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재미와 진실 두 토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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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영화계 제도권 밖에서도 가장 비주류에 속하던 다큐멘터리의 개봉이 줄을 잇는 것은 물론 관객과의 만남에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쿠바의 연인> <오월愛> <종로의 기적> 같은 작품이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고 <트루맛쇼>의 경우, 입소문을 타고 멀티플렉스로 상영관을 늘려가며 1만 명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언급한 작품의 선전에 힘입어 이후 개봉 대기 중인 다큐멘터리만도 <꿈의 공장> <용산> <청계천 메들리> <하얀 정글> 등 무려 10여 편에 달할 정도이다.  

올해 들어 유독 두드러진 한국 다큐멘터리의 부상은 관객의 인식 변화에 기댄 바가 크다. 일례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9)가 유례없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다큐멘터리는 불편하고 계몽적이라는 저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안 그래도 올해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를 보면 ‘재미’를 최우선으로 삼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쿠바의 연인>은 쿠바 남자와 한국 여자의 사랑을 통해 문화 차이를 발랄하게 풀어냈고 <종로의 기적>은 기성세대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동성애자들의 밝은 모습을 의도적으로 부각했으며 <트루맛쇼>는 TV맛집 프로그램의 조작 실태를 몰래카메라라는 코믹한 형태로 구성해 고발의 경직성을 완충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갈수록 만연하는 불순(?)세력의 정보 차단 현상과 맞물리면서 한국 다큐멘터리는 다종한 소재와 다기한 형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진실과 고발이라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한편으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감행하는 작품이 하반기에 집중된 것. <꿈의 공장>과 <하얀 정글>, <용산>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보라>와 <청계천 메들리>는 후자의 사례에 속한다. 특히 사회비리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하던 TV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구멍 뚫린 국민의 알권리의 일부분을 다큐멘터리가 메우는 양상은 주목할 만하다. 

<꿈의 공장>은 국내 최대 기타회사 콜트/콜텍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얀 정글>은 영리화가 극심해진 한국 의료계의 검은 실상을, <용산>은 용산 철거민을 비롯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약한 자의 현실을 다룬다. 이들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임에도 불구, 주류 언론의 은폐 속에 무관심으로 내몰리는 이슈를 향한 진실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미처 깨닫지 못한 현상의 정면에 카메라를 밀착함으로써 우리의 본모습을 폭로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청계천 메들리>와 <보라>는 좀 다른 경우다. 해당 소재가 내포한 사회적 파급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영화들에서 더 나아가 형식적인 실험에도 힘을 기울인다. <청계천 메들리>는 청계천에서 쇠를 다루는 사람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기록화면과 멀티이미지를 통해 한국과 일본,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쇠의 사회학을 구성하고 <보라>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현장보건 관리를 1년간 촬영한 기록물의 형식에서 출발한다.

알게 모르게 진화하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제작 배경에는 저 너머의 진실을 찾겠다는 창작자의 용기 있는 태도가 짙게 배어있다. 그리고 용기의 정체는 진실 탐구에 따르는 위험의 감수와 이를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알리겠다는 사명감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다만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국의 결단보다 재미까지 추구해 우선적으로 관객을 만족시키겠다는 창작자의 정체성이 더욱 두드러진 것이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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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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