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닝>(The Stoning of Soraya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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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형’을 의미하는 <더 스토닝>은 이란에서 여전히 은밀하게 자행되고 있는 여성 대상의 충격적인 형벌을 다룬다. 영화의 원작인 ‘더 스토닝 오브 소라야 M.’은 이란계 프랑스 저널리스트 프리든 사헤브잠이 이란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낯선 여인 자흐라에게 투석형에 대한 얘기를 듣고 관련한 증언과 사례를 모아 쓴 르포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투석형의 진실이 알려지게 됐고 이를 이란계 미국인 사이러스 노라스테 감독이 영화화했다.

사헤브잠(제임스 카비젤)은 차가 고장나 이란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잠시 묵게 된다. 이때 자흐라(쇼레 아그다쉬르)는 사헤브잠이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자신의 조카 소라야(모잔 마르노)가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증언한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평소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소라야의 남편은 위자료를 주지 않고 이혼하기 위해 외간남자와 불륜했다는 계략을 소라야에게 덧씌운다. 이에 소라야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남편의 입김에 놀아난 시장과 종교지도자가 사형을 선고하면서 결국 투석형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이란에서 코란은 막강한 강제력을 갖는다. 그것이 지금의 이란 사회를 이끌어온 근간이지만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되면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목소리를 높일 수 없어서 그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하여 <더 스토닝>이 고발하는 이란의 문제는 단순히 잔인한 투석형에만 있지 않다. 가족과 이웃이 돌을 던져 사형을 집행하는 형벌 자체도 굉장히 충격적이지만 권련을 쥔 남자들이 ‘알라 후 아크바르'(الله اكبر 신은 위대하다.) 신의 이름을 빌어 파렴치한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포장하는 과정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원작자 사헤브잠은 그런 시선이 결코 외부자의 편견이 아님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영화의 제작진에게 이란 출신 감독과 배우의 기용, 그리고 극 중 페르시아어 사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큰 소리로 코란을 인용하면 자신의 흉계가 감춰지는 줄 착각한다.’ 14세기의 이란 시인 하페즈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가 시작되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더 스토닝>이 소라야의 투석형 집행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오랜 시간 화면에 노출하는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행위가 결코 코란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그렇기에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인권적인지를 관객들에게 간접 체험토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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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week
NO.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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