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언어, 다국적 문화의 영화 만들기 – <바벨>



인간은 하늘에 닿기 위해 거대한 탑을 지었다. 이에 분노한 신은 인간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부여했다. 다시는 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하도록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 이야기다. 하지만 신은 실수(?)를 범했다. 대화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통까지 힘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뚜는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보여준 경험이 있다. <바벨> 역시도 그런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다르다면, 네 개의 나라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고 여섯 개의 언어로 만들어진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 스스로가 바벨탑을 쌓듯 혼돈스러운 과정 속에 연출을 진행했다는 데 있다.

<바벨>은 네 개의 이야기가 평행으로 진행된다. 비극적 사고를 맞이하는 리처드(브래드 피트)와 수잔(케이트 블란쳇) 부부. 우발적인 사고를 일으키는 유세프(부커 아잇 엘 카이드)와 아흐메드(사이드 타르치니) 형제. 미국에서 멕시코로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 아멜리아(아드리아나 바라사). 야스지로(야쿠쇼 코지)와 귀머거리 딸 치에코(키쿠치 린코) 부녀. 이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놀랍게도 운명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벨>을 연출하면서 이냐리뚜 감독을 가장 괴롭힌 건 의사소통이었다. 일례로, 모로코의 타궨잘트에서 촬영을 할 당시 현장에는 아랍어, 베르베르어, 영어, 스페인어 등 모두 여섯 개의 언어가 난무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외부인의 시선을 지양하고 최대한 현지인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문화와 행동방식을 이해한 것. 그런 점에서 통역원 이상의 역할을 해준 모로코의 히암 압바스와 일본의 리에코, 그리고 수화 통역원 마리코는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소통의 방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는 바로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촬영 현지에서 캐스팅 작업을 직접 진행 한 것도 이와 같은 일환이다. 이냐리뚜는 치에코를 맡을 배우를 찾기 위해 도쿄에서 9개월 동안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모로코 형제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사하라의 작은 마을 콰자자테에서 캐스팅을 한다는 안내 방송이 무슬림 사원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지역문화를 체화할 수 있었고 또한 각 나라의 독특하고 미묘한 점도 캐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바벨> 스토리의 근간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냐리뚜 감독은, 세계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같은 영혼의 근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다국적 언어와 다국적 문화로 이뤄진 <바벨>은 세계 공용어인 영화로 말하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2007. 1. 10. <스크린>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