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라는 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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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이와 같은 제목의 대자보가 화제다. 그 내용이 심금을 울린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했다고 직위 해제된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 밀양 송전탑 주민의 자살에 대한 안타까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에 대한 질책,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한 분노 등 하 수상한 시절을 견뎌야 하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만약 안녕하지 못하다면 뒤로 물러나 있는 대신 앞으로 나와 세상의 부조리를 소리쳐 고발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글을 마친다.

이 대자보가 더욱 마음을 움직이는 건 글을 쓴 이가 바로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는 다소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정치적 무관심을 이유로 현실 참여에 소극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쉬이 개진하지 못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랄 수 있는 기성세대가 침묵하는 동안 자기밖에 모른다던 대학생이 도리어 현실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호소력이 더 클 수밖에. 뜻밖의 곳에서 난세의 영웅이 등장했다고나 할까.

<스파이더맨2>(2004)라는 영화가 있다.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주인공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의 모습은 어려움에 처한 작금의 한국 대학생의 모습과 닮았다. 여기저기서 세상이 균열하고 있는데 파커는 정의를 수호해야 할 시간에 자기 앞가림하기에 바쁘다. 대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충실하고 싶어도 현실은 그저 가혹하기만 하다. 비싼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피자 배달부로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에 전념하고 사건이라도 터지면 급하게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하니, 몸이 녹초인 상황에서 수업 준비는 꿈도 못 꿀 지경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업에 늦은 파커에게 담당교수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그렇게 게을러서 어디 졸업이나 하겠냐며 비난의 목소리를 건넨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모를까, 가진 돈이 채 10만 원도 되지 않고 하숙집 방세도 몇 달이나 밀려 있는 그에게 행여 여자 친구를 사귀기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급기야 대학생이냐, 스파이더맨이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선다.  

<스파이더맨2>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미국의 88만원 세대 슈퍼히어로의 고충’이다. 여기서 슈퍼히어로가 의미하는 것은 지구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이 아닌 현실의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어떤 책임감에 대한 은유다. 스파이더맨 대신 대학 생활을 선택하는 파커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돈에 쪼들리는 건 여전해도 학과 수업에 전념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면서 전에 없던 삶의 행복을 맛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편은 무겁기만 하다. 스파이더맨을 포기하자 더욱 안녕해지지 못하는 세상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일까? 다수의 불행을 전제 삼아 얻은 행복이 과연 정당한 걸까?

대자보를 쓴 대학생에게도 같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피터 파커는 그 자신이 스파이더맨을 포기한 것 같아도 실은 학생의 본분에 충실 하라는 기성세대로부터 침묵하길 강요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거액의 등록금을 뜯어내야 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해 배를 불려야 하는 1%의 탐욕덩어리들에게 대학생의 무관심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소수의 저들만의 것이 아니라 다수의 우리들의 것이다. 불의로부터 세상을 지켜내는 것은 곧 우리의 임무다. 그런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파커가 다시금 스파이더맨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유도 이를 깨닫기 때문이다.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된 세상에 대한 외침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국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수호하고 불의로부터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모두의 임무지만 이를 이끌어야 하는 주역은 대학생들과 같은 젊은 세대다.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안녕하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거듭 고민한 끝에 무관심의 가면을 벗고 세상에 당당히 그 얼굴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많은 이들이 또 다른 ‘안녕들 하십니까?’를 만들어 연대의 가치를 퍼뜨리는 중이다. 그렇듯 세상의 변화는 외침으로부터 시작된다. 영웅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안녕하지 못 하다며 세상을 향해 소리쳐 외치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 우리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cartoon 허남준

새마을금고 사보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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