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은 전통적인 여배우의 개념을 완전히 전복한 배우다. 여배우를 평가하는 미(美)의 가치가 절대적인 연예산업에서 그녀는 이에 아랑곳 않고 복싱 선수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심지어 48kg급 국가대표로까지 선발될 정도이니 이시영의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여전사에 가깝다. <더 웹툰: 예고살인>(이하 ‘<더 웹툰>’)은 그런 그녀의 강인한 이미지를 한껏 살린 공포영화다.
여기서 이시영이 맡은 배역은 인기 공포 웹툰 작가 강지윤이다. 강 작가에게는 이상한 예지력이 있다. 그녀가 그린 웹툰 속 내용과 동일하게 살인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강 작가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녀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다만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로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던 그녀는 두 번째 살인 소식을 접하고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와니와 준하>(2001) <분홍신>(2005) 등을 연출한 김용균 감독의 <더 웹툰>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함량미달이다. 관객을 겨냥한 공포효과는 귀를 찢는 사운드로 무서움보다는 놀람을 주기에 급급하고 이야기는 반전에 신경 쓰느라 두서가 없는 편이다. 유일하게 이 영화를 지탱해주는 건 이시영의 연기다. 그녀 왈, “저 아니면 이 영화 안 될지도 몰라요.”라고 감독을 협박(?)해 출연을 자청했다는데, 과연! 호언장담한 만큼의 연기를 펼치는 것이다.
극 중 강지윤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두 개의 자아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현실의 강지윤이 유능한 웹툰 작가이면서 예민하고 섬세한 면모를 드러낸다면 환영 속 그녀는 죽은 자들의 억울한 사연에 시달리는 일종의 영매 역할로서 다소 거친 모습을 선보인다. 말하자면 거의 1인 2역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만큼 연기하기 어려웠다.”는 그녀는 “얼마나 더 극단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신경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데 <더 웹툰>에서 이시영이 보여주는 연기는 훈련된 배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배우’ 이시영과 ‘복서’ 이시영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는 현실 속 이미지를 고스란히 강지윤 캐릭터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 중 웹툰 작가로서의 그녀가 반듯하고 예쁜 여배우의 이미지에 가깝다면 죽은 자들에 맞서 기 싸움을 벌여야하는 영매로서의 강지윤은 환영이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맷집 하나로 버티는 고독한 싸움꾼이 연상되는 것이다.
관객이 흥미로워할 부분은 단연 후자다. 그것은 흡사 배우 이시영이 복싱을 한다고 했을 때 대중들이 받았을 신선한 충격의 정도와 다르지 않다. 예컨대, 살인 혐의를 받던 중 또 하나의 예고 살인 소식을 접하고 이를 막기 위해 병원 시체실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이시영은 카체이싱을 위해 스턴트맨의 도움 없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압권은 극 중 강지윤을 끝까지 범인으로 모는 강력계 형사 기철(엄기준)과의 대결 장면이다. 그녀는 수십 킬로에 달하는 도끼를 들고 실제로 휘두르는 등 리얼한 연기를 위해 위험을 무릎 썼다.
현직 국가대표 복서 이시영을 상대한 배우 엄기준의 엄살 섞인 반응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시영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아, X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결 장면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주먹으로 맞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 장면에서 김용균 감독이 목격한 건 그녀의 근성이었다. 좀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위해 지하 보일러실을 배경으로 잡아 화재가 난 것으로 연출을 했는데 가스에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완벽한 장면을 위해 거듭 ‘다시 한 번 더’를 요구했다는 것.
사실 김용균 감독은 그녀가 출연을 자청했을 때 “과연 호러 퀸의 이미지 잘 살릴 수 있을지 의심했다.”고 한다. 호러 퀸(Horror Queen)이란, 살인마로부터 잘 도망 다니고 비명도 잘 지르는 예쁜 여배우를 지칭하는 것인데 기존의 이시영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로는 전혀 상상이 안됐기 때문이다. <더 웹툰>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녀는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을 주로 맡아왔다. <남자사용설명서>(2012)에서는 푸석푸석한 얼굴과 떡진 머리의 ‘건어물녀’를, <위험한 상견례>(2011)에서는 지역 감정이 강한 아버지 때문에 전라도 출신인 애인의 고향을 속이는 경상도 여자를 연기했다.
이시영이 가지고 있는 강인한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부딪히고 엎어지는 ‘슬랙스틱’의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예쁘고 귀엽게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시영의 배우로서의 어떤 의지이기도 했다. 급기야 <더 웹툰>에서는 기존 호러 퀸의 이미지마저도 다시 정의하기에 이른다. 살인마에 쫓기고 비명도 지르지만 이것은 강지윤이 현실의 웹툰 작가일 때만 보이는 일부다.
또 다른 자아가 작동을 시작할 때면 그녀는 살인마보다도 더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갖은 악다구니를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시영 본인은 “나만의 호러 퀸 매력은 없다. 그저 감독님이 요구한대로 열심히 연기했을 뿐이다.”라고 겸손함을 떨었지만 여배우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복서로서 쌓은 강인함 또한 그녀가 가진 능력이고 자산이다. 그래서 <더 웹툰>을 추천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로맨틱코미디의 천방지축에서 호러 퀸으로 무사히 안착한 이시영의 연기는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라 할 만하다.
시사저널
NO. 1236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아버지의 강요를 전라도 남자와 선을 보는 경상도 여자를 연기했다. –> 이 부분 사실과 달라서 댓글 남겨요. 지역감정이 확실한 아버지 대문에 전라도 출신인 애인의 고향을 속이는 경상도 여자를 연기했지요….
안녕하세요 라이님 ^^ 예, 말씀주신대로 수정했어요. ^^; 본 지가 좀 돼어서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자세히 설명을 못했네요. 고맙습니다. ^^
근데 저 지난번 댓글도 그렇고 이 댓글도 그렇고 관리자만 보기 체크했는데 공개로 뜨는 거 같아요.
지금 제 블로그가 좀 이상해요 ^^; 엽민님한테 물어봤더니 이게 딴지 사람들 팀블로그처럼 관리되고 있잖아요. 스팸 메일 같은 것들이 너무 많이 지워지지 않고 있어서 과부하가 걸려서 그런 거라고 하는데요. 그걸 하나하나 다 지워야 해서 고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에 제가 좀 더 정확하게 썼어야 되는 건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