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이>(The Lovely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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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번트 증후군 Savant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뇌 장애를 가진 이들 가운데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레인맨>(1988)에서 자폐증 환자이지만 숫자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더스틴 호프만의 역할이 정확히 이에 해당한다. 박철순 감독의 <다슬이>는 말하자면, 한국판 <레인맨>이다. 자폐증이지만 그림 실력이 뛰어난 서번트 증후군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레인맨>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슬이(유해정)는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적 드문 어촌 마을인데다가 또래 친구도 없고 할머니와 삼촌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폐증이 심한 다슬이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심심할 새가 없다. 낮에는 마을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눈사람이 나오는 TV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팔린 까닭이다. 9살 소녀의 미술치고는 꽤나 근사하지만 이웃들의 눈에는 담벼락을 어지럽히는 눈엣가시로 비칠 뿐이다. 다슬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레파스 대신 페인트를 가지고 온 동네에 칠을 하기 시작한다.

<레인맨>을 비롯해, 직접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다루지 않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 핏줄 영화로 이어지는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어거스트 러쉬>(2007) 등은 재능의 발현을 중심에 두고 이를 가능케 하는 주변인들의 노고에도 고루 시선을 분산한다. <다슬이>는 좀 차별된 경우인데, 다슬이의 재능을 의도적으로 폭발시켜 감동을 자아내지도, 이를 돕는 친지들의 자기희생을 칭송하는 낯 뜨거운 전략도 취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슬이의 재능 주변으로 무성하게 꽃을 피울만한 인물과 에피소드는 최소화한 채 오로지 다슬이에만 집중한다. 그녀를 소개하는 첫 장면을 제외하면 (다슬이가 등대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감시원이 제지하고 이에 맘 상한 그녀가 마구잡이로 덤벼듦으로써 캐릭터가 설명된다.) <다슬이>는 온전히 그녀의 시선만 좇을 뿐이다. 다슬이의 눈과 마음이 가는 대로 관객 역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연출의 의도는 내려다보는 동정이 아닌 수평적인 이해를 전제한다. 거리를 둔 바라보기가 아니라 다슬이가 되어 그 처지를 직접 경험해보자는 거다.

여기에 바로 <다슬이>의 진가가 존재한다. 그런 불편한(?) 조건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일방적인 동정심 따위 철저히 배제한다. 극 중 다슬이의 입장이 되어보면 세상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영화의 배경은 거친 파도가 난무하는 어촌 마을이지만 다슬이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드넓은 캔버스가 되니 그 위에 다양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그려 넣을 수가 얼마나 좋은가. 다슬이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깔이 넘실대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데 벽에 낙서하지 말라며 불평을 토로하는 이들의 각박함이라니.

이런 세상의 ‘다슬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응원이다. 영화는 결국엔 홀로 남겨지는 다슬이의 모습을 비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결코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 여전히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모습에서 흐뭇해지는 건 우리 자신이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박철순 감독이 다슬이를 대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 편으로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슬이를 연기한 유해정에 대한 응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유해정은 <다슬이>가 영화 데뷔작이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천재 배우’라는 홍보문구가 한낱 수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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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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