 서술의 고지식함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는 이미 사실을 찾기 위해 반평생을 바치다 폐인이 된 이의 삶을 영화화한 적이 있다. 바로 <조디악>이다. 조디악의 정체, 즉 ‘사실’을 확인하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그레이스미스의 행보를 통해 사회의 병폐가 한 인간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그 ‘진실’을 들여다봤다. <패닉 룸> 이후 5년 만에 선보였던 <조디악>은 테크닉이 전면에 나섰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이야기에 흡수되는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항상 현란하게 시작했던 오프닝도 <조디악>에서는 타이프 활자 모양의 단순한 제목 제시로 대체됐다.) 뿐만 아니라 사실 추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핀처의 철학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이후의 영화적 행보를 가늠케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사실 <조디악>은 전통적으로 봤을 때 영화로 만들어지기 힘든 작품이었다. 끝내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스릴러라니. 하지만 핀처는 계속된 검거 실패를 서사의 핵심 삼아 무력감과 절망의 역사로 스펙터클화(化)하였다. <벤자민 버튼>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설정의 어려움 때문에 영화사가 판권을 확보한 1987년 이후 무려 20년 넘게 방치됐던 이 프로젝트는 핀처에 의해 극적으로 영화화될 수 있었다. 이처럼 핀처는 <조디악> 이후로 남들이 영화로 구현하지 못하는 소재를 가져와 근사하게 스크린에 재현하는 장인의 단계로 접어든 인상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그런 데이빗 핀처의 영화적 야심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증거다.


“소통이 절대적인 분야를 목격하고도 효과적인 소재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이 내가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자 유일하게 값어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패드로 페이스 북을 확인하던 데이빗 핀처는 뒤늦게 기자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그제야 기자들은 그가 왜 <소셜 네트워크>를 영화화했는지 이해할 것 같다는 표정을 어렴풋하게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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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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