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대사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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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2013)였다. 원제가 ‘허 Her’인 <그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을 묘사한 영화다. 인공지능,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존재 말이다. 스파이크 존즈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의 괴물, 단편 <아임 히어 I’m Here>(2010)의 구형 PC 머리와 기계 몸을 가진 로봇과 같은 비(非)인간적인 존재를 내세워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영화를 만들어 호평을 받아왔다.

<그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사랑하는 인공지능은 컴퓨터 운영 체계다.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출연)라고 이름 지어진 이 인공지능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상에서만 존재하는 까닭에 물리적인 육체를 갖지 못한 존재이다. 영화 내내 목소리로만 존재 증명을 해보일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건이나 그에 따른 인물의 감정의 추이가 대부분 테오도르와 ‘그녀’ 사만다가 나누는 대화로 진행된다.

대사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종종 영상 매체인 영화의 본질을 깨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과할 경우는 그렇지만 말이 많다는 게 꼭 결격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다. 빈부나 신분 격차가 큰 연인이 등장해 겪는 갈등과 해결 과정을 재치 있는 대사로 풀어낸 장르다.

장마철 비가 내리듯 스크린 밖으로 많은 양의 말이 쏟아지지만 장르로 정착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리듬을 살린 대사의 연출 방식에 있다. 갈등 상황에서 말과 말이 부딪히는 가운데 이뤄지는 대사의 ‘액션’은 몸과 몸이 뒤엉키는 물리적인 액션의 쾌감에 비견할 만큼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Sci-Fi이기에 대사의 운용에 있어서 스크루볼 코미디와는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극 중 테오도르는 현재 부인과 1년 넘게 별거 중인 상황으로 부인의 변호사로부터 이혼 서류에 서명하라는 압박을 시도 때도 없이 받고 있다. 여전히 부인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못한 테오도르는 변호사의 요청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데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테오도르의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똑딱거리는 시계추처럼 집과 회사를 오갈 뿐이고 퇴근 후 집에서는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 채팅 등으로 단조롭게 시간을 죽이는 게 전부다. 테오도르는 자기 안의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고독한 현대인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결국 <그녀>를 통해 스파이크 존즈가 목적하려는 바는 스스로 외로움의 동굴 속에 고립된 테오도르를 감정적으로 흔들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더 큰 세상으로 나오라는 격려의 차원에서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필요로 했던 것.

<그녀>가 배경으로 삼는 소통 부재의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물며 미국사회에만 한정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간의 관계망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사회의 싸늘하고 스산한 현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형식화해 보여주는 곳은 다름 아닌 일본영화계다. 소통 부재의 사회상이 영화에 반영되면서 대사가 극도로 줄어든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 일본영화가 급격하게 시시해진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일본영화를 보면,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을 목격한 극 중 인물이 얼마간 침묵으로 반응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일본 사회가 낳은 소통 부재에 입각한 공포를 부조리한 방식으로 영화화하고 있는 구로사와 기요시(<속죄>(2012) <도쿄 소나타>(2008) 등)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침묵의 정체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의 기성세대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들은 도무지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 사소한 분쟁이 생겨도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뒷짐만 질뿐이다.”

일본영화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스파이크 존즈도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그녀>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스파이크 존즈는 아이폰의 시리 기능을 이용하던 중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굳이 시리가 아니더라도 외부로 잠깐만 눈을 돌리면, 스마트폰을 가상의 동료로 삼아 액정에 고개를 푹 묻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을 쉬이 목격할 수 있다. <그녀>가 제시하는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관계는 좀 과장되었지만 그리 터무니없는 설정은 아닌 셈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영화(스마트폰으로 찍어야 꼭 스마트폰 시대의 영화인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었다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런 까닭에 과거의 영화에서라면 용인하기 힘든 연출법이 과감하게 도입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의 핵심은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대사의 양을 늘리기 위한 이미지의 과감한 포기다. 일례로, 그 ‘핫’한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하고도 목소리만 출연시킨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장 뤽 고다르는 <사랑과 경멸>(1963)을 만들 당시 글래머 스타로 유명세를 타던 브리짓 바르도를 캐스팅하고도 벗은 몸을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작자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에 고다르는 극 중 문맥에 상관없이 브리짓 바르도의 누드 장면을 추가해 제작자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녀>가 <사랑과 경멸>이 제작되던 시대에 기획되었다면 스칼렛 요한슨이 직접 출연하든가, 아니면 영화가 엎어지든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육체가 없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섹스를 하는 장면이 <그녀>에는 등장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상상을 초월한다. 무지화면, 즉 스크린 전체가 검게 처리되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신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신음 소리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는데 육체를 대신한 말의 액션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얘기다.

최근의 한국영화를 보면, <끝까지 간다>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 등 남성영화임을 자처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작품 들이 유행처럼 등장하는 추세다. 작품의 질적 유무와 상관없이 이 영화 들이 불편한 건 극 중 인물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폭력으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하루가 멀다 하고 의무감으로라도 마주쳐야 한다는 건 솔직한 심정으로 곤욕스럽다. 감독들이야 장르적 재미를 위해 과장했으니 영화로 봐달라는 주문을 앞세우지만 폭력이 내재화된 우리 사회의 반영이 아닐까 싶어 쓸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폭력의 이미지가 들어선다는 건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방증이다. 소통하려 들지 않는 사회에 누가 애정을 갖겠으며 그런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고스란히 끌어들인 영화에 누가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일본영화와는 좀 다른 경우이겠지만 발현되는 스타일만 다를 뿐이지 소통의 기본 단위인 말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관계가 희미해지고 대화가 소멸하고 있는 현(現)시대를 바라보면 영화에서의 대사 연출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펴본 바, 사회가 전체적으로 대화를 하는 법에 서툴러지면서 이를 반영한 영화는 극도로 조용해지거나 과도한 폭력의 이미지 전시로 극단화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폭력적인 환경이 영화라는 예술을 잡아먹고 있다는 건 위험한 신호다.

경험상, 세상의 모든 좋은 영화 들은 컴컴한 극장에만 머무르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 사로 소통하라고 등을 떠민다. <그녀>가 좋은 영화인 이유인데 스파이크 존즈는 테오도르와 같은 고립된 현대인들에게는 더 큰 세상으로 나오라 격려하고 우리 모두에게 서로를 향해 좀 더 손을 뻗어줄 것을 호소한다. 이 영화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을 다루면서 종국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함이었을 테다.

예술이 무너진 사회는 소통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다. 예술은, 영화는 무기력과 방관의 매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대화가 사라진다고 영화까지 말을 소홀히 해서는 예술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그녀>처럼 말이 많은 영화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예술의 형태라는 생각이다.

세상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불행하기 마련이라 예술을 통해 생성된 에너지야말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예술은 소통을 전제하기에 소통 부재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매체이면서 희망의 마지노선이 된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말이 많고 대사가 흘러넘치는 수다스러운 영화를 많이 보고 싶다. 온라인상의 문자를 오프라인 상의 말의 형태로 끄집어내야 하고, 스크린 상의 침묵 숏에는 대사를 넣어야 한다. 말이 많아질 때 비로서 세상은 떠들썩해질 것이다.  

toon 허남준
   

arena homme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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