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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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경지에 오른 열연'(엠파이어 매거진) ‘시체도 깨울 만큼 짜릿한 연기'(버라이어티) ‘단 한 순간도 눈을 감아선 안 된다'(뉴욕 옵저버) 모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에 대한 유수 영미권 언론들의 평가다. 과장된 수식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디카프리오는 이번 영화에서 일생에 남을 연기를 펼쳐 보인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조던 벨포트는 월스트리트에 입성하여 억만장자가 된 후 쾌락을 쫓다가 FBI의 표적이 되는 주식중매인이다. 인생의 최정점에 섰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인물형(形)은 디카프리오에게는 꽤나 익숙하다. 이번 영화는 그가 스콜세지 감독과 함께 한 다섯 번째 작품이다. 스콜세지의 작품에서 디카프리오는 대개 겉은 화려하되 속은 완전히 썩어문드러진 아메리칸 드림의 초상을 연기했다.
 
<갱스 오브 뉴욕>(2003)의 발론은 폭력 조직에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스스로 폭력배가 되는 인물이었다. <에비에이터>(2004)의 하워드 휴즈는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제작자였지만 너무 큰 야망이 독이 되어, <디파티드>(2006)의 빌리는 갱스터 조직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경찰이 되지만 정체성의 혼란으로 추락을 거듭했다. 또한 <셔터 아일랜드>(2010)의 테디는 연방보안관 행세를 하지만 실은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병자였다.
 
디카프리오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 역할에 대해 역사상 가장 방탕했던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비유하기도 했다. 단 한 통의 전화로 정크본드, 즉 수익률이 높지만 그만큼 위험률도 높은 채권을 고객에게 팔아넘기면서 벌어들이는 돈은 1980년대 당시 FBI의 1년 연봉인 6천만 원을 훌쩍 넘긴다. 쉽게 돈맛을 본 벨포트는 화려한 언변과 수려한 외모를 이용해 급기야 주가 조작까지 손에 대고 월스트리트 최고의 억만장자가 된다.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몇 분 단위로 불어나면서 벨포트의 흥청망청한 생활은 그 끝을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파티에, 그의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창녀들, 거기에 코카인과 모르핀 투약까지, 탐욕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벨포트의 일생에 맞춰 디카프리오 역시 전에 없던 추한(?) 연기로 이미지의 추락을 감수하는 열연을 펼친다. F-워드를 입에 달고 살고 자신의 엉덩이에 초를 꼽아가며 창녀와 즐기는 변태적 성행위, 약에 너무 취해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물론 침까지 질질 흘리는 꼴이라니. 자신을 희생하며 연인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타이타닉>(1998)에서의 디카프리오는 온데간데없다.  
 
이에 대한 디카프리오의 얘기를 들어보자. “과연 관객들이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는 캐릭터에 호응을 해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일찍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나에게 “네가 진정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이를 배반하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디카프리오는 “관객들에게 조던 벨포트를 일부러 좋아할 수 있게 연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벨포트의 성공과 몰락을 미화하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이번 영화에서 망가짐을 불사한 연기로 승화된 것이다.  
 
망가진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1996) <타이타닉>과 같은 대중영화와 멀어지는 대신 좀 더 예술적인 야망을 품은 영화에 도전해왔다. 스콜세지와의 협업은 이미 언급한대로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J. 에드가>(2011),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 샘 멘더스의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 등 소위 말하는 거장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경우, 벨포트의 회고록 <캐칭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Catching the Wolf of Wall Street>의 판권을 직접 구입해 스콜세지를 감독으로 고용했을 정도다. 그 배경에는 디카프리오가 거장과의 작업을 통해 과거와는 다르게 새롭게 구축해온 특정 이미지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좀 더 확장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스콜세지는 <디파티드>에서의 그의 연기를 두고 이렇게 평을 한 적이 있다. “이 바닥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죽을 것을 아는 불쌍한 어린 짐승의 흐느낌 같은 연기였다.”
 
확실히 디카프리오는 강렬한 인상 그 이면에 연약한 어린 짐승을 품고 있는 연기로는 세계 최고다. 삶의 정점에 선 인물이 몰락하는 테마로 잡은 영화가 기획될 때면 0순위처럼 디카프리오가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디카프리오는 그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까닭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영화화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벨포트는 몰락으로 인생의 끝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캐릭터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
 
주가조작이 발각되어 FBI에 체포된 후 호송버스로 실려 갈 때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좌절하는 벨포트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잡은 FBI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바라보는 승객들의 모습이다. 죄인으로 잡혀간 벨포트의 모습보다 지하철 안 승객들의 표정이 더욱 좌절에 가까울 만큼 죄인처럼 보인다. 그리고 석방된 조던 벨포트가 자신의 경험을 강연을 통해 들려주며 재기를 모색하는 장면으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끝을 맺는다.
 
죄를 짓더라도 그 죄의 경험이 다시금 부의 밑천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를 맛본 자는 그 부가 끝까지 유지되지만 하층민들은 여전히 최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조던 벨포트를 일러 ‘월스트리트의 여우’라고 칭했을 터. 이를 간파해 이미지를 확장하고 연기의 폭까지 넓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할리우드의 여우’라고 이름 붙여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시사저널
NO. 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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